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용사
‘오호호호--'
어디선가 들려오는 날카롭고 자극적인 소리에 윤주는 잠에서 번쩍 깨어났다. 이 소리는 싸움이 벌어졌을 때 적을 위협하고 전사들의 사기와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서 목청껏 최고조로 내지르는 소리다. 지금 가까이에서 싸움이 임박했거나 싸움이 벌어졌다는 뜻이다.
본능적으로 옆에 있는 활과 화살, 창을 움켜쥐려고 손을 뻗었다. 아무것도 없다. 손을 더듬어 주변을 살펴봐도 만져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옷도 만져지지 않는다. 황급하게 동쪽으로 향해 있는 티피의 덮개를 열었다. 환한 아침 햇살에 눈이 부셨다.
그리 공간이 넓지는 않지만 조립과 이동이 간편한 평원 부족의 여름 집인 티피는 곧고 긴 랏지폴 나무기둥 10개 정도를 모아서 위쪽을 묶고 아래쪽은 원형으로 벌려 뼈대를 원뿔형으로 세운 다음 그 위에 들소 가족을 덮어서 만든다. 중앙에는 어젯밤에 피웠던 모닥불의 재와 타다 만 그루터기가 한 무더기 남아 있다. 가죽으로 만든 민바닥 모카신을 꿰어 신고 밖으로 나선다. 속 바지만 입은 거의 벌거벗은 몸에 모카신을 신은 자신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울 것 같았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은 없다.
“‘웅크린 양처럼'은 바보래요, 벌거숭이래요, 겁쟁이래요..."
티피를 둘러싸고 기다리던 동네 꼬마들이 까르르르 웃으며 윤주를 놀려댄다.
‘웅크린 양처럼? 그게 내 이름인가?'
윤주가 밝은 바깥의 강한 조도에 눈을 적응하느라 실눈을 뜨고 둘러보니, 한 사내놈이 윤주의 활과 창을 치켜들고 흔들고 있고 또 한 놈은 윤주의 옷을 어깨 위에 목도리와 망토처럼 걸치고 개선장군처럼 두 발을 벌리고 팔을 허리춤에 괸 채 가슴을 내밀며 햇살을 등지고 위풍당당하게 버티고 서 있다.
“내놔! 내 거야!"
윤주가 한 발 다가가면서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그 놈들은 비웃듯이 히쭉 웃으며 허리춤에 차고 있던 토마호크(戰斧)를 빼내서 오른손으로 나무 손잡이를 움켜쥐고 상체를 살짝 숙여서 언제라도 달려들 자세를 취한다. 짧은 자루 끝에 가죽 끈으로 칭칭 묶여있는 돌 덩어리가 한쪽은 뭉툭하고 다른 쪽은 뾰쪽하게 되어 있어서 한 대 맞으면 바로 즉사할 것 같이 살기가 어려있다.
윤주가 멈칫하자
“네 거? 어디 한 번 가져가 보시지!" 하면서 왼손으로 윤주의 옷을 허공에 휘휘 저었다.
그가 지금은 웃고 있지만 윤주가 옷을 되찾겠다고 달려들면 토마호크로 그대로 후려칠 기세다.
‘에이, 옷 하나에 목숨까지 걸어야 하나?'라고 생각하며 윤주가 단념하고 돌아서려니까 구경을 하고 있던 아이들이 일제히
“‘웅크린 양처럼'은 바보래요, 벌거숭이래요, 겁쟁이래요..."라고 합창을 하며 놀려댄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 제각기 윤주의 물건을 하나씩 가지고 있지 않은 아이가 드물다. 요즘은 윤주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고 놀리는 것이 부락 아이들의 취미가 되어버렸다.
윤주는 화가 났으나 무시하고 티피로 들어가서 다른 옷을 찾아 입고 다시 나왔다. 아이들과 청년들은 괴성을 지르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몰려서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다.
윤주가 세수나 할까 하고 강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멀리 서쪽으로는 하얀 눈을 머리에 인 산 봉우리들이 줄지어 보이고 동쪽으로는 푸른 초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으며 남쪽으로는 언덕 아래 맑은 강물이 굽이쳐 흐르고 있었다. 아침 햇살에 붉게 물든 산봉우리들이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먼 산을 보며 터덜터덜 가다 보니 강 쪽에서 질 항아리 물동이를 이고 언덕을 올라오고 있는 한 여자가 보인다.
‘푸른 달빛의 유령'이다. 오래전 백인 일 가족을 습격할 때 납치해 온 여자 아이가 이제 처녀가 되었다. 하얀 피부에 금빛 머리칼, 파란 눈, 붉은 입술, 늘씬한 몸매를 가진 '푸른 달빛의 유령'이 윤주의 눈에는 더없이 아름답게 보였지만 마을 사람들은 허약하고 창백하여 병 걸린 사람 같다고 보기 싫어했다.
마을에서는 남자든 여자든 다부지고 햇볕에 그을은 사람들이 인기가 좋았다. 그래서 '웅크린 양처럼'과 '푸른 달빛의 유령'은 따돌림을 당했고 자연스럽게 두 사람은 서로 공감하고 친근해졌다.
윤주는 반가운 마음에 환하게 웃으며 달려가 물동이를 받아다가 두 팔로 안고 '푸른 달빛의 유령'의 티피 앞까지 날라 주었다. 이어서 좀 더 쉽게 물을 나를 수 있는 아이디어가 떠오른 윤주는 티피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허리에 차고 있던 단도를 꺼내서 나무를 자르고 깎고 가다듬어 작은 수레를 만들었다. 마을에는 바퀴 달린 수레가 없었다. 길이 없는 초원에서는 수레보다는 한쪽을 땅에 대고 끄는 들것이 더 편했다. 하지만 마을에서 강가 까지는 반반한 길이 나서 윤주가 만든 수레에 물동이를 얹고 가죽 끈으로 끌어당기는 것이 머리 위에 이고 오는 것보다 훨씬 편했다.
‘웅크린 양처럼'과 '푸른 달빛의 유령'이 수레를 시험 삼아 끌어보며 만족해하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윤주의 아버지는 혀를 끌끌 차며 중얼거린다.
“어이구 저 사내놈이 저렇게 여자들하고 어울리고 여자들이 하는 일이나 하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꼬?..."
“이제 곧 성인식을 치러야 장가도 갈 텐데..." 하며 곁에서 돌로 들소 가죽을 문지르며 지방질을 제거하는 무두질을 하고 있던 윤주의 어머니도 걱정이 태산이다.
“성인식을 하려면 싸움에 나가서 적의 머리가죽 하나는 벗겨와야 하는데..."
중얼거리던 윤주의 아버지는 화가 나는지 윤주에게 냅다 소리를 지른다.
“이놈아, 거기서 그러고 있지 말고 마을 청년들 하고 전투 연습이나 하러 가라!"
윤주가 아버지를 한 번 쳐다본 후 다시 '푸른 달빛의 유령'을 한번 쳐다보고 마을 청년들이 간 쪽으로 걸어간다.
“말 타고 가라!"
아버지가 못마땅한 듯 또 소리를 지른다.
윤주는 돌아서서 마을 공동 마장 울타리 안에 있는 자신의 말을 타고 북쪽으로 향했다. 잠시 말을 달리자 청년들이 모의전투를 하고 있다. 말을 타고 이리저리 달리며 화살촉을 제거한 활을 쏘고 역시 촉이 없는 창을 던진다. 그들은 말의 맨등에 올라타고 있고 윤주의 말에만 안장과 등자가 있다. 윤주는 그것이 편안하기도 하지만 말을 타고 달리면서 몸을 일으킬 수도 있고 뒤로 상체를 돌려 활을 쏠 수도 있어서 편리하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청년들은 윤주가 말에서 떨어질까 봐 겁이 나서 백인들처럼 마구를 쓴다고 비웃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윤주는 그들의 무리에 섞여 들어간다. 그들도 마지못해 윤주를 받아들인다.
얼마 안 있어서 갑자기 '우르르'하는 소리와 함께 땅이 흔들리고 멀리 지평선에서 먼지가 피어오른다.
“버펄로 떼다!"라고 소리를 치며 청년들이 그대로 말을 달려 사냥에 나선다. 거침없이 달리는 들소 무리 한가운데로 들어가면 위험하다. 들소 떼의 발굽에 짓밟히면 바로 즉사하고 몸이 만신창이가 된다. 그래서 대개 들소 떼 외곽을 돌면서 일부를 큰 무리에서 분리시킨 다음에 창으로 사냥을 하거나 지형이 허락하면 절벽으로 몰아서 떨어뜨려 죽인다. Jumping Pound라고 부르는 이 사냥법은 평원에 출구 없는 울타리를 쳐놓고 몰아넣어서 죽이는 독살 사냥법과 더불어 평원 부족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냥법이다. 창이나 활로 근거리에서 직접 찔러 죽이는 것보다 효율도 좋고 덜 위험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아무런 준비가 된 것이 없어서 전투훈련도 할 겸 직접 사냥을 하기로 했다. 앞서 가던 청년 하나가 가장 변두리에 있는 암 들소 한 마리의 등에 창을 꽂았다. 그러나 그 들소는 그대로 같은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그러자 뒤 따르던 다른 청년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그 들소를 집중 공격했다. 윤주도 같이 활을 쏘고 창을 던지며 들소에게 다가갔다가 멀어지고를 반복했다. 어느 순간에 그 들소가 무릎을 꿇고 고꾸라진다. 그러자 청년들은 쓰러진 들소는 내버려 두고 다음 타깃을 물색하러 들소 무리를 쫓아간다. 죽은 들소는 나중에 돌아오는 길에 수습을 할 예정이고 지금은 들소 떼들이 멀리 사라지기 전에 한 마리라도 더 잡아야 한다.
어디선가 갑자기 날카로운 전투함성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보니 멀리서 수족 전사들이 말을 타고 달려오고 있다. 아마 들소 떼를 정신없이 쫓아가다가 보니 부족 간의 암묵적 경계선을 넘어버렸나 보다. 마을 청년들은 즉시 들소 추격을 멈추고 전투태세를 갖추고 마주 달려간다.
야생에서는 실수가 용납이 되지 않는다. 실수로 경계선을 넘었다는 변명 같은 것은 통하지 않는다. 다른 부족이 경계를 넘어오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죽여서 내 영역을 지키는 것이 평원의 불문율이다.
소리를 지르며 말을 마주 달리다가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 오면 활을 쏘고 그다음에는 창을 던지고 아주 가까워지면 토마호크로 적의 머리나 가슴을 가격한다. 순식간에 충돌이 일어나고 양 편 전사들 몇 명이 말에서 떨어져 땅바닥에 뒹군다. 다시 말을 돌려 몇 번 더 충돌을 한 후 수족 전사들은 세가 불리한지 응원군을 요청하러 가는지 갑자기 말머리를 돌려 어디론가 사라진다.
윤주네 부족 청년들은 그들을 추격하지 않고 전투장으로 돌아와서 말에서 내린 후 땅바닥에서 신음을 하고 있는 수족 전사들의 가슴에 창을 찌르고 고통에 몸부림을 치는 모습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지켜보다가 아직 숨이 다 끊어지지도 않은 사람들의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움켜쥐고 다른 손으로 단도를 꺼내서 눈썹 위 이마에서 부터 피부를 얇게 '부욱' 그어서 머리 가죽을 벗겨낸다. 그다음에 피가 뚝뚝 흐르는 그 머릿가죽을 들고 승리의 포효를 지른 후 자신의 말 갈기에 묶어 매단다. 이들에게는 그것이 그들의 용맹을 입증하는 훈장이다.
이 경우 대부분의 '적'들은 사망을 하지만 간혹 그 후에도 생존을 하고 회복을 하여 머리가죽 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있는데 그들에게는 이것이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수치가 된다.
머리가죽 벗기기가 끝나고 나서야 청년들은 죽거나 부상당한 동료들을 수습해서 말 등에 태우고 마을로 돌아간다. 수우족이 반드시 돌아와서 보복을 할 것이기 때문에 서둘러 말을 달린다.
아니나 다를까 윤주 일행이 마을에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수우족이 마을로 쳐들어 왔다. 이번에는 수도 많고 파란 군복을 입은 백인들도 같이 왔다.
모두들 맞싸워서 간신히 막고 물리치기는 했지만 마을 사람들의 피해도 컸다. 여자들과 아이들도 많이 죽고 다쳤다.
그날 밤 추장의 티피에서는 회의가 열렸다. 마을의 원로 남자들이 티피 안에 둘러앉아 담배를 피우며 복수를 다짐한다.
“저 놈들이 백인들까지 데리고 왔는데 우리도 백인의 지원을 요청합시다."
한 원로가 분노에 찬 음성으로 제안을 했다.
“맞습니다. 우리는 이제 전사들의 수도 적고 창과 활만으로는 맞서 싸울 수가 없으니 우리는 빨간 군복에게 도와달라고 해야 합니다. 빨간 군복과 파란 군복은 우리와 수우족처럼 서로 원수들 이니까 아마 우리가 가면 기꺼이 도와줄 겁니다."
“좋습니다. 당장 빨간 군복 백인들 주둔지로 사람을 보냅시다."
“좋습니다."
모두가 동의하자 독수리 깃 장식 모자를 쓴 추장이 고개를 끄덕여 최종 결정을 한다.
회의를 마친 원로들이 밖으로 나와서 마을 한편에서 울고 있는 여자들에게 다가간다. 이번 싸움에 남편이나 가족을 잃은 여인들이 흐느끼며 단도로 자신들의 몸에 상처를 내고 손가락을 자르기도 한다. 이것이 자신들의 슬픔을 표시하는 수단이다. 그래서 남자들에게는 적의 머리가죽이 영광이고 여자들에게는 잘린 손가락과 몸의 상처가 영광이다. 원로들은 복수를 할 것을 맹세하며 간단한 장례절차를 치르고 주검을 마을 밖에 마련된 무덤으로 옮긴다. 대개 매장을 하지 않고 나무 위에 얼기설기 평상을 만들어 시체를 높이 올려둔다. 그러면 시체가 코이요테나 들개에게 뜯어 먹히는 것을 막고 민머리 독수리나 갈까마귀 같은 새들의 식사가 된다. 그래야 죽은 이의 영혼이 하늘의 조상들에게로 올라갈 수 있다고 믿는다.
잠시 후 윤주의 아버지가 티피로 와서 행장을 꾸려 다시 나간다.
“어디 가세요?"
윤주가 묻는다.
“응, 백인들에게 지원 요청을 하러 간다. 이번에는 빨간 군복하고 연합을 해서 수우족 이 놈들을 아주 씨를 말려버릴 거야!"
중상을 입고 누워있는 어머니를 보며 아버지는 이를 갈았다.
“안 돼요! 이렇게 백인들을 끌어들여서 우리끼리 죽이다가 보면 우리 모두가 다 망해요!"
윤주가 아버지를 막아서며 만류를 한다.
“뭐? 우리? 우리가 누군데? 저 수우족이 우리란 말이야? 저 조상 대대로 철천지 원수들이? 비켜라!"
아버지는 윤주를 옆으로 밀치고 티피 밖으로 나간다.
윤주는 흥분한 아버지를 더 막을 수 없을 거 같아서 급히 추장의 티피로 달려갔다.
추장의 티피 안에는 추장과 무당 샤먼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추장님 지금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라 수우족과 평화협정을 맺고 백인들과 맞서 싸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우리 모두가 다 망하게 됩니다."
“얘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어? 뭐 평화협정?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도 말고 꺼져라!"
추장이 귀찮다는 듯이 소리를 지르며 팔을 휘휘 내젓는다.
“아닙니다. 더군다나 백인들과 접촉을 하면 전염병도 돌게 됩니다."
윤주가 간곡하고 다급하게 간청을 한다.
“전염병? 그거야 나에게 맡겨. 내 주술과 비약이면 다 해결이 돼!"
이번에는 샤먼이 윤주를 힐난한다.
그래도 윤주가 굴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매달리자 추장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안 되겠다. 이 놈이 보자 보자 하니까 전쟁을 앞두고 이적행위를 하는 놈이로구나. 첩자나 매 한 가지다. 네 놈 조상이 어디 수우족이더냐?"
라고 호통을 치고는 티피 덮개를 열고 밖을 향해
“이놈을 당장 마을 밖으로 추방해라!"라고 큰 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안 그래도 가족을 잃은 분노에 가득 차서 화풀이가 필요한 사람들과 평소에 윤주을 못 마땅하게 생각하던 사람들이 달려들어서 윤주를 마을 밖으로 내쫓았다.
윤주는 빈 손으로 평원을 정처 없이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조금 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푸른 달빛의 유령'이 쫓아오고 있었다. 윤주는 뒤돌아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안돼! 돌아가! 평원에서는 추방이 곧 사형이야. 갈 곳도 없고 받아주는 다른 부족도 없으니 혼자서 살아갈 수도 없어! 따라오면 죽어! 돌아가!"
“그래도, 같이 갈래! 너 없으면 나도 마을에서 어떻게 살아?"
‘푸른 달빛의 유령'의 말이 애처롭고 간절하며 한 편으로 자신을 따르는 사람이 세상에 하나라도 있는 것이 고마왔다. 그러나 그녀까지 사지로 끌고 갈 수는 없다.
“아니야, 그런대로 적응해서 살아가면 돼. 백인들과 교류를 하게 되면 너희 친척들을 만날 수도 있을 거고... 그러니 난 괜찮으니까 얼른 돌아가!"
윤주가 그녀의 어깨를 잡고 돌려세운 후 등을 떠민다. '푸른 달빛의 유령'이 마지못해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서서히 옮기다가 다시 돌아와서 윤주를 와락 안은 후 자신이 들고 왔던 보퉁이를 윤주에게 내민다.
“말린 고기와 옷이랑 칼이야! 가지고 가!"
“고마워!" 윤주가 받아 들자 그녀는 눈에 그렁그렁 눈물을 매단 채로 돌아서서 마을 쪽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윤주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윤주는 손등으로 얼른 눈물을 훔치고 돌아서서 뚜벅뚜벅 걸어갔다.
한참을 걸어가자 어둠이 내리고 다리도 아프고 목도 마르고 춥고 배도 고팠다.
윤주는 아무 데나 털썩 주저앉아서 '푸른 달빛의 유령'이 준 보따리를 풀어서 마른 고기를 하나 꺼내서 씹었다. 그러다가 보퉁이를 베고 누웠다.
하늘에 별이 초롱초롱했다.
윤주는 별 빛이 '푸른 달빛의 유령'의 눈동자를 닮았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