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임말과 갑질

by 이윤수

외국어를 쓰며 외국에서 살면, 외국어를 배워야 하고 의사소통이 어려워서 답답한 면도 많지만, 한편으로 편안한 것도 있는데 그것은 누구 하고나 친구처럼 말하고 격의 없이 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도 처음 캐나다에 와서 학교에서 일할 때 교장선생님을 만나면 한국에서처럼 나도 모르게 깍듯하게 인사하고 조심스럽게 말을 하고 자세를 바르게 하곤 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여기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색해서 좀 난처한 적이 있었다. 물론 이제는 나도 교장이든 사장이든 동료든 학생이든 누구에게나 Hi Hi 하며 인사하고 first name 부르고 똑같이 대하고 말하지만 한국인들을 만나면 다시 상하관계를 따져서 처신을 해야 한다. 그러면서 왜 이렇게 다를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것은 아마도 한국어의 독특한 존대어와 그에 파생되는 서열문화 때문이 아닌가 싶다. 원래 언어와 사회 문화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같이 변화하기 때문에 언어와 문화 그리고 사회제도는 역사적 지리적으로 나란히 놓고 비교분석을 해보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한국어와 한국문화는 세계의 다른 어떤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참 특이한 면이 있다. 문법적으로는 용언 즉 주어를 수식하는 동사와 형용사의 미묘하고 다양한 변화형이 많음을 꼽을 수가 있지만, 외국에서 생활을 하면서 비교해 볼 때 한국인의 정신과 실생활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은 높임말의 엄청난 발달이 아닌가 싶다. 예를 들어 영어로 have a meal을 한국어로 번역하려면 말하는 사람과 대상에 따라 상대방을 높이는 표현, 나를 낮추는 표현, 대상을 높이거나 낮추고 동사를 변형하는 등 다음과 같은 수십 가지 조합의 표현이 가능한데 그 미묘한 차이들을 외국인들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수라 드셨사옵니까?

진지 잡수셨어요?

진지 드셨어요?

식사하셨어요?

밥 먹었소?

밥 먹었는가?

밥 먹었어?

밥 먹었니?

밥 먹었냐?

밥 먹었느냐?

입매 했냐? 등 참 대단히 다양하다.

또한 호칭에 있어서도 너, 당신, 선생님, 자네, 귀하, -씨, -군, -양, -님, -분, 형, 언니, 아저씨, 아주머니, 각하, 영애, 영부인, 영감, 미스, 미스터, 사모님, 사장님, 회장님, CEO 등등으로 다양하고 가족 간에도 서열과 계통에 따라 같은 brother나 aunt가 형, 동생, 오빠 그리고 숙모 이모 고모 아줌마 등으로 나뉘며 직업도 어떤 것은 무슨 무슨 사를 붙이고 어떤 것은 -부, -원 등 차별이 있으며 그 호칭도 자꾸만 인플레이션이 생겨서 형, 누님, 어머님, 아주머니, 언니, 이모 같은 친지 간 호칭이 가깝거나 낯선 사이에게로 확장되기도 하고 약 50년 전까지만 해도 극존칭이던 선생님, -사가 이제는 대부분 사람들에게 쓰이게 되었으니 어쩌면 일종의 평등화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윗사람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을 꺼려하여 예전에는 호나 자, 아호 등을 만들어 불렀고 지금도 아랫사람에게만 이름을 부르고 윗사람은 직책이나 직급을 불러야 한다. 하물며 모두가 동무라며 평등사회라고 자랑하는 공산주의 북한에서는 왕조시대처럼 김일성 일가의 이름을 일반 인민들이 쓰지 못하게 하는 촌극을 벌이기도 한다.

그래서 항공대 최봉영 교수는 '한국 사회의 차별과 억압'에서 '한국어의 하대와 존대 호칭 구분이 엄격히 나뉜 존비어 의사소통 때문에 신분제가 폐지된 지 100년이 더 지난 현대에도 한국인들은 차별과 억압이 있는 유사 신분제 관계 속에서 살고 있으며 그것을 제대로 자각하지도 못 한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날 때마다 서열관계를 따지고 의식해야 하며 존대를 받고 싶어서 과잉권력욕을 가지게 되고 신분 상승을 위한 출세 지상주의의 폐해가 발생한다. 모두가 승진과 출세를 하려고 과잉 경쟁을 하며 그를 위해서는 아부와 비리와 편법을 쓰기를 마다하지 않으며 그것을 능력이라고 치부하면서 그러다가 돈이나 권력을 가진 윗자리에 서면 아랫사람을 무시하고 군림하며 소위 갑질을 하는 것이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행동한다. 그래서 이 존비어와 서열문화를 없애지 않으면 진정한 인권과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럼 한국어의 이 존비어는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세계의 언어를 보면 각 언어에 따라 어족에 따른 유사성과 계통이 있는데 자바어 등에서 약간의 높임말 표현이 있지만 세계어 어느 어족에도 한국어 같이 존비어가 발달한 것은 없다. 대부분의 외국어 그리고 외국 문화에서는 친소관계에 따른 표현의 차이(예의를 갖춘 표현과 격의 없는 표현의 차이)는 있지만 이것도 전통적 신분제가 없어지면서 많이 사라지고 아직 남아있는 표현도 한국처럼 연령이나 사회적 신분에 따라 달라지기보다는 상황과 친밀함의 정도에 따른 차이밖에 없는데, 문화적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어와 중국어에도 없는 한국어의 이 끈질기고 다양한 높임말은 과연 어디에서 왔으며 왜 이렇게 질기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가?

어떤 이들은 그 기원을 가부장 서열을 중시하는 유교문화에서 찾기도 하고 어떤 이는 일주일 먼저 들어온 선임도 높은 상사처럼 존대하고 복종해야 하는 군대문화가 사회에 확장된 권위주의 탓이라 하기도 하는데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조선 이전에는 10살 정도의 나이 차라도 거의 대등하게 대했다고 하니) 둘 다 서열문화를 심화시키는 데 상승작용을 한 것으로 모두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고대 한국어에 대한 기록이 없으니 언제부터 이런 존대어가 등장하고 발달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고 현실적으로 그렇게 중요한 사항도 아니다. 다만 만나자마자 나이 학벌 출신 성별 직책을 따져서 서열을 매기고 지시 복종을 강요하고 존대 하대를 하는 이 언어표현과 문화가 모두가 평등한 인권을 가진 시민으로 존중받아야 할 현대적 가치와 모순되며 각 분야에서 그 경직성으로 인한 인권 침해와 창의성 및 역동성을 저해하는 등 그 폐해가 적지 않으므로 서서히 완화해가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 실천 방법으로 모두에게 하대를 하기에는 정서적으로 무리가 있으니 차라리 모두에게 존대를 하자는 움직임이 있는데 바람직한 노력이라고 본다. 오랜 전통을 가진 언어습관과 문화를 하루아침에 고칠 수는 없지만 그러면서도 시간이 흐르면 반드시 변화해 가는 것이기도 하니 부부간 자녀 간 직장 동료 간에서 서로 존대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났으면 좋겠다.

어줍잖은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Thank you for reading.



매거진의 이전글헐! 헬 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