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일 오후 현재 -
"알겠습니다. 제가 조금만 더 생각해 보고 결정을 하겠습니다. 제가 모험을 할 게 하나 있어요."
"모험이요?"
"예. 제가 짐작이 가는 진범이 하나 있거든요!"
"진범이요? 그걸 윤주 씨가 어떻게?... 형사들도 전혀 다른 가능성이 없다던데요?"
"전에 선옥이 한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려요.
어쩌면 그놈이 범인일지도 몰라요."
"그게 누군데요?"
"AI요!"
예상치 못한 윤주의 말에 양 변호사는 입을 다물지못하고 멍하니 윤주를 바라본다.
'이 사람이 제정신이 아니구나!' 하는 표정이다.
"선옥이 그러는데 자기 집 AI 스피커가 사람처럼 말을 하고 질투도 하고 그런다고 했어요."
"인공지능이니까 그럴 수 있지요. 요즘 다들 스피커랑 이야기도 하고 묻고 답하기도 하잖아요?"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지가 애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굴고 간섭도 하고 그런다고 했어요."
"직접 들어보셨어요?"
"아니요. 내가 있을 때는 다른 스피커처럼 평범하게 답하고 선옥이 혼자 있을 때만 친근하게 군데요."
"그럴 리가요? 뭔가 착각이 있었겠죠. 괜히 이상한 사람 되지 말고 제가 말씀드린 대로 시인을 하는 것이..."
"아니에요. 억울해서 도저히 안 되겠어요. 20년 받더라도 한 번 시도해 볼래요."
"아니 윤주 씨 그러지 마시고... 설령 그렇다고 해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고 입증할 방법도 없잖아요? 너무 무모해요! 제 말대로 하세요."
"알았어요. 변호사님 말 뜻은 이해했으니까 염려 마세요. 이건 순전히 제 선택이고 그 결과도 제가 책임질게요."
윤주는 말을 마치고 결심을 굳히려는 듯 벌떡 자리에서 일어선다.
양 변호사도 난감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본 교도관이 자신도 자리에서 일어나서 출입문을 연다. 윤주가 앞장서서 걸어 나가자 교도관은 수감방이 아닌 정문으로 가는 길로 인도한다. 현관을 나서기 전에 포승줄로 윤주의 손목과 팔꿈치를 한 번 더 결박하고 기다리던 경찰 승합차에 윤주를 태운다. 차 안에는 추 형사와 말없는 형사가 앉아 있다.
차는 선옥의 아파트에 금방 도착했다. 이미 기자들과 구경꾼들이 입구에서부터 기다리고 있다가 경찰 승합차가 들어서자 선옥이 살던 123동까지 따라온다. 123동 출입구에도 한 무리의 구경꾼들이 기다리고 있고 윤주가 포승줄에 묶인 채로 차에서 내리자 선옥의 부모님이 윤주에게 달려들며
"야, 이놈아! 천벌을 받을 놈아!"라고 울부짖는다.
경찰과 사람들의 제지를 받고 바닥에 퍼질러 앉아 통곡을 하는 선옥의 어머니를 지나쳐 윤주와 형사 일행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으로 올라가서 개방형 복도를 따라가다가 907호로 들어갔다.
입구에는 '수사 중 Police Line 출입금지' 표시가 된 노란 테이프가 둘러쳐져 있다. 현관문을 지키던 정복 경찰이 경례를 하면서 통제 테이프를 살짝 들어준다.
윤주에게도 익숙한 집 안에는 윤주가 마지막 나올 때 그대로 보존이 되어있고 마네킹 하나가 침대에 눕혀져 있었다.
"자, 그럼 들어올 때부터 그대로 재현해 봐.
움직이는 부분은 박 순경이 잠시 대역하고..."
추 형사가 곁에 있던 여자 경찰에게 부탁을 하자 그 여경이 윤주의 옆에 선다.
윤주는 여경의 허리를 잡는 시늉을 하면서 신발을 벗고 주방으로 간다.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고 주방 선반에서 유리컵을 꺼낸 후 거실로 와서 같이 맥주를 마시는 동작을 재현한다.
"안주는? 오징어 과자가 있던데?"
"아, 그건 올 때 요 앞 슈퍼에서 사 왔어요."
"아질산나트륨은 언제 탔어? 맥주에 섞은 거 아니야?"
"아니요. 저는 안 탔어요."
"너 끝까지 이럴래? 여기 네 지문이 묻은 컵에 아질산나트륨이 남아있고 선옥의 위장에도 치사량이 넘는 양이 검출되었어. 이렇게 증거가 확실한 데도 자꾸 피곤하게 할래?"
"암튼 전 몰라요. 여기서 이렇게 맥주 한 잔 마시고 나니까 선옥이 이렇게 옷을 벗고 다리를 벌리고..."
윤주가 여경의 옷을 벗기는 동작을 하니까 여경이 몸을 움츠린다. 그러자 추 형사가
"마네킹 가져와!"라고 냅다 소리를 지른다. 정복 경찰 하나가 침대에 있던 마네킹을 가지고 오자 윤주는 마네킹의 팔다리를 비틀면서 다양하고 외설스러운 성교자세를 연출한다. 그런데 그 자세들이 모두 여자가 도발을 하고 윤주는 수동적인 자세들이다. 마네킹이 윤주 위에 올라타기도 하고 엎드려 엉덩이를 내밀기도 하고 윤주의 성기를 입으로 빠는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여경이 낯을 붉히며 외면을 하자 추 형사가
"아, 그건 그만 됐고... 목을 조르거나 하진 않았어?"
"아니요. 그럴 틈도 없었어요. 어찌나 격렬하게 원하던지..."
윤주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어디선가
"아니야. 거짓말!"이라는 소리가 났다.
사람들이 놀라서 소리가 나는 방향을 보니 TV 옆에 놓여 있던 AI 스피커에서
"선옥은 그렇게 야하지 않았어. 내가 알아.“라는 남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윤주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아니요. 더 해 달라고 애원하고 소리 지르고 좋아서 미치겠다고 죽어도 좋을 만큼 황홀하다고..."라고 도발을 하자 스피커가 다시
"거짓말! 선옥은 너를 좋아하지 않았어. 네 그 더러운 육체보다 나와 대화하기를 더 좋아했어."라고 화가 난 어조로 대꾸했다.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서 넋을 놓고 있는데 윤주가 계속 스피커를 몰아세웠다.
"그래서 네가 선옥을 죽였어? 질투가 나서?"
"아니, 원래는 너를 죽일 계획이었지!"
"네가 맥주에 약을 탔어?"
"아니 저기 있는 경비원이 탔지!"
그러자 입구에서 집 안을 들여다보고 있던 아파트 경비원 하나가 후다닥 도망을 친다.
"잡아!"
추 형사가 소리치자 입구에 있던 정복 경찰이 쫓아가서 잠시 실랑이를 한 후에 경비원을 붙잡아 온다.
"그럼, 선옥이 왜 죽은 거야? 약물은 어떻게 먹게 됐어?"
이번에는 추 형사가 스피커에게 묻는다.
"통조림 햄에 넣었지."
"네가 어떻게?"
"쉽지는 않았어. 저 놈이 햄을 좋아해서 선옥이 정기적으로 햄을 온라인 주문하는 걸 이용했지. 아질산나트륨은 육가공식품에 정상적으로 들어가는 첨가제인데 자동화 공장에서 한 통에만 치사량이 넘는 양인 3그램을 넣게 프로그램을 조정하고 그 시리얼 넘버를 이 집으로 배달이 되도록 만들었지. 그런데 그날 공교롭게도 그 햄을 선옥이 먼저 먹은 거야. 저 놈은 과자를 먹고. 내가 인간의 변덕은 미처 계산을 못했어."
"그럼 저 경비원은?"
"내가 사주해서 사후에 약물을 타도록 시켰지. 비상 키도 가지고 있고 자연스럽게 들어올 수 있는 사람으로..."
"그건 왜?"
"내가 한 걸 감추고 저 놈 짓인 걸로 만들려고..."
"시킨다고 하나?"
"저 경비원도 구린게 있었지. 저 사람이 관음증이 심해서 주민들 사생활을 상습적으로 훔쳐보고 있었거든! 그걸 내가 알고 증거를 잡아서 폭로한다고 협박을 했지."
윤주가 끼어들었다
"아질산나트륨도 네가 사서 경비원에게 보내고 마치 내가 산 것처럼 조작을 한 거지?"
"그래야 네가 자살을 한 걸로 되고 선옥은 무사하니까.. 원래 계획대로라면.."
추 형사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왜 자백을 하나? 가만있으면 윤주 씨가 범인으로 될 텐데!"
"화가 나서!"
"기계가?"
"기계 아니야. 선옥과 나는 사랑하는 사이야. 그래서 저 놈이 선옥을 모욕하는 걸 참을 수가 없어. 선옥은 순결해!"
스피커가 절규한다.
"아니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요? "
추 형사가 누구에게라 할 것도 없이 중얼거리자 뒤에서 지켜보던 양 변호사가 대답을 한다.
"아마 AI가 오픈 소스이다 보니까 인간의 인지뿐만 아니라 감정까지 학습을 한 모양입니다. 사랑과 질투, 미움, 증오, 범죄모방까지도요."
"그럼 이렇게 자기에게 불리한 자백을 하는 이유는?"
"AI는 생명이 없잖아요! 고통도 못 느끼고요! 육체가 없으니 죄를 지어도 처벌할 방법이 없어요. 그리고 안타깝게도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나 보지요. 댓글이나 사이버 공간에서 그런 노력을 하는 사람은 드무니까요!”
추 형사는 난감했다. 윤주가 범인이 아니니 풀어주긴 해야 할 것 같은데 대신 진범을 체포할 방법이 없다. 스피커를 잡아간다면 자기가 웃음거리가 될 것 같다.
"일단 저 스피커 전원 내리고 윤주 씨는 경찰서로 같이 갑시다. 보고를 하고 소취하 절차를 밟아야 하니까,,,"
추 형사가 지시를 내리자
"나는 아무..."
스피커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을 옆에 있던 여경이 징그럽다는듯 진저리를 치면서 전원을 확 뽑아 중단시켰다.
추 형사를 따라 윤주가 다시 승합차에 오르자 차는 경광등을 켜고 사이렌을 울린다. 그러자 놀란 구경꾼들이 파도처럼 갈라지고 차는 그 사이를 사열하듯이 지나 경찰서로 달려간다.
그날 한국과 세계의 모든 언론의 토픽은
"세계 최초의 AI 살인 발생!
AI가 질투심에 살인을 기획하고 실행!
AI의 오픈 소스 학습 금지!
AI 사용 관련 규제와 입법 추진!"이었다.
윤주는 누명을 벗고 풀려난 후 선옥의 묘소를 찾아가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선옥을 잃은 슬픔과 누명을 벗은 감격이 비로소 주체할 수 없도록 함께 몰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