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 - 날개

2일. 날개

by 이윤수

“너, 또 걸어 다녔어?"

평소에 밥상머리에서는 좀처럼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 아버지인데, 오늘은 단단히 화가 나셨나 보다.

"예! 죄송해요!"

윤주는 구수한 된장국에 담긴 뽀얀 두부를 뜨려던 숟가락을 잠시 식탁에 내려놓고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걷는 건 천한 인간들이나 하는 짓이다. 앞으로 삼가도록 해라!"

아버지는 짧고 단호한 훈계로 사건을 마무리하려는 듯했다.

"예. 근데, 나는 게 잘 안될 때가 있어요."

윤주의 대답에 아버지는 흠칫 놀라며 옆에 앉아 있는 어머니를 바라본다.

"안 그래도, 윤주네 학교에서 연락이 왔어요. 그 일로 교장선생님 면담을 해야겠다고 어제 담임선생님이 전화를 하셨어요."

"그래? 당신이 가 볼 텐가? 시간이 되나? 난 오늘 좀 바쁜데..."

"예, 오늘 좀 늦게 출근한다고 회사에 미리 연락을 해 놓았어요. 윤주랑 같이 학교에 갔다가, 면담을 하고 출근하면 돼요."

"그래? 고마워요!"

"고맙긴요... 윤주 일인데요 뭘!"

어머니의 부드러운 응대에,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젓가락으로 김치를 한 점 집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두 사람의 대화가 그 정도에서 마무리되자 윤주는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혹시라도 어머니가 선옥에 관한 이야기나 자신이 가끔 기어 다니기도 한다는 말이라도 해서 아버지가 더 크게 역정을 내고 문제가 커질까 봐 걱정이었는데 이 정도에서 무마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버지는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서둘러 출근을 하고, 윤주는 가방을 챙긴 후 어머니와 함께 현관문을 나섰다. 문을 닫고 돌아서자 어머니가 먼저 무릎을 살짝 구부렸다가 펴면서 그 반동으로 제 자리 도약을 하고 그 관성으로 가볍게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어머니가 윤주의 머리 높이 정도의 공중에 정지한 채 윤주를 돌아보자 윤주도 심호흡을 한 후, 한 두 발 앞으로 도움닫기를 하여 탄력을 얻은 다음, 발을 굴러 계단 위 허공으로 떠 올랐다. 조금 낭창거리는 몸의 무게감이 느껴졌지만 별 무리 없이 허공에 떠오를 수 있었다. 어머니가 안심이 되는지 미소를 지으며 먼저 스르르 미끄러지듯이 날아가고 윤주도 그 뒤를 따라갔다. 상쾌한 바람이 얼굴을 쓰다듬듯이 흐르고, 엄마의 머릿결과 옷자락이 공기의 흐름에 따라 가볍게 뒤로 팔랑거렸다. 마을 집들의 지붕보다 조금 높은 4미터 정도의 고도를 유지하면서 두 사람은 학교 쪽으로 계속 날아갔다. 출근시간 대라서 일터나 학교로 가는 마을 사람들과 간간히 마주쳤고,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거리가 좀 있는 경우에는 웃으며 손을 흔들기도 한다. 지붕 위로 날아가면 목적지로 가기에는 더 가깝지만 남의 집 울타리 안으로 날아가며 남의 집 안을 들여다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기 때문에 모두들 지붕 위를 피해서 울타리 경계선 밖으로 날아가고 있다.

이윽고 두 사람은 주거지역을 벗어나서 들판을 지나간다. 멀리 학교 건물이 보인다. 아래쪽에 있는 논과 밭에는 익어가는 벼와 밀이 푸른색과 황금색 실을 엮어 짠 융단처럼 펼쳐져 있고, 부지런히 잡초를 제거하거나 이른 수확을 하고 있는 인간들도 보였다.

갑자기 앞에서 날아가던 어머니가 멈추어 서더니 등에 메고 있던 활을 벗겨서 왼 손으로 틀어쥐고 동시에 오른손으로 허리춤에 차고 있던 화살을 하나 꺼내 시위에 메웠다가 힘껏 당긴 후 아래쪽을 겨냥해서 냅다 쏘았다. 화살은 궤적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날아가서 땅바닥에 엎드려 잠을 자고 있던 한 인간의 등에 명중한다.

"악!"

화살을 맞은 인간은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들고 뒤를 돌아보다가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왜 게으름을 부리고 있어? 얼른 일해!"

어머니의 호통을 들은 인간은 황급히 시선을 거두고 엉거주춤 일어나서 한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화살을 주우면서 다른 한 손으로 낫을 들어 즉시 일을 시작하겠다는 몸짓을 한다. 주변에 있던 인간들도 손발을 재게 움직여서 자신이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과시한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어머니는

"독도 없는 고무 촉 화살이니까 금방 괜찮아질 거야. 엄살떨지 말고 오늘 중으로 관리소에 경과 보고하고 화살 반납해!"라고 외친 후 몸을 돌려 다시 학교 방향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예, 알겠습니다." 라며 공손히 머리를 숙이는 화살 맞은 인간을 곁 눈으로 보면서 윤주도 어머니의 뒤를 따라 날아간다.

잠시 후, 학교에 도달한 두 사람은 고도를 살짝 낮추어 교문을 통과한 후 땅에 거의 닿을 정도의 높이로 운동장을 가로질러 현관문을 지나 교장실 앞에 내렸다. 어머니가 문에 달린 고리 모양의 놋쇠 노커를 두드리자 안에서

"예, 들어오세요."라는 교장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니가 앞서고 윤주가 뒤를 따라 교장실 안으로 들어가자 책상 뒤에 앉아 있던 교장 선생님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두 사람을 반긴다.

"어서 오세요. 윤주 어머님!"

"안녕하세요? 교장 선생님!"

안면이 있는 두 사람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책상 앞에 있는 소파에 마주 보고 앉는다. 윤주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문 앞에 서 있으려니까

"너도 여기 앉아라."라며 교장 선생님이 윤주 어머니 옆 자리를 손으로 가리킨다. 윤주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을 한 후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자

"차 한 잔 하시겠어요?"라며 교장 선생님이 윤주 어머니에게 말을 건다.

"아닙니다. 방금 마시고 나왔습니다. 그나저나 바쁘신데 또 윤주 때문에 심려를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게 제 일인걸요 뭐! 저보다도 윤주 어머니께서 마음이 많이 쓰이실 것 같아요."

"예, 얘가 아직도 비행이 서툴러서 큰 일이네요! 도대체 왜 그럴까요?"

윤주 어머니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교장 선생님은 손에 들고 있던 윤주의 학교생활기록부를 들쳐보면서 대답한다.

"예, 글 읽고 쓰기, 산수 같은 학습 과목은 우수하고 예체능도 괜찮은 걸로 봐서 발달상에 문제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심리적 요인 등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좀 더 정밀한 진단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래서 오늘 어머님을 학교에 오시라고 한 건데, 여기 동의서에 서명을 해주시면 오늘부터 윤주를 특별반에 등록시키고 역사와 비행 실기 수업을 이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아마 금방 좋아질 겁니다. 너무 걱정은 하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어디에 서명하면 되나요?"

"예, 여기 읽어보시고 서명하시면 됩니다."

윤주 어머니는 교장 선생님이 내미는 서류를 읽어보지도 않고 바로 아래쪽 서명란에 사인을 한다.

"감사합니다. 잠시만이요."

서명을 받은 교장 선생님은 서류를 탁자에 내려놓고 일어서서 문 앞으로 걸어간다. 문을 반쯤 열고 밖에 있는 행정직원에게

"특별반 양 선생님 좀 오시라고 해주세요."라고 말한 후 돌아서서

"윤주 너는 나가서 기다렸다가 선생님 오시면 특별반으로 가서 수업을 듣도록 해라. 나는 어머니와 좀 더 이야기를 나눌 테니까!"

"예." 윤주는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간다. 행정실에서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안경을 쓴 중년의 특별반 양 선생님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이미 연락을 받았는지 양 선생님은 행정직원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서류를 받아 든 후 윤주를 쳐다보며

"윤주?"라고 묻고

"예!"라고 윤주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을 하자

"따라와!"라고 짧게 말하고 앞장서서 문을 나선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양 선생님에게 뒤처지지 않도록 윤주가 잰걸음으로 따라가다가 본관 모퉁이를 돌아서니 운동장 건너편에 별도로 떨어져 있는 단층 건물이 보인다. 평소에는 닫혀있다가 특별반 수업이 있을 때만 사용하는 교실이라 학생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장소이고 양 선생님과도 별로 접촉이 없어서 모두들 낯설고 두려워한다.

양 선생님이 열쇠를 출입문 손잡이 구멍에 넣고 비틀자 문이 삐이꺽 소리를 내면서 열린다. 선생님이 문고리를 잡고 서서 윤주에게 먼저 들어가라는 고개 짓을 한다. 윤주가 안으로 들어서자 선생님은 문을 닫고 창가에 있는 교사 책상으로 가서 자리를 잡는다. 윤주가 교실 한가운데 있는 학생용 책걸상 중 하나에 앉자 선생님이 서가에 꽂혀있는 책을 한 권 꺼내서 윤주에게 건네준다.

"그래, 비행에 문제가 있다고 들었는데, 한 번도 날아본 적이 없나?"

"아니요. 어릴 때는 잘 날아다녔는데 요즘에 가끔 날아가다가 갑자기 그냥 땅으로 떨어질 때가 있어요."

"추락하듯이 툭 떨어지나? 아니면 서서히?"

"몸이 무거워지는 것처럼 서서히 내려와요!"

"자주 그래? 오늘은?"

"이따금이요. 오늘은 괜찮았어요."

"몸이 아프거나 다른 동반 증상은 없고?"

"없어요. 그냥 날기가 잘 안 될 뿐이에요."

"그래? 그렇다면 심리적 요인일 가능성이 많은데.... 이게 쉬울 수도 있고 의외로 잘 안 풀릴 수도 있어! 어디 한 번 날아 봐!"

양 선생님이 자신도 살짝 몸을 공중에 솟구치면서 윤주에게 일어서서 날아보라고 손짓을 한다. 윤주가 일어서면서 그 추세를 이어서 가볍게 공중에 떠 오르자 선생님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시 앉으라고 손짓을 한다.

"비행을 안정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이 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먼저 역사공부를 좀 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준 책 제1과 '인류의 진화와 역사'를 펴봐라."

윤주가 자리에 앉아서 책을 펴자

"거기 인류가 모두 몇 종류가 있다고 되어있지?"

선생님의 질문에 윤주는 책을 잠시 뒤적이며 내용을 읽어보다가

"예, 4종류요."

"그래. 인류는 약 400만 년 전에 침팬지 등 유인원과의 공통조상에서 갈라진 후 여러 갈래로 진화하다가 지금은 초인, 인간, 하인, 수인 이렇게 4종의 현생인류로 진화했다."

설명을 하면서 선생님은 칠판에

' 超人, superman,

人間, human,

下人, subman

水人, aquaman'이라고 적는다.

"우리는 이중 어디에 속하지?"

"초인이요!"

"그래. 초인의 특징이 뭐지?"

"예, 날아다니는 거요."

"맞았어. 비행능력이 초인에게 가장 두드러지는 능력이지. 하지만 그 외에도 초인은 지능 등 모든 면에서 다른 인류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우리가 다른 인류를 지배할 수 있어."

"지배요?"

"그럼! 각 인류는 각자 하는 일과 역할이 달라. 인간은 식량생산 등 각종 노동을 하고 하인은 청소등 허드레 일을 하고 수인은 고기를 잡거나 수산물을 수확하지. 그리고 우리 초인은 이 모든 것을 조절하고 통제하지!"

"그래서 이동방식도 서로 다른가요?"

"그럼, 각각 하는 역할이 다르다 보니 거기에 가장 적합하게 진화를 한 거야. 땅에서 무거운 물건을 옮기며 노동을 해야 하는 인간은 강한 다리 근육이 발달해서 걸어 다니고, 바닥을 청소하고 잡일을 하는 하인들은 팔 근육이 발처럼 발달해서 기어 다니는 것이 편하고, 수인들은 물에서 사니까 헤엄을 치기에 적합하게 신체가 적응해서 뭍에서는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없게 되었지. 그리고 우리 초인들은 이 모든 것을 위에서 살펴보며 감독을 해야 하니까 하늘을 날 수 있게 된 거야."

"날개도 없는 데 어떻게 그게 가능해요?"

"그러기에 맑은 정신과 가벼운 신체 그리고 무엇보다도 날 수 있다는 신념과 연습이 필요한 거지. 그것을 모두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류 진화와 역사의 전 과정을 알아야 하니까 21 페이지를 펴봐라. 거기 초인의 직계 조상은 누구라고 되어있지?"

"호모 사피엔스요."

"인간은?"

"호모 데미소반"

"하인은?"

"호모 네안데르탈"

"수인은?"

"호모 하빌리스요."

"그래, 이런 30만 년에 걸친 진화의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초인의 비행능력과 세계 지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지. 그리고 성경에도 나와있듯이 초인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보다 우월한 것은 신의 섭리야. 그러니 너도 여기에 의문을 가지면 절대 안 돼! 그러면 비행능력에도 문제가 생겨!"

선생님의 단호한 말투와 쏘아보는 듯하게 매서운 눈 빛에 윤주가 마음속으로 뜨끔한 것이 있어서 시선을 아래로 깔자 양 선생님이 윤주에게 묻는다.

"뭐, 질문 있어?"

"그럼 초인과 인간은 서로 친구가 될 수는 없나요?"

"친구? 그냥 가볍게 알고 지내는 정도는 괜찮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남녀 간의 애정이라거나 지나치게 친밀한 우정을 나누게 되면 반드시 문제가 생겨. 좀 잘해주다가 보면 지들이 우리랑 같은 사람이라고 착각을 하고 말을 안 듣고 대들거나 반항을 하게 되지. 거기 105페이지에 보면 인간들이 반역을 꾀하다가 작은 전쟁이 벌어지고 진압된 역사가 있지? 그런 사태가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절대로 인간들에게 곁을 주면 안 돼. 처음부터 경계를 분명히 하고 신분이 다르다는 것을 잊으면 안 돼."

"혹시 사귀면 어떻게.."

"뭐라고? 사궈? 초인과 인간이? 그런 말도 안 되는...

혹시라도 그러면 그 초인도 인간으로 강등되는 거야. 그러면 18세 성인이 되면 지급받는 인간 징벌권과 활도 당연히 못 받고... 평생 다른 초인의 지배를 받으면서 고된 노동을 하며 살아야지! 왜? 누가 그렇게 멍청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도 있어?"

"아니요. 그냥 궁금해서..."

"그런 건 궁금해하지도 마. 어쩌면 네가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지니까 비행에 문제가 생기는 것인지도 몰라."

양 선생님은 이렇게 말은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윤주의 문제가 무엇인지 어느 정도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순간의 유혹에 넘어가서 불행을 자초하고 평생 후회하지 말고 초인으로 태어난 것에 감사하며 초인들이 다스리는 세계질서에 충실히 따르는 게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길이야. 이론 수업은 이걸로 마무리하고 실기 실습을 해 보자. 밖으로 나가자."

밖으로 나오니 선생님이 운동장 한편에 있는 나무로 만든 작은 탑으로 다가갔다. 선생님을 따라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가니 난간도 없는 작은 플랫폼이 나타난다. 두 사람이 올라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찔하게 공포감이 몰려온다.

"이 높이가 심리적으로 가장 무섭게 느껴진다는 11미터다. 여기서 비행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도록 훈련을 하는 거다. 자, 한 번 뛰어볼까?"

선생님은 평지를 걸어가듯이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가다가 나무 발판이 끝나는 곳에서도 같은 고도를 유지하면서 미끄러지듯이 허공으로 나아간다. 천천히 앞으로 흘러가면서 선생님은 뒤를 돌아본다.

"나처럼 따라 해 봐!"

윤주도 발판을 걸어가다가 한 발이 허공으로 나가는 순간 멈칫한다. 발아래로 보이는 땅이 까마득하여 떨어지면 죽을 것만 같다. 상체는 앞으로 나가려는 데 발이 발판에 고정된 것처럼 몸이 휘청하며 멈추어 선다.

"서지말고 계속 앞으로..."

양 선생님의 호령에 윤주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들고 한 발 앞으로 내딛는다. 추락하지 않는다. 몸이 공중에 둥실 떠 오른다. 이어서 선생님을 따라서 고도를 낮추었다고 높였다가 빙빙 돌기도 하고 나선형을 그리면서 서서히 땅으로 내려왔다.

"오케이. 이번에는 네 마음대로 날아 봐!"

선생님이 빠르게 몸을 솟구쳐서 탑 위로 올라가며 외쳤다. 윤주도 속도와 고도를 높여서 강 가의 나무들 위로 날아갔다가 발을 물에 스치듯이 날아가 보기도 했다. 손과 발을 조금만 비트니 마음먹은 대로 몸이 부드럽게 날아간다. 상승과 활강과 하강과 착륙을 반복하는 동안 시원한 바람이 윤주의 몸을 따라 흐르고, 미끄러지듯이 지나가는 풍경들이 윤주의 기분을 고양시켜서 거의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신이 나서 날아다니는 윤주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양 선생님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윤주가 학교와 주변의 공원 위로 이리저리 한참을 날다가 문득 수업 중이라는 것을 상기하고 탑으로 돌아오자 선생님이 보이지 않는다. 양 선생님은 윤주가 마음껏 비행을 즐기도록 내 버려두고 이미 특별반 교실 안으로 들어가서 생활 기록부를 작성하고 있다.

'인류 역사 개요와 비행 실습 수료. 우수함. 동기부여 이외에는 특이 사항 없음. 추가 특별수업 불필요.'라고 기재한다.

윤주가 교실로 들어오자

"재미있었어? 오늘 수업은 이걸로 마치자. 집에 가도 돼."

"감사합니다."

윤주는 꾸벅 인사를 하고 바로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을 지나친 다음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아래를 내려다보니 선옥이 개울가 물레방아에서 곡식을 빻고 있는 것이 보였다. 주변을 한 번 둘러본 다음에 윤주는 고도를 낮추어 선옥 옆에 착륙했다.

"안녕? 잘 지냈어? 힘들지 않아? 도와줄까?"

"응, 괜찮아."

선옥은 들고 있던 망태기를 바닥에 내려놓고 윤주의 손을 잡는다. 그러자 윤주는 선옥의 손을 당겨 물레방앗간 안으로 들어가며 선옥의 턱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선옥의 입술에 자신의 입을 맞춘다. 선옥이 입을 벌려 윤주의 혀를 받아들이자 두 사람은 두 팔을 서로의 등과 허리 뒤로 돌려 으스러지게 껴안고 포옹을 한다. 한참 동안 서로를 탐닉한 다음 두 사람은 물레방앗간 바깥의 동정을 살핀 후 옷을 벗고 황홀한 시간을 보낸다.

격정의 순간이 지나고 두 사람은 나란히 누워서 이야기를 나눈다,

"혁명에 동참할 사람들은 좀 규합이 되었어?"

윤주가 선옥의 눈을 지긋히 바라보며 묻는다.

"응, 하인들 쪽에서는 참여할 사람들이 많은데 인간과 수인들은 반응이 시원치 않네!"

"왜? 다 같이 잘 살자는데 뭐 망설일 것이 있나?"

"예전에 봉기에 실패한 경험도 있고 아무래도 인간과 수인들은 상대적으로 대우가 좋으니까..."

"그렇다고 이렇게 초인들의 지배를 받는 게 더 좋다고? 이해를 할 수가 없네!"

"초인이 강제하던 지배구조가 깨지면 힘든 노동을 하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테고 특히 하인들이 하던 더럽고 위험한 일을 할 사람이 없으면 세상이 혼란스러워지고 식량과 옷 등 생필품 공급도 안 될까 봐 그걸 걱정하는 것 같아."

"누가 그래? 네 친구들이?"

"아니, 젊은 층은 동조를 하는데 인간 어른들이 회의적이야. 실제로 봉기하면 거의 초인 쪽에 붙을 기세야. 그러니 이제 어떡할 거야? 포기할 거야?"

"아니, 원하는 사람만이라도 규합을 해서 일어서야지!"

"거의 승산이 없는데도? 그러다가 실패하면 너도 영영 초인 대접을 못 받을 텐데.. 괜찮아?"

"어차피 너와 함께 살면 난 초인 지위에서 쫓겨나."

"차라리 날 포기..."

"안 돼. 그럴 순 없어. 나 혼자 잘 살겠다고 너를 이렇게 살게 둘 수 없어. 그리고 너 없는 내 삶은 의미도 행복도 없어. 행복도 불행도 너랑 같이 할 거고 천국도 지옥도 같이 갈 거야!"

단호한 윤주의 말과 눈빛에 선옥도 감격하여 윤주에게 입을 맞추고 팔로 윤주를 껴안는다.

잠시 후 두 사람은 몸을 일으켜 옷을 챙겨 입고 물레방앗간 밖으로 나온다.

"봉기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해가 떨어지면 모두 이리로 모이라고 해. 그러면 내가 위에서 망을 보다가 초인들의 움직임을 알려줄 테니 어둠을 틈 타 초인들의 활과 화살을 우선 빼앗으라고 말해 줘!"

"응, 알았어."

선옥이 인간들의 마을로 갔다가 잠시 후에 몇몇 인간들과 하인 다수를 이끌고 돌아왔다. 사람들이 둘러서서 잠시 작전 계획과 역할 분담을 하는 동안 어디선가 갑자기 화살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혁명 계획이 누설이 되었는지 초인들이 순식간에 나타나서 이미 물레방앗간 주위를 포위하고 활을 겨누고 있었다. 윤주가 얼른 하늘로 날아보려고 했으나 이상하게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독화살을 맞은 사람들이 픽픽 쓰러지고 방패로 몸을 가려보기도 하지만 빠르게 하늘을 날아다니며 빈 틈만 보이면 어김없이 화살을 날려 보내는 초인들에게는 어떻게 저항할 방법도 없었다. 인간과 하인들은 땅 위에서 이리저리 몸을 피해 도망을 가려고 하다가 하나하나 화살을 맞고 죽어갈 뿐이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선옥의 손을 잡고 산 쪽으로 달려가던 윤주의 눈이 어느 순간 아버지의 눈과 마주쳤다. 아까부터 공중에서 윤주의 움직임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던 윤주의 아버지는 결심이라도 한 듯이 가만히 활시위를 당겨 윤주를 겨냥했다. 윤주도 헐떡이던 숨을 멈추고 서서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가 손을 뻗어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자기 쪽으로 오라고 손짓을 했다.

윤주는 버티고 서서 선옥의 손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잠시 망설이던 아버지는 심호흡을 한 번 한 후에 활시위를 놓았다. 복어에서 추출한 치명적인 독이 묻힌 화살이 윤주의 가슴에 박혔다. 화살촉에 묻은 신경독은 혈액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가서 윤주의 모든 근육을 마비시켰다. 바로 심장의 박동이 멈추고 호흡이 멎고 손발의 힘이 빠져서 땅바닥에 쓰러진 윤주에게 아무런 감각도 고통도 없는 급작스러운 죽음이 찾아왔다.

선옥은 윤주의 늘어진 머리를 무릎 위에 안고 주저앉아서 윤주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눈꺼풀은 열려있었지만 윤주의 동공은 이미 초첨이 없이 풀려서 먼 허공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선옥이 윤주의 어깨를 부여안고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울지 마라. 너는 눈으로 울지만 나는 지금 가슴으로 울고 있다.

너는 더 늦기 전에 얼른 네 갈 길을 가라.

남편이나 연인은 잊고 다시 구할 수 있지만

자식은 한 번 가면 보낼 수도 새로 만들 수도 없는 것이 운명이다."

언제 왔는지 윤주의 어머니가 선옥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위로한다.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아픔과 원망을 감추고 자식이 사랑했던 한 인간을 죽은 자식을 대신해서 보살피려는 위대한 모정이었다. 이것을 깨닫자 또 다른 의미의 눈물이 선옥의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 윤주의 하얀 볼에 뚝뚝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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