개 바보

by 이윤수


내 첫째 아들은 아무래도 천재인 것 같다. 따로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3살 때 갑자기 과자봉지의 글자를 읽기 시작하더니 길거리 간판과 책을 줄줄 읽어대고 영어도 조금씩 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영재교육을 시켜야 할 것 같다.

둘째는 감성이 너무 좋다. 내가 피곤해서 누워있으면 그 꼬맹이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위할 줄을 알아서 시키지도 않았는데 베개를 가져다가 머리에 베어 준다니까.

또 내 처는 얼마나 이쁘고 착한지.... 평생 화를 내는 걸 본 적이 없고 절대 다른 사람을 나쁘게 말하지도 않고 시집 식구들도 항상 훌륭하고 좋다고 믿고 진심으로 잘 대하고 특히 가만히 웃을 때는 얼마나 예쁜지 자꾸만 쳐다보지 않을 수가 없고 곁에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지. 그리고 목소리도 맑고 고와서 군 복무 시절 전화 교환병이 자기 애인도 아니면서 내 아내의 전화가 오기를 기다릴 정도였지.

참, 우리 개도 정말 똑똑해. 똥오줌도 상황에 따라 참을 줄 알고, 집에 들어가라고 하면 제 발로 문을 열고 들어가서 문을 닫고 자고, 가끔씩 심심할 때면 장난감을 물어다가 내 앞에 툭 던져놓고는 꼬리를 흔들며 놀아 달라고 빤히 쳐다보는 눈망울이 얼마나 초롱초롱한지 뽀뽀를 해 주고 싶을 정도지. 심지어 지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앞발로 내 손을 툭툭 치는데 그때도 혹시라도 내가 아플까 봐 살금살금 조심스럽게 건드리는 게 느껴진다니까!

흐흐흐! 느끼한가? 나 바보 맞지?

사랑을 하면 누구나 다 이렇게 바보가 되나 보다.

개를 길러보니까 아이를 기르는 것과 개와 함께 사는 것이 참 비슷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아이를 낳아서 길러보기 전에는 어른이 되었다고 할 수 없다'는 말에 사뭇 공감이 간다.

나로 말미암아 생겨나서 삶의 모든 것을 오롯이 나에게 의존하는 여리고 순한 한 생명을 처음 안아 들고 신비로움과 가슴 벅찬 감동을 느끼며 정말 열과 성을 다해서 잘 키워보리라고 다짐을 하던 그 순간을 시작으로 하여 이어지는 희로애락들..., 자다가 깨서 울면 짜증도 났다가,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것만 봐도 기쁘고, 어쩌다 아프기라도 하면 내 가슴에서도 물리적인 통증이 느껴지고, 아이의 안녕과 미래를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기꺼이 감수하는 성숙된 자신의 모습을 보기도 하고, 때로는 아이가 내 뜻대로 자라지 않을 때 느끼는 좌절과 괴로움 그리고 아이가 속을 썩이고 사고를 치고 아이와 갈등이 생길 때는 그저 내 욕심과 감정에 빠져서 아이의 자아를 존중하지 않고 윽박지르고 혼내고 지배하려는 옹졸한 자신을 보기도 하고 또 그런 문제를 극복하는 과정들 속에서 또 한 번 성숙하면서 상대방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진정한 어른이 되는 것이다.

또한 어려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쑥쑥 잘 자라나고, 방긋방긋 웃고, 나를 따르고, 걷기 시작하고, 뛰고, 같이 놀고, 살을 부대끼고 또 취학 등 생애주기에 따른 아이의 삶의 과정들을 함께하면서 느끼는 기쁨과 위안, 성취감들은 아이를 길러보지 않고는 경험할 수 없는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보물이다.

그리고 아이와 개를 반려해서 살아갈 때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정서적 교감이다. 아이들처럼 개도 거짓말이나 배신을 하지도 않고 주인을 배려하고 충성을 다해 따르기 때문에 개를 키우다 보면 외로움도 안 느끼고 교감과 애정이 생긴다. 또한 배변훈련, 놀아주는 방법, 먹이를 주는 방법, 씻겨주는 방법, 다른 사람이나 개와 친밀하게 교류하게 훈련하는 방법, 산책과 운동을 하는 방법, 소파나 신발을 물어뜯고 사고를 칠 때 교정하는 방법, 장기간 외출할 때 외로움을 타지 않게 하는 요령, 교미나 번식 생리활동을 이해하고 대처하는 방법, 늙고 병들고 죽었을 때 대처하고 극복하는 방법 등을 익히면서 보살피는 경험과 기쁨과 보람도 느낄 수가 있다. 즉 사랑도 감정만으로는 부족하여 알고 배우고 이해하고 양보하고 참고 기다리고 정성을 기울이고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즐거운 시간을 같이 보내는 등의 훈련도 해야 한다는 소중한 교훈을 실천을 통해서 체득하게 된다.

미국 Princeton 대학의 진화생물학자인 Bridgett von Holdt 교수의 개의 사회성 진화에 대한 연구결과와 Brian Hare, Vanessa Woods 의 ‘다정한 것이 살아 남는다’에 의하면 개는 2만 년 전 정도 쯤 가축화가 된 이후에 인간과 개가 서로에게 의존하고 교감하는 방향으로 상호진화를 해 와서 지금은 유전자 자체에 변이가 일어났고 그래서 서로의 의도를 파악하고 감정까지도 교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교감과 협력의 힘은 개와 인간뿐만 아니라 보노보노 등 물리적으로 약해 보이는 사회적인 종들의 진화적 생태적 성공의 이유를 설명해 준다.

이처럼 개는 태생적으로 인간에게 특이하게 친밀하여서 좋거나 무섭거나 하는 감정을 인간이 느끼면 개의 뇌 속에서도 (친밀한 인간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꼭 같이) 특정 공감부위가 활성화되고 공포나 행복감에 부합되는 호르몬 분비가 일어난다. 그리고 인간도 역시 같은 방식으로 자기가 기르는 개와 공감한다. 그러니 개와 인간이 가족이라는 것은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생리적, 문화적 실체라는 것이다. 게다가 개의 지능은 원숭이처럼 너무 좋아서 인간을 속일 정도도 아니고 너무 나빠서 인간과 의사소통이 안 될 정도도 아니어서 인간의 충직한 반려 생활자로서 딱 적합하다. 또한 인간이 어떤 사물을 가리킬 때 모든 동물과 영아는 손가락을 바라보는데 개와 5세 이상의 유아들은 그 사람의 의도를 알고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쳐다보며 가라고 명령을 하면 그쪽으로 이동을 한다. 이처럼 성철스님이 '달을 가리켰더니 사람들이 손가락만 보더라'는 답답함을 개에게서는 느끼지 않을 수 있으니 개는 인간에게 참 놀랍고 신비로운 존재이다.

물론 아이나 개나 처음에는 서로 의사소통이 안 된다. 서로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가 없고 대화를 할 수도 없어서 답답하다. 처음엔 똥오줌도 못 가려서 성가시고 손이 너무 간다. 그래서 시간을 두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서로 익숙해지고 또 인내와 애정을 통해서 조금씩 서로를 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게 안 되면 서로 위한다는 것이 오히려 해가 되기도 하고 너무 풀어놓으면 제멋대로 하려 하기에 때로는 규칙을 세우고 엄해야 하는 점도 아이나 개나 마찬가지다.

어쨌거나 항상 조심하고 경계해야 하고 상대방의 의중도 파악해야 하는 좀 복잡한 인간관계와는 달리 정이 가면 그대로 오는 개와의 관계는 참 편안하고 정직해서 좋다. 그런데 개는 억울하다. 이렇게 인간에게 충직하고 행복을 주는 개를 빗대어 욕을 하면 안 된다. ‘개 같은 놈‘ 이란 말은 욕이 아니라 칭찬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개가 소나 돼지 같은 가축취급을 받던 한국에서도 이제 애견인구가 많아져서 정치인 연예인들도 서로서로 개 사랑을 내세워 인기를 얻으려고 하는 한편 무분별한 입양과 유기로 예전에 고아수출을 했듯이 최근에 유기견을 수출하는 부끄러운 사례가 생기고 있는데, 그런 보여주기식 가식보다는 밑바닥부터 개와 사람이 책임 있는 진정한 반려로 행복한 삶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문화의 틀을 세워야 하겠다.

아, 이만 산책 가야겠다. 한참을 책상에 앉아있었더니 개가 내 발을 건드리면서 나가자고 빤히 쳐다본다. 행복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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