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남자라는 동물은 섹스를 통해 사랑과 헌신을 느끼고
여자는 헌신과 사랑을 확인한 후에 섹스를 하려한다
또한
남자는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공감하고
여자는 교감을 채우기 위해서 사랑한다
이것이 남녀라는 두 별종이
욕망의 시점과 종착점이 엇갈리면서도
서로를 갈구하며 살아가는 비밀의 열쇠이다.
1일. 운수 좋은 날
눈을 떴지만 몸이 찌뿌드드한 것이 영 일어나기가 싫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맛있는 거나 먹고 재미있는 영화나 보면서 그냥 빈둥거릴까 생각을 해본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더라?'
그때 밖에서 엄마가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윤주야 밥 먹어라!"
'엄마와의 모든 대화는 밥으로 시작되고 밥으로 끝난다.
밥 먹었나?
밥 많이 먹어라!
밥을 저래 안 먹으니 삐썩 골지 쯧쯧쯧...
(난 키 173에 82kg 경증 비만이다)
밥은 꼭꼭 챙겨 먹어라!
도대체 밥을 한 끼라도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저 출처를 모를 믿음과 저 끊이지 않는 잔소리는 언제나 끝이 나려나?'
그래도 좋은 점도 있는 것은 책을 산다면 잔뜩 의심의 눈길을 보내다가도 밥 사 먹을 돈을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해서든 책을 팔아서라도 선뜻 내주신다는 거다.
아무튼 밖에서 엄마가 일어나라고 잔소리를 하는 거 보니까 일요일은 아닌가 보다. 무시하고 대판 싸워도 하루만 넘기면 되지만 윤주는 일어나서 착한 아들이 되기로 한다. 마음이 약하고 성실한 것도 죄다!
방문을 여니 고소한 냄새가 난다. 웬일로 아침부터 베이컨 구이람? 오, 내가 좋아하는 프렌치토스트와 메이플 시럽도 있네... 좋아 좋아 오늘은 출발이 좋아.
자 맛있게 아침을 먹고 어디로 갈까? 학교? 그래 특별히 할 것도 없는데 학교로 가 보자. 오늘 수업은? 이런 제길, 교양철학이다. 재미없다. 심리학 개론? 이건 교수님이 제법 재미가 있지. 고전문학 강독? 아후 지겹지만 예쁜 경희랑 같이 들으니 좋아. 그래 가 보자. 옷은 뭘로 입을까? 날씨는?
"박스비! 오늘 날씨 어때?"
윤주가 옷장을 열면서 어디라고 할 것 없이 허공에다 대고 묻는다.
"네, 오늘 서울 날씨는 맑고 기온은 최고 25도 최저 18도입니다. 풍속은 2KM/h로 가벼운 산들바람이 남 쪽에서 불어오겠습니다."
나긋나긋하고 맑고 고운 여자 목소리가 스마트 스피커에서 울려 나온다.
"박스비, 고마워. 목소리 섹시해. 사랑해!"
윤주가 실없이 농담을 건넨다.
"친절한 말씀 감사합니다."
기계는 성희롱성 발언에도 화를 내지 않고 여전히 친절하다. 윤주가 씩 웃으며 파란 하늘색 반팔 셔츠와 카키색 대님 바지를 고른다.
"좋아, 오늘은 이걸로!"
옷을 입고 방을 나와서 식탁에 차려져 있는 아침을 후다닥 먹었다. 입을 헹구고 신발장에서 가벼운 흰색 운동화를 꺼내서 바닥에 툭 던진 후 하나씩 발끝을 구겨 넣으면서 현관문을 나선다. 뒤꿈치가 미처 들어가지 않아서 까치발을 하며 몇 걸음 걷다가 신발 앞 코를 땅바닥에 툭툭 쳐서 발가락을 신발 안으로 바짝 밀어 넣은 다음 뒤창과 발 뒤꿈치 사이로 검지 손가락을 넣어 공간을 만든 후 발바닥을 안창에 디뎠다. 접혀있던 뒤축이 일어나 뒤꿈치를 감싸고 안정감이 생겨서 기분이 좋다.
윤주가 양 발로 땅을 다지듯 아파트 출입구 계단 아래 인도 블록을 탁탁 디디며 신발을 발에 완전히 맞추는 순간 초록색 종이 조각 하나가 바람을 타고 팔랑팔랑 바닥을 구르면서 윤주 곁을 지나 인도와 건물 사이 작은 화단에 경계목으로 나란히 줄지어져 심어져 있는 철쭉의 잎사귀에 걸린다.
'만 원짜리다!'
윤주가 잽싸게 주변을 둘러본다. 경비 아저씨는 출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등을 돌리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느라 바쁘고 아이와 엄마 하나가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윤주 쪽을 주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윤주는 신발 끈을 매는 척 한쪽 무릎을 굽히고 땅에 허리를 굽히며 주저앉는다. 잠시 신발 끈을 조였다가 손을 뻗어 만 원짜리 지폐를 슬쩍 낚아챈다. 그러고서는 슬그머니 일어나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움켜쥔 윤주의 손에 접힌 세종대왕의 구겨진 얼굴이 주머니 안으로 사라진다.
"이게 웬 떡이야! 잘 됐네! 오늘 용돈도 부족한데..."
콧노래와 휘파람이 저절로 나온다. 조금 늦은 출근 시간이라 전철역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아파트 단지 입구를 나서서 오른쪽으로 돌아서니 멀리 석계 전철역의 경사진 지붕이 고가 위로 보인다. 한 5분은 걸어야 한다. 그런데 윤주의 전방 20 미터쯤 앞에 한 아가씨가 엉덩이를 겨우 덮는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를 팔랑이며 걸어가고 있었다. 늘씬한 허벅지와 종아리 아래 하이힐이 바닥을 또각또각 리듬에 맞추어 두드릴 때마다 탐스러운 힙이 실룩이고 잘록한 허리 옆 오른팔 팔꿈치 아래에서는 앙증맞게 조그마한 고동색 핸드백이 흔들흔들 춤을 추고 있었다. 핸드백의 모서리에서 어깨로 팽팽하게 이어진 가죽끈은 그녀의 우아한 옆구리 선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윤주는 침을 꿀꺽 한 번 삼킨 다음 발걸음을 조금 빨리 하여 그녀와의 거리를 좁혀 나갔다. 뛰거나 너무 서두르면 티가 나니까 서둘러 전철을 타야 하는 사람처럼 조금씩만 속도를 높여서 자연스럽게 뒤를 따라갔다. 전철역 계단에 다다랐을 무렵에는 거의 두 팔 간격으로 따라붙었다. 하이힐이 계단을 딛고 올라선다. 석계역 계단은 가파르고 높다. 이제 여자의 오금이 윤주의 눈높이라 고개를 쳐들면 거의 그 녀의 속 옷이 보일 정도의 각도가 된다. 무슨 색의 속 옷일까? 혹시 티팬티일까? 무척 궁금하다. 그러나 윤주는 혹시나 그녀나 주변 사람들이 의심을 할까 봐 유혹을 꾹 참고 고개를 꼿꼿이 한 채 눈앞에서 펼쳐지는 엉덩이와 허벅지의 탐스러운 윤곽이 펼치는 휘황찬란한 향연을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을 한다. 숨이 가쁘고 맥박이 빠르게 뛴다. 단순히 계단을 오르기가 힘들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아쉽게도 계단은 곧 끝이 나고 여자는 왼쪽으로 돌아서서 몇 걸음 더 간 다음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 플랫폼에 서서 전철이 들어 올 방향을 한 번 쳐다본 다음 왼 손을 들어 손목의 시계를 한 번 보고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한 번 살랑 뒤로 젖힌 후 다시 고개를 들어 정면을 주시한다. 이제 여자의 얼굴이 궁금해진다. 여자의 뒤 쪽에 서 있던 윤주는 조금 비켜서 한 발 앞으로 나아가서 곁 눈으로 여자의 옆모습을 흘끗 바라본다. 코가 오뚝하고 눈이 크고 깊으며 눈썹이 가늘면서도 짙고 속눈썹은 길다. 입술과 턱 선이 부드러우면서도 군살이 없이 매끄럽다. 전체적으로 갸름한 서양 미인형이다.
윤주는 괜히 가슴이 설렌다. 잠시 후 전철이 들어온다. 윤주는 여자의 뒤를 따라가지 않고 다음 출입구로 들어가서 여자가 있는 쪽으로 몇 걸음 옮긴다. 전철 안은 그다지 복잡하지 않았다. 그러나 빈자리는 없었다. 윤주가 손잡이를 잡고 차창 밖을 내다본다. 하지만 윤주는 매일 보던 단조로운 도시 변두리의 고만고만한 건물과 스쳐 지나가는 바깥 풍경에는 관심이 없다. 그의 시선의 초점은 유리창에 반사되는 여자의 가슴에 꽂혀있다. 자세히 보이지는 않아도 여자의 가슴은 봉곳하게 솟아 있었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예쁜 가슴이다. 여자는 한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다른 손으로 휴대전화를 꺼내서 들여다보고 있다.
윤주는 시선을 돌려 앞의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물색했다. 오랜 통학의 경험으로 누가 가장 먼저 내릴지를 탐색한다. 연신 시계를 보고 있는 사람은 금방 내릴 것 같지만 의외로 시내 중심부까지 한참을 가는 경우가 많고 느긋하게 잠을 자고 있는 사람도 멀리 간다. 아주머니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변수가 너무 많아 판단을 하기가 힘들다. 가장 확률이 높은 것은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학생인데 아쉽게도 오늘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다음은 경희대나 외대 아니면 고려대에 가는 대학생들이다. 마침 두꺼운 원서 두어 권을 팔에 안고 앉아 있는 젊은 여자가 조금 옆에 보인다. 윤주는 전철의 흔들림에 잠시 몸을 맡기고 슬금슬금 그 여대생임이 거의 확실한 여자 앞으로 다가간다.
평소에는 서서 가도 무방하지만 오늘 그가 굳이 이렇게 자리에 집착을 하는 것은 나름 계획이 있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그 대학생은 잠시 후 이문역에서 하차했다. 윤주는 금방 자리에 앉지 않고 그 꽃무늬 원피스 아가씨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제스처를 취한다.
여자는 "괜찮아요!" 라면서 고개를 살짝 까딱하고는 다시 휴대전화에 시선을 돌린다. 윤주는 자리에 앉아 자신도 휴대전화를 꺼내든다. 이렇게 앉으면 휴대전화를 보는 척하면서 그 여자의 아랫배와 치마 앞부분을 주변시로 볼 수가 있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그 여자가 자신의 옆 자리에 앉을 수 있는 확률도 높일 수가 있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모든 일이 술술 풀린다. 윤주가 앉은 후 다음 정거장에서 윤주의 옆 자리에 앉아있던 한 커플이 내리고 그 원피스 아가씨가 윤주의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빽빽한 공간이라 팔뚝과 허벅지가 맞닿았다. 맨살도 일부 닿았고 어깨나 힙도 얇은 여름옷을 사이에 두고 그 몰랑몰랑한 감촉이 그대로 전해졌다. 조금 있으니 달콤한 여자의 화장품 냄새도 맡을 수가 있었다. 윤주의 심장이 다시 요동쳤다.
몇 정거장을 더 지나자 차 안이 좀 복잡해지고 서 있는 사람들이 윤주 앞을 막아서서 윤주의 시선은 더 자유로워졌다. 고개를 조금 돌리니 그녀의 파인 V넥 사이로 그녀의 가슴골과 연분홍 브래지어 레이스 트리밍이 보였다. 윤주는 그녀 속 옷의 분홍색이 작은 팬지 꽃무늬 겉 옷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른 시선을 돌려 앞을 무심한 듯 바라보았다. 다행히 서 있는 사람들의 시선은 윤주의 머리 위 차창 쪽을 향하고 있어서 아무도 윤주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전철이 종로를 지날 즈음에는 여자가 갑자기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더니 윤주의 어깨에 머리통을 기대고 잠을 자기 시작한다. 윤주는 여자가 혹시라도 잠을 깨거나 민망해할까 봐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전철은 윤주가 내려야 할 삼각지 역을 지나고 있었다. 그러나 윤주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그 여자의 베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었다. 여자가 내는 숨소리와 가볍게 코를 고는 소리도 윤주를 행복하게 했다. 마치 잠시라도 여자의 애인이나 남편이 된 것 같았다.
전철이 노량진에 도착하자 여자는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더니 허둥지둥 차에서 내렸다. 윤주도 따라 내릴까 하다가 그건 너무 심한 스토킹 같고 또 위험하기도 해서 그만 참고 다음 역인 영등포에서 내려서 되돌아오는 버스를 타고 학교로 갔다.
버스에서 내려서 상춘관에 들어서며 시계를 보니 교양철학은 이미 끝났을 시각이다
'에이, 재미도 없는데 잘 됐다.'
다시 돌아서서 학생회관으로 간다. 구내매점 진열 냉장고 유리문을 열고 시원한 에너지 음료를 하나 들고 아까 주운 만 원짜리를 내민다. 거스름돈이 두둑하게 손에 쥐인다. 밖으로 나와서 잔디밭 가장자리에 늘어선 벤치에 앉아 음료수의 뚜껑을 따고 한 모금 마신다. 상쾌하고 톡 쏘는 달콤한 액체가 코와 목과 입과 혀를 기분 좋게 자극한다. 윤주는 잔디밭에 다리를 뻗고 둘러앉아 책을 펴놓고 토론을 하고 있는 몇몇 남녀 학생들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음료수를 다 마시고 천천히 심리학개론 수업이 있는 경하관으로 걸어갔다.
심리학 개론을 강의하는 장필모 교수는 수업이 재미있고도 유익해서 인기가 많다. 오늘도 강의실에 학생들이 가득 찼다. 수강신청을 하지 않은 학생들도 청강을 올 정도라서 늦게 입장하면 자리가 없어서 계단에 앉아서 수업을 들어야 할 정도다. 오늘 강의 주제는 20세기 초반을 풍미했던 행동주의 심리학에 대한 소개와 비판이었다. 파블로프의 개 조건반사를 비롯하여 자극과 반응에 관한 동물 실험 사례도 재미있었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심리현상을 익살스럽게 풀어내는 교수님의 말솜씨가 좋아서 웃으며 듣다가 보면 어느덧 수업시간이 후딱 지나가고 그러면서도 핵심 내용은 머릿속에 쏙쏙 박혔다.
종이 울리고 학생들이 여전히 웃음기를 띤 채 강의실을 빠져나가고 윤주도 다음 강의가 있는 추림관으로 향했다. 그런데 강의실 입구 문에서 밖으로 나오는 학생들이 보였다.
'혹시, 휴강?'
기대감에 부풀어서 칠판을 보니 큰 백묵 글씨로 '오늘 휴강'이라고 적혀있었다.
'이건 또 웬 떡이냐!'하고 돌아서려는 찰나 경희가 입구로 들어온다. 짧은 커트 머리에 진한 선홍색 반팔 블라우스, 검은색 반 바지가 발랄한 어여쁜 여학생이다. 윤주가 찡긋 윙크를 하며
"오늘 휴강!"이라고 하자 경희는 애써 등교를 한 것이 헛수고가 되어 약간 실망스러운 표정을 한다.
"그럼 뭐 하지?"
발걸음을 멈추고 서서 경희가 난감한 표정을 짓자
"다음 수업 없어? 나도 이제 없는데... 같이 밥 먹으러 갈까?"
경희가 잠시 망설인다.
"내가 쏠게! 오늘 내가 횡재를 했거든.."하고 한 번 더 유혹을 한다.
"진짜? 그래 가자."
라며 흔쾌하게 윤주를 따라나선다.
두 사람은 학교 앞 경양식 집에서 돈가스를 먹은 후 바로 이 층에 있는 당구장에 올라가서 포켓볼을 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서너 게임을 치고 내려오니 벌써 어둑어둑하다. 다시 근처의 생맥주 집에 들어가서 소시지 안주로 500cc 두 잔을 먹었더니 따로 저녁을 안 먹어도 될 정도로 배가 든든하다. 경비는 만 원을 훨씬 넘어갔지만 윤주는 있는 돈을 모두 다 쓰기로 한다.
생맥주 집을 나설 때는 두 사람 다 한껏 기분이 고양되어 있었다. 취기가 살짝 오른 경희는 스스럼없이 윤주의 팔짱을 끼고 어깨동무도 하고 살짝 허리를 안기도 한다. 다시 윤주의 제안으로 버스를 타고 강남으로 진출하여 나이트클럽에 갔다.
나이트클럽 안에서 쿵짝쿵짝 울려 나오는 음악 소리는 입구에서부터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에서 벗어나 환락의 세계로 빠져들게 했다. 두 사람도 경비를 거쳐 웨이트의 안내를 받아 어느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방탄복'이라고 새겨진 명찰을 가슴에 단 젊고 잘 생긴 웨이트는 두 사람에게 명함을 내밀면서
"다음에도 또 찾아주세요. 입구에서 방탄소년단 아니 방탄복을 부르시면 잘해 드리겠습니다."라고 깍듯하게 인사를 한다.
윤주가 명함을 받으며 맥주와 마른안주를 주문했다. 실내는 어두웠고 번쩍이는 점멸 조명이 반짝이는 스테이지만 유난히 밝았다. 잠시 후 맥주가 나오고 술을 한 잔씩 기울인 두 사람은 스테이지로 올라가서 신나는 음악에 맞추어서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조명 탓인지 술기운 탓인지 그저 팔다리를 움직이기만 해도 춤을 제법 잘 추는 것 같아 보였다. 잠시 후 느리고 끈끈한 음악이 나오자 두 사람은 거의 껴안다시피 몸을 밀착하고 리듬에 따라 허리와 발을 움직였다.
경희의 볼록한 가슴이 윤주의 명치 부분을 가볍게 누르고 턱이 윤주의 어깨에 얹혀서 볼이 윤주의 목덜미에 닿았다. 경희의 숨결이 윤주의 쇄골 부분을 간지럽히자 윤주는 경희의 머리카락 끝을 입으로 물어서 잘근잘근 씹었다. 경희가 두 팔로 윤주의 허리를 꽉 껴안고 끌어당겼다. 윤주의 아랫도리가 불끈 솟아 경희의 아랫도리에 밀착을 한 다음에 맷돌을 돌리듯 부드럽게 비벼졌다. 두 사람은 눈을 감고 그 감촉을 느꼈다. 이제 두 사람 사이에 경계는 허물어졌다.
그러는 사이 음악이 멈추고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작은 촛불이 있는 테이블로 돌아갔다. 다른 테이블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는 동안에 누군가가
"어? 윤주 아니야?" 하면서 윤주를 멈춰 세운다. 희미한 조명에 비치는 얼굴은 초등학교 동창인 미례와 또 한 명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얼굴은 알만한 동기였다.
"어? 이게 얼마 만이야? 반갑다 얘! 누구셔? 친구? 괜찮으면 동석할까?"
세 사람은 한동안 호들갑을 떨며 해후의 기쁨을 누리고 함께 맥주와 양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 때문에 어차피 진지한 이야기는 할 수도 없고 그저 시답지 않은 우스운 농담을 하며 시시덕거렸다. 그런데 두 동창은 이상하게도 말을 하면서 윤주의 팔을 잡아끌기도 하고 러브샷을 한다며 팔짱을 끼기도 했고 시간이 흐르면서는 윤주의 볼에 자신들의 입술을 가져다 대기도 하고 노골적인 신체 접촉을 서슴지 않았다.
윤주는 경희 눈치가 좀 보였지만 경희는 화를 내기는커녕 경쟁이라도 하듯이 더 윤주에게 몸을 밀착하고 윤주의 무릎 위에 올라앉아서 내려오지 않았다.
밤이 깊어지고 취기가 많이 오르자 세 사람은 밖으로 나왔다. 동창들과 입구에서 헤어지자마자 경희가 윤주의 팔을 끌고 어디론가 앞장서서 걸어갔다.
모퉁이를 돌자 호텔 네온사인이 보이고 경희는 망설임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카운터를 지나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무슨 급한 용무가 있는 사람들처럼 종종걸음으로 복도를 지나 객실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경희는 신도 채 벗을 새도 없이 윤주에게 달려들어 입술에 입을 맞추고 윤주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윤주도 그에 호응하여 경희의 입술 사이에 혀를 집어넣고 벽에 등이 닿도록 경희를 밀친 다음 경희의 옷을 벗겼다. 그러자 경희가 무릎을 꿇더니 윤주의 팬티를 벗기고 윤주의 성기를 입으로 물고 빨아댔다. 윤주가 쾌락에 잠시 몸을 맡기다가 경희를 안고 침대에 눕혔다. 경희 가슴과 배와 불두덩과 허벅지 그리고 정강이와 발로 이어지는 곡선이 은은한 조명 아래 우아하게 휘어져서 물결처럼 꿈틀대고 있었다. 윤주는 잠시 그 모습을 눈으로 감상한 다음 침대 아래 바닥에 무릎을 꿇고 상체를 침대 위로 숙여서 경희의 몸을 입술로 핥고 두 손으로 어루만졌다. 이윽고 윤주가 몸을 일으켜 경희의 몸을 덮치려고 하자 경희가
"잠시만'이라며 몸을 빼고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 소리가 들리고 열려 있는 욕실 문 사이로 경희의 매끄러운 몸에 비누 거품에 쌓였다가 씻겨져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웬일인지 침대에 드러누워서 경희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윤주의 성기가 조금씩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술기운 탓인지 온몸에서 힘이 빠지면서 스르르 잠이 오기도 했다.
'어어 자면 안 되는데...'
윤주는 마음속으로 생각을 하며 잠을 자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버텼다.
하지만 경희가 큰 수건으로 몸을 감싸고 욕실에서 나왔을 때에는 윤주는 벌거벗은 채로 침대에 누워서 코를 골고 있었다. 자존심이 잔뜩 상한 경희는 윤주를 깨우지 않고 침대 시트 사이로 기어들어갔다. 경희도 피곤해서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운수가 '좋은' 날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