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혼돈이 있었다. 세상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위험과 현상들로 가득 차 있었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도 대비도 할 수 없었다. 인간은 변덕스럽고 거대한 자연 앞에서 무기력했고 이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인간을 신을 만들었다. 이제 그 모든 것들은 신의 뜻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제는 세상이 혼돈과 무질서가 아니라 자연보다 더 힘이 센 신이 어떤 의지를 가지고 통제를 하고 있으며 인간은 다만 신의 뜻을 모를 뿐이므로 그의 뜻을 잘 받들어 순종하고 의지하기만 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더욱이 그 전지전능하신 신은 인간이 복종하고 잘 받들기만 하면 기꺼이 인간의 든든한 후견인이 되어주시니 얼마나 다행이 아닌가? 그래서 자연 앞에서 한 없이 무기력했던 인간은 신의 눈을 통해 자연현상에 대해 이해를 하게 되었고 신에게 기도와 희생을 바침으로써 강력한 신의 힘을 작동시켜 간접적으로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게 된 것이다. 게다가 보너스로 자신의 삶이 무의미한 생존이 아니라 선하신 신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엄청난 의미를 부여받게 되었다. 또한 부록으로 죽음 후의 영원한 행복까지도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 아아 축복이어라 믿는 자여! 영원하고 지극한 행복이 넘치는 천국이 바로 그의 것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간은 지혜가 발달하여 차츰 자연을 자신의 지식으로 분석하고 해석하고 이해하고 변화시켜 나가기 시작했다. 자연(신)이 제공하는 동식물을 취득하던 인간은 드디어 스스로 자연을 변화시키고 가꾸어 더 큰 수확을 얻어내기 시작했다. 그 후 지속적으로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고 기술을 발전시켜서 후대로 전달하고 분업과 협업에 효과적인 사회제도를 구축하여 생산력을 증대시키고 그 결과 풍요로운 물질생활과 수명의 연장, 문화 예술을 통한 지적 유희라는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이렇게 과학이란 이름으로 변덕스러운 자연 현상 뒤에 숨어있는 원리와 법칙을 찾아낸 인간은 그 범위를 역사와 우주와 영혼(마음)까지 무한대로 펼쳐서 드디어 신의 영역을 침범한 후 '창조주 신은 없다'라고 선언하게 되었다.
과연 신은 죽었을까? 아니다. 신은 새로운 모습으로 항상 부활한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지적했듯이 인간에게 있어서 신은 단순히 인간의 소망을 받아서 들어주는 존재만이 아니라 인간이 지구에서 성공하게 된 원동력인 인지혁명 즉 추상적인 것을 믿고 대규모로 유연한 협업을 가능하게 해 주었던 존재였다. 지금은 그 역할을 법률, 종교, 학문, 국가, 화폐, 병원 등이 나누어 맡고 있지만 과거에는 신과 그의 대리인인 성직자 그리고 그의 위임을 받은 정치권력자가 사람들에게 존재하지 않는 그 무언가의 가치를 믿고 거대한 사회 조직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도록 도와주고 지지해 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신의 도움으로 자란 인간이 힘이 커지자 결국 신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자신의 자유를 통제하던 과거의 경직된 신으로부터는 독립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인간이 인류의 합리적 지성과 도덕성, 질서 있고 조화로운 사회조직이라는 새로운 신을 믿고 따르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신이 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는 모르지만 인간이 존재하는 한 즉 홀로 자급자족하지 않고 분업과 협업을 통해서 생활을 영위할 수밖에 없는 한 인간은 무언가 추상적인 것(신)이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지탱하고 지지해 준다고 믿어야만 그 존재를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혹시라도 인간 개인이 스스로 완벽한 신이 되었다고 선언하는 날은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 오만의 날이 바로 타 생명체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고 선한 사회를 붕괴시켜 결국 인류가 파멸하는 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