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Force by force
출근 시간에 차를 몰고 나온 게 잘못이다. 광화문광장에서 또 시위라도 있는지 오늘따라 길이 더 막힌다. 시청 앞부터 엉금엉금 기어가던 차는 교보빌딩 앞에서는 아예 멈추어 서 있다.
윤주는 서대문 쪽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깜빡이를 켜고 서서히 핸들을 돌려 좌측 차선으로 접어들려고 시도했다. 왼쪽 차선에서 진행해 오던 차가 빵빵거리고 전조등을 켰다가 껐다가 하면서 더 앞으로 바짝 붙인다. 양보를 해 주기는 커녕 오히려 윤주의 진입을 방해하고 위협한다. 하는 수 없이 그 차를 보내려고 차로 구분선에 차를 어중간하게 걸치고 멈추어서 기다린다. 그러자 이번에는 윤주 뒤에서 따라오던 차가 빵빵거리면서 빨리 안 가냐고 난리다. 그래도 윤주로서는 대책이 없이 이리로도 저리로도 못 가고 있다가 왼쪽 차선에 빈틈이 조금 생긴 것을 보고 무조건 차 앞대가리를 밀어 넣었다. 접촉사고가 날 위험이 있었지만 이제는 무서운 놈이 피하라는 식의 막무가내 배짱을 부리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 왼쪽 차선의 차가 멈추어 서고 윤주는 슬금슬금 그 차 앞으로 진입을 할 수 있었다. 그 차에 양보해 주어서 고맙다는 신호로 손을 들어 흔드는 데 오른쪽 원래 차선에 있던 차가 지나치다가 멈추어 서더니 운전을 하던 사내가 차창 문을 내리고 삿대질을 하면서 소리를 지른다.
“야, 이 새끼야. 그 따위로 운전하려면 집에 가서 딸딸이나 돌려!” 하고는 눈을 부릅뜨고 윤주를 노려본다. 윤주도 화가 나서
“뭐라고? 야! 잘 났다 병신 같은 게! 차나 확 박아버려라 새끼야!”
그 순간 ‘부우웅’하는 급발진 소리가 나면서 욕을 하던 사내의 차가 앞 차를 들여 받았다. 두 차의 범퍼가 찌그러질 정도로 충격이 컸고 그 사내는 당황해서 차에서 내렸다.
윤주는 놀라기도 하고 자신의 악담 탓인가 하는 생각에 움찔했지만 모른척하고 슬금슬금 차를 앞으로 주행했다. 그러나 안 그래도 막히던 차들이 사고 여파로 더 막힌다.
‘이 놈의 광장을 만든 이후로 길이 더 막혀. 차라리 광장을 없애고 모두 도로로 만들었으면 좋겠네.’
윤주가 광장에 모여서 집회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광화문 광장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금세 아스팔트 길로 바뀌었고 집회를 하던 사람들은 도로 한 복판에서 어리둥절해하다가 황급히 자리를 피한다. 윤주는 깜짝 놀라서 뻥 뚫린 길로 차를 몰아 얼른 사직터널을 지나 서대문 고가로 접어들었다. 고가를 지나니 목적지인 세브란스 병원에는 금방 도착했다. 하지만 주차장에 도착해서 차를 세우고 나서도 윤주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할 수가 없었다.
윤주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험 삼아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단기 열려라!”라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주차장 입구 차단기가 쑤욱 위로 올라갔다.
윤주는 두 손으로 자기의 벌어진 입을 틀어먹았다.
‘대박! 오늘 이거 대박인데… 조심해야지 이거 잘못 실수하면 큰일 나겠다!’
무언가 모를 힘이 지금 윤주가 말하는 것을 다 실현시켜 주는 날인가 보다. 이번에는 말을 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차 앞유리창이 더럽네. 청소를 좀 해줘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보이지 않는 투명 브러시 같은 것이 내려오는 것처럼 차 유리창의 먼지와 오물이 아래로 밀려내려가면서 깨끗이 제거되었다.
‘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일단 최소한 오늘 하루는 대박이다. 무엇부터 해야 할까? 날이면 날마다 오는 행운이 아닌데…’
차에서 내리면서 윤주는 생각한다.
'가만! 지금 상황이라면 내가 오늘 굳이 예약한 대장내시경을 할 필요가 있나?'라고 생각하면서 도로 차 안으로 들어가서 운전석에 앉는다. 그리곤
"내 몸 안의 모든 병이 사라져라.'라고 주문을 외운다. 느껴지는 몸의 변화가 없다. 그러나 힘이 불끈 솟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잠시 후 눈과 목이 따갑고 숨을 쉬기가 불편하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다시 차에서 내려 병원으로 들어가 수납을 하고 예약된 내시경 실로 갔다.
"옷을 벗고 이 가운으로 갈아입으시고요..."
접수를 보던 간호사의 안내를 잠시 제지하고
"제가 오늘 검사를 못 받을 형편이 되어서요 그냥 잠시 의사 선생님 상담만 받고 가고 싶습니다."라고 하자 간호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잠시만이요" 하고 진료실로 잠시 들어갔다가 나오더니
"그래도 진료비 환불은 안됩니다. 들어가 보세요."라고 한다.
진료실에 들어가니 옅은 파란색 수술용 가운을 입은 의사가 책상에 앉아서 모니터로 진료기록을 보고 있다가
"내시경을 안 하신다고요? 몸에 이상이 있으신가요?"라고 묻는다.
"예, 제가 몸에 아무런 병이 없다는 진단을 방금 다른 병원에서 받았는데, 오히려 눈과 목이 따갑고 숨이 가쁩니다. 왜 그럴까요?"
처음 겪는 일이라 의사도 좀 당황한 기색이다.
"여기 잠깐 앉아서 입을 벌리고 혀를 내밀어 보세요."라고 하며 자기 앞의 등받이 없는 의자를 가리킨다. 윤주가 앉아서 입을 벌리자. 작은 손전등을 켜서 입 안과 혀, 눈동자를 비추고 살펴보더니 청진기로 윤주의 가슴과 등에 동그란 청진기를 대고 소리를 들어본다.
"말씀대로 별 이상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아무 병이 없는데도 그렇게 호흡기와 외기에 노출된 부분에 통증이 있다면 몸이 외부 자극에 과민반응을 하는 경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과민반응이요?"
"예, 우리 몸의 병은 크게 감염형과 발달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감염형은 세균이나 바이러스 약물 독물 등 외부에서 들어온 이물질이 몸에 염증이나 조직 파괴를 일으켜서 신진대사를 방해하는 경우이고, 발달형은 암처럼 몸 안에서 이상 조직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몸에는 보통 웬만한 병은 스스로 막아내는 면역능력이 있는데 병이 너무 없으면 이 면역능력이 사라져서 먼지 같은 아주 작은 자극에도 통증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몸에 아무 이상이 없다면 당장은 자극이 없는 음암 무균실에 들어가셔야 합니다. 약물에도 과민반응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약물처방을 할 수도 없습니다."
'이런 제길! 병이 너무 없는 것도 문제라니! 그래도 어떻게 하나? 당장 괴로우니 입원을 해야지!'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당장 입원을 할 수 있습니까?"
"예. 가능은 합니다만 입원비가 좀 많이 나올 겁니다. 특수시설이라서..."
"하는 수 없지요! 감사합니다."
윤주가 일어나서 인사를 하고 나오니 간호사가 입원수속을 안내한다. 하릴없이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입원실에 들어가니 모든 창문은 막혀있고 출입문은 이 중으로 봉쇄되어 있어서 간호사들은 우주복 같은 방호복을 입고 드나들고 있었다. 무료하게 침대에 앉아 있자니 답답해서 여자친구 선옥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하는 선옥의 질문에 일일이 설명을 하기도 귀찮아서 영상통화 버튼을 누르고 자신의 환자복 입은 모습과 병실 안을 비추어 주었다.
"갑자기 왜 입원이야? 어디 아파?"
선옥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아니야. 원래 내시경을 하러 왔는데 갑자기 몸이 좀 불편해서... 금방 괜찮아진데!"
"그래? 다행이네. 병문안 갈까?"
"응, 오면 좋지!"
"그래 좀 있다가 갈게!"
전화를 끊고 복도를 지나가는 예쁜 간호사를 바라보며 생각해 보니, 선옥이 밉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몸도 얼굴도 두리뭉실하게 평범한 편이라서 좀 더 예뻤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옥이가 세계에서 제일로 예쁘고 늘씬해져라!'라고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잠시 후 선옥에게서 전화가 왔다. 감사 전화일 거라고 추측하고 전화를 받았더니 선옥이 다급하게
"오빠! 나 병문안 못 갈 것 같아. 갑자기 남자들이 나만 보면 사귀자, 만나달라고 사정을 해서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라고 한다.
'이런 너무 예쁜 것도 문제구나. 안 되겠다. 이러다가 선옥이를 놓치겠다.'라고 생각을 하고 다시 마음속으로
'선옥이가 오로지 나만 생각하고 나만 사랑하게 해라!'라고 주문했다. 그러자 갑자기 선옥이
"오빠! 기다려. 너무너무 보고 싶어! 내가 지금 어떻게 해서든 달려갈게!"라며 헐레벌떡 뛰기 시작한다.
선옥은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오는 도중에도 전화를 끊지 않고 계속 윤주와 통화를 하고 병원에 들어와서도 간호사가 안된다고 말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굳이 무균복을 입고 병실로 들어왔다.
하지만 유리 보호대와 펑퍼짐한 무균복 때문에 예쁘고 늘씬해진 선옥의 얼굴과 몸을 마음껏 감상할 수가 없어서 못내 아쉬웠다.
반면에 선옥은 윤주의 손을 잡고 잠시도 놓지 않고 계속 말을 걸어서 나중에는 귀찮을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윤주가 짜증을 내도 선옥은 아랑곳하지 않고 윤주가 좋아죽겠다는 듯 윤주 주변에 껌딱지처럼 딱 붙어 있었다. 한편 병실 주변에는 어떻게 소문을 들었는지 천하일색 선옥의 얼굴을 한 번 보겠다고 남자들이 몰려들어서 병원업무가 마비될 지경으로 소동이 일고 있었다.
잠시 후 그 인파를 헤집고 윤주의 어머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떻게 알고 왔어?"
윤주의 물음에
"응, 아까 오기 전에 걱정이 되어서 내가 전화드렸어."라고 선옥이 대신 대답한다.
"아휴, 별 것도 아닌 데 괜한 걸음 했네!"라고 윤주가 투덜대자
"괜한 걸음이라니 이렇게 중환자실에 있으면서 무슨 별 일이 아니야?"
어머니는 혹시 중한 병이 아닐까 하고 걱정이다.
"아니야, 중환자실 아니고 무균실이야. 정말 별 거 아니야!"
"그래? 그럼 다행이고... 근데 여기 입원비가 엄청 비싸겠는데?"
한편으로 안심을 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 다른 걱정이 생긴다. 그래서 어머니들은 항상 걱정을 달고 산다.
윤주는 짜증이 나서
"아휴, 또 그놈의 돈 돈! 재발 돈 걱정 좀 그만해! 사람들이 눈만 뜨면 돈 걱정이야! 내가 세상 사람들 모두 부자로 만들어줄 수 있어! 걱정하지 마!"라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러자 갑자기 대소동이 벌어졌다. 사람들의 주머니와 예금통장에 갑자기 돈이 꽂히기 시작했다. 쓰면 또 생기고 또 쓰면 다시 또 생겼다. 마치 마르지 않는 샘물과도 같았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모두 다 돈이 풍족하니 아무도 일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당장 의사와 간호사도 집으로 가버리고 택시나 버스 기사도 차를 세워놓고 집으로 갔다. 식료품 점과 음식점도 문을 닫아서 어디서도 먹을 것을 구할 수 없고 어디에 갈 수도 없었다. 청소부도 일을 안 해서 천지사방에 쓰레기가 넘치고 전기 수도도 곧 끊길 것이 뻔했다.
대혼란이다. 돈을 수 억을 준다고 해도 생필품조차 구할 수가 없게 되었다. 돈은 사방에 넘치고 물자는 부족해서 빵 한 조각에 수십 억원이 넘는 하이프 인플레이션이 닥치자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다.
윤주는 당황했다.
'세상 사람들을 모두 부자로 만들어 주어도 문제라니... 이럴 줄 알았으면 김정은이라도 죽으라고 해서 통일이라도 되게 할걸!'하고 생각했다.
그러자 더 큰 혼란이 발생했다.
갑자기 김정은이 죽자 그 공백이 된 권력을 잡으려고 북한 군부 실력자들이 수하 병력을 사병화 하고 쿠데타를 일으키는 바람에 서로 총질을 하고 죽이는 무정부 내전 사태가 벌어졌다.
그 와중에 민간인까지 사상자가 생기고 핵무기 통제를 빌미로 중국군까지 북한으로 진주하자 그에 맞서서 미군도 옹진반도와 원산에 상륙하여 교두보를 확보하고 북한군, 중국군, 미군 그리고 남쪽에서는 한국군이 서로 대치하는 국제전 일보 직전인 상태가 되었다.
윤주가 놀라서 '김정은 다시 살려!'라고 했지만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수습을 할 수가 없었다.
윤주는 마지막으로 다급하게 외쳤다.
"나 이제 그만 재워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