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 헬 조선

by 이윤수

겨울에 비가 많이 오는 것으로 유명한 Vancouver이지만 올 겨울에는 두 번이나 폭설이 내려서 아침에 일어나 침실 블라인드를 걷어보니 갑자기 아주 딴 세상 풍경이 펼쳐져 있다. 멀리 휘슬러 쪽 산봉우리는 하얀 베일을 쓴 신부처럼 함초롬히 서 있고, 잎이 모두 떨어져 조금은 을씨년스럽던 활엽수의 갈라진 가지들에도 빈틈없이 하얀 상고대가 맺혀서 마치 크리스마스 장식을 해놓은 것처럼 화사하고, 잔디밭이 있던 앞마당과 공원의 평지들도 부드러운 융단을 펼쳐놓은 듯 눈길이 닿는 곳은 온통 눈 세상 雪國이다. 오로지 예외로 색깔이 있는 것은 강둑을 따라 늘어 선 상록 침엽수의 짙푸른 잎새들 뿐 인데 가지 위에 내려앉은 하얀 눈과 대조를 이루어서 색감이 더욱 아름답고 생동감이 넘친다.

이렇게 눈이 내리면 출근길 걱정은 뒷전이고 경치 감상과 더불어 내가 은근히 기다리는 것이 새 구경이다. 캐나다는 자연이 참 잘 보존되어 있고 공원이 많아서 도시에서도 사슴이나 토끼, 곰, 코이오테, 비버 같은 야생동물을 심심찮게 구경할 수 있으며 캐나다 구스, 청둥오리, 붉은 깃 물까마귀, 룬, 해오라기 같은 새들은 눈만 들면 항상 볼 수가 있으며 여름에는 꽃밭에 예쁜 벌새가 날아드는 행운도 가끔 누릴 수 있다. 특히 오늘같이 눈이 좀 많이 내린 날에는 새들이 마당에 걸어놓은 모이통에 모여들기 때문에 창가에 가만히 앉아서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새 구경을 하는 기쁨이 크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귀한 손님은 파랑새 Blue Jay이다. 이 새는 몸집도 쾌 크고 툭툭 떨어지는 듯 가지를 옮겨 다니며 나는 모습도 품위가 있고 색깔도 흔치 않아 귀티가 나는 파란빛이며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아서 새들 왕국의 젊은 왕자 같은 느낌을 준다.

사실 파랑새는 전 세계적으로도 흔하지는 않다. 그래서 파랑새를 찾아 헤매다가 돌아와 보니 정작 파랑새는 집에 있더라는 동화에서도 파랑새는 행복의 상징으로 행복이 먼 곳이 아니라 깨닫고 보면 아주 가까이에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그러나 과연 행복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이 이야기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는 것 같다. 행복은 건강과 의식주 및 기본적 생존욕구 충족, 쾌적한 주거, 친밀한 교류, 사랑하고 사랑받기, 자존감, 일을 통한 성취, 운동과 휴식, 미래에 대한 안정감, 안전, 오락 활동 등 갖추어야 할 객관적인 환경적 요인이 결핍되어 있으면 장기적으로 행복하기 어려우며 반대로 그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어도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고 불만과 불평에 가득 차 있으면 또한 행복하기가 어렵다.

가바사와시온의 '당신의 뇌는 최적화를 원한다'에 따르면 사람은 스트레스 해소 호르몬인 엔도르핀이 나오면 행복감을 느끼는 데 이는 반려동물과의 접촉으로 치유감을 느낄 때,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좋은 풍경을 보거나 향을 맡을 때, 마음을 집중하거나 안정되어 있을 때 등의 상황에 분비된다고 한다. 결국 행복하기 위해서는 환경과 마음을 동시에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 정말 말처럼 쉽지가 않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에 ' 행복한 가정은 모두가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다르다'는 말은 불행에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어서 쉽게 다가오고 행복은 모든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하기 때문에 이루기가 쉽지가 않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정말 우리 주변에도 거의 모든 것을 갖추고서도 자식이든 돈이든 사랑이든 심지어 성적인 만족이든 어느 한 가지가 부족해서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가 있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이 행복을 느끼는 능력이 부족한 것 같다. 한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세계의 다른 어떤 나라에서 사는 것과 같지 않다. 물론 나라마다 또 사람마다 다 살아가는 방식과 환경이 당연히 다르겠지만 한국은 그중에서도 참 독특하다. 우선 같은 민족이 남북으로 갈린 지 불과 70년 만에 마치 천국과 지옥의 표본이나 되는 듯이 극명하게 대조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도 특이하며, 객관적으로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어서 풍요로움을 누리는 남쪽에서도 (최근 설문에 따르면) 행복 순위는 세계 75위이고 OECD 38개국 중 36위로 거의 꼴찌 수준이며 소위 Hell 조선이라며 한국 사람들이 스스로를 자조하며 절반 이상이 이민을 꿈꾸고 있다고 하기도 하고 반대로 한국이 세상에서 제일 살기 좋다고 강변하는 역설이 통하기도 한다. 과연 왜 그럴까?

외국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니 그 답이 좀 보이는 것 같다. 우선 한국 사람들은 남들에게서 인정을 받을 정도로 성공을 해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 믿고, 성공하기 위해서 '너무' 노력하다 보니까 오히려 불행해지는 것 같다. 물론 그 노력 덕분에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는 급속 경제성장을 이룬 성과도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또 그 결과 생긴 물질만능, 출세지향, 부정부패, 부실조급, 외형중시, 과시낭비, 획일화 입시교육, 과열경쟁, 부동산투기, 자살률 증가 등 부작용이 이 행복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고 있다.

사실 행복의 요인에는 상대적 만족도 분명히 있다. 한 심리실험에 따르면 심지어 원숭이조차도 평소에 만족하던 먹이를 먹다가도 옆의 원숭이에게 더 맛있는 먹이를 주면 갑자기 자기 먹이를 거부한다고 하는 데 더 복잡한 사회생활을 하고 심리적 만족감이 더 중요한 인간들은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이처럼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비교하는 것이 너무 심하여 대다수 사람들이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1등을 해야만 행복하다면 나머지 대부분은 실패자가 되어 당연히 불행할 것이고 그 1등마저도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한 스트레스 때문에 행복하기가 어렵다. 결국 모두가 불행한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캐나다에 오기 전에 한 캐나다 원어민 교사에게 '캐나다에 가기 위해서 뭘 준비할까?'라고 물었더니 영어공부를 하라는 대답 대신에 의외로 '좋아하는 운동과 취미'라는 답을 듣고 놀랐는데 과연 여기 와서 보니 여기 사람들은 대부분 남들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지 않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삶을 즐기며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익숙한 것 같았다. 그 좋은 예로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며 'Have fun'이라고 하지 한국 사람들처럼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라'라고 하지 않는다. 또한 캐나다 사람들은 '공부를 하기 위해서 대학에 가고' 한국 사람들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 공부하며‘, ' 캐나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돈을 벌지만', 한국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산다'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캐나다 사람들이 너무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rightness)에 매몰되어 사회보장과 그를 위한 징세가 과다한 면이 있어서 일을 많이 할 필요가 없고 따라서 자연스럽게 놀기만 좋아하고 공부나 일에 소극적이어서 미국보다 30% 정도 노동생산성이 낮아 자원은 풍부하지만 경제성장이 정체되고 의사 교사 엔지니어 등 고급인력 부족사태가 생길 정도로 나름의 어려움이 있고. 원론적으로 사람은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야 하지만 (세상사 다른 모든 것처럼) 일이든 노는 것이든 균형을 잡고 유지해야지 어느 한쪽에 지나치면 문제가 발생한다. 아무튼 좀 과장되고 자극적인 표현이었지만 한국 사람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살지 말고 자신의 내면에 충실한 삶을 살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이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바뀌어져야만 할 것이다.

사실 한국에서 사는 외국 사람들이 놀라는 것은 한국이 엄청난 균일사회라는 점이다. 패딩열풍과 명품패션, sns에 사진 올리기, 순간 끓어올랐다가 식어버리는 여론, 일상과 댓글로 왕따와 마녀사냥하기,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부동산 광풍 등 일상생활 속에서 이견과 개성이 존재하기 힘들어서 찍히거나 튀지 않는 것이 한국에서 학교나 사회생활의 최고요령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최재천이 ‘다르면 다를수록 ‘에서 강조했듯이 다양성은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키움으로써 생물종과 생태계의 존속과 번성에도 중요하지만 건강하고 평화로운 인간 사회의 유지와 창의적 발전 그리고 그 속의 개인의 행복에도 필수적이다.

그래서 이제 헬 조선이 해피 조선이 되기 위해서는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각자의 다양한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경제적 여건은 이미 상당히 갖추어져 있으니 용기 있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는 각자의 결단이 필요하고 그것이 모이면 새로운 행복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자, 한참 일 했으니 이제 밥 먹고, 눈이 장하게 쌓였으니 스키 타러 가야겠다.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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