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막 - 표절

17일 - 표절

by 이윤수

‘딴따라라 딴다다라 랄라...'

눈을 뜨자마자 윤주는 머리맡에 놓아둔 메모지와 연필을 들고 머릿속에 떠오른 악상을 기록한다.

1년쯤 전부터 윤주가 자다가 보면 어느 날에는 잠결에 문득 어떤 멜로디가 생각나고 그걸로 곡으로 만들면 반드시 큰 히트를 쳤다. 완전히 잠에서 깨면 잊어버리기 때문에 얼른 적어야 한다. 때로는 녹음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악보에 적기도 한다.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하겠다고 우겨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오랫동안 무명 음악가 생활을 하면서 부모님과 친척들로부터 온갖 구박과 설움을 받아 온 윤주로서는 이것은 하늘이 내려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이따금 홍대 인근 주점 무대에서 기타 연주를 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약간씩 받는 돈으로는 부모님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도 없었고, 취직을 하고 사회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 친구들 사이에서도 별종 취급을 받아 차츰 사람들과 사회로부터 스스로 소외되고 고립되는 자신을 발견했었다.

그러나 이제 이 꿈결의 가락 덕분에 독집 음반도 내고 스트리밍 음원 수입도 생겨서 아파트도 장만하여 서러운 캥거루 족 생활에서 탈출하게 되었다. 효도도 하고 과시도 할 겸 부모님을 새로 산 큰 아파트로 나가서 사시게 하고, 자신은 방 두 칸짜리 자그마한 다세대 주택에 그대로 눌러앉았다. 그러자 부모님들은 '네가 대기만성 언젠가는 성공할 줄 알았다'며 당연히 너무너무 기뻐하셨고 그중에서도 윤주에게 가장 좋은 것은 자신의 무능력 때문에 거의 파탄에 이르렀던 여친 선옥과의 관계가 회복된 것이다.

변변한 직업이 없고 돈을 못 벌면 그것은 단순히 경제적 무능력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격도 자격지심에 더 괴팍해지고 그러다 보면 인간관계도 부자연스럽게 되어 사회 적응이 더 힘들어지고 일자리를 찾을 기회와 동기가 더욱 없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었다.

"일어났어? 자기야!"

인기척을 느꼈는지 주방에서 아침 식사 준비를 하던 선옥이 침실 문을 살짝 열면서 눈웃음이 가득 찬 얼굴을 빼꼼히 들이민다.

"축하해! 자기 생애 첫 개인 콘서트!"

선옥은 이제 윤주의 메니져 겸 동거인으로 윤주의 일정과 생활을 하나부터 열까지 정성껏 챙기고 있다. 이전에 잠깐 다니던 개인 세무사 사무실에서 잔심부름이나 하던 경험이 별로 좋은 기억은 아니었지만 지금 매니저 일을 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고, 주변을 깔끔하게 챙기지 못하고 덤벙거리는 윤주로서도 선옥의 존재가 편하고 만족스러웠다.

"응, 잠깐만..."

윤주가 쳐다보지도 않고 건성으로 대답하며 메모를 계속하고 있자

"어머, 작곡 중이야?

미안!

천천히 나와. 아침 준비 됐어."라고 작은 소리로 말하면서 무슨 큰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살며시 문을 닫고 나간다.

'후후.. 이게 사는 맛이지! 돈이 좋긴 좋아!'

사실 이제 더 기록할 것도 없는 윤주는 수첩과 연필을 침대 옆 탁자에 내려놓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침대에서 일어난다.

문을 열고 나가니 선옥이 기다리고 있다가 다가오는 윤주를 안으며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한다. 윤주가 두 팔로 선옥의 허리 뒤를 끌어당기며 혀를 선옥의 촉촉한 입술 안으로 밀어 넣자

"아이, 안돼. 오늘 바빠! 이따 밤에... 응?"이라며 얼굴을 돌리고 손바닥으로 윤주의 가슴을 가볍게 떠다밀며 몸을 뺀다. 윤주가 짐짓 화난 표정을 짓자 선옥은 윤주의 눈치를 살짝 살핀 후 심각하지 않은 장난인걸 알고 웃으며

"아휴 귀여워!" 라며 하면서

윤주의 뺨에 '쪽'소리가 나도록 키스를 하고 주방으로 간다.

"오늘 아침은... 짜잔!"

선옥이 접시에 팬 케이크와 과일 샐러드가 담긴 접시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와서 식탁에 내려놓는다.

"어때? 괜찮아?"

선옥이 심사를 받는 듯 식탁 옆에 서서 윤주의 반응을 살핀다.

"좋지! 맛있겠다."

윤주가 시럽을 뿌리고 한 입 떼어먹으면서

"음.. 맛있네. 자기도 얼른 먹어!"라고 하자

"호호호. 맛있어? 다행이다. 난 자기가 내 요리 칭찬해 줄 때가 제일 좋더라!"

"원래 내 입이 원래 싸구려잖아 흐흐흐."

"아니야. 자기가 까다롭지 않아서 난 너무 편해. 그동안 반찬 투정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잖아."

"자기가 요리를 잘하니까 그렇지.."

"아이 참, 빈 말이라도 기분 좋네!

나 자기 너무 좋아."

선옥이 웃으며 다가와 윤주의 입술에 입을 맞대고 윤주가 막 입에 넣은 딸기를 자기 입으로 빨아내서 먹는다.

"어어어. 내건데..."

윤주가 웃으며 말하자

"아이, 자기 게 내 거, 내 거도 내 거!"라며 선옥이 받아친다.

"알았어. 그래 그래 맞다! 자기도 얼른 아침 먹어!"

그 말에 선옥도 자신의 음식이 담긴 접시를 가지고 와서 먹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가벼운 이야기와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잠시 후 아침을 마친 두 사람은 간단히 샤워를 하고 집을 나선다.

가던 도중에 단골 미용실에 들러서 무대 화장과 머리단장을 하고 공연장으로 간다. 공연장 입구에는 벌써 팬들이 윤주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윤주와 선옥이 탄 차가 다가오자 차로 달려들면서 소리를 지르고 들고 온 팻말을 흔들어 댄다. 각자의 개성을 살려 알록달록 다양한 색과 모양으로 꾸민 팻말에는

'사랑해요, 쭈니!

축하해요, 콘서트!'라고 적혀있다.

'쭈니'는 윤주의 예명이다.

윤주는 짙은 선팅이 된 차 창문을 조금 내리고 손을 내민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여고생 팬들이 '까아악' 비명을 지르며 서로 윤주의 손을 잡으려고 난리가 난다. 잠시 후 공연장 경비원이 와서 인파를 헤쳐서 길을 만들고 차는 공연장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차에서 내려 분장실에서 무대용 옷을 갈아입고 무대로 올라가니 공연장 객석은 이미 청중으로 가득 차 있다. 잠시 후 공연이 시작되자 공연 기획사에서 준비한 무대와 효과는 환상적이었다. 화려하고 변화무쌍한 조명과 스모크, 엄청난 크기의 배경 스크린, 웅장한 음향효과는 윤주의 음악을 더욱 감동적이게 만들었고 윤주와 관중들은 공연 내내 신들린 듯한 황홀경에 빠졌다.

윤주의 첫 콘서트는 대 성공이었다.

공연을 마친 윤주는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다시 한번 출구에 몰려나온 팬들 사이를 헤치고 집으로 향했다. 도중에 들른 식당에서도 윤주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었고 식사 중에 벌써 콘서트에 대한 기사와 평이 인터넷에 뜨기 시작했다.

"와.. 엄청나! 오빠! '쭈니 콘서트'가 라이브 포탈 실시간 검색 1위야!"

윤주 앞에 마주 앉아 식사를 하던 선옥이 들여다보던 휴대전화를 윤주에게 보여주며 환성을 지른다.

화면을 보니 댓글도 계속 올라오고 있다. 관심이 대단하다. 윤주도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식사를 한다. 아직 공연의 흥분이 다 가시지 않았다.

"어! 잠깐만. 이게 뭐지?"

"왜?"

"이상한 댓글이 달리기 시작하는데.."

선옥의 환한 미소가 사라지고 표정이 굳어진다.

"뭔데?"

"표절! 감금! 이게 무슨 소리야?"

윤주도 순간 표정이 얼어붙으면서 수저를 내려놓는다.

"좆됐다. 얼른 집에 가자."

윤주가 선옥을 재촉한다. 선옥은 영문을 모르고 따라나선다.

집에 도착한 윤주는 선옥에게

"문 잠그고 당분간 아무 전화도 받지 말고 어떤 인터뷰에도 응하지 마!"라고 말하며 거실 소파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이 댓글이 사실이야?"

"응!"

"뭐라고? 자기가 자다가 영감을 얻어서 작곡한 거잖아! 오늘 아침에도... 내가 봤는데..."

"나도 처음엔 그런 줄 알았지!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그게 다른 사람이 작곡을 한 거더라고!"

"그게 누군데?"

"장새롬! 이 집 지하 방에 사는 아이야."

"그게 무슨 소리야? 도대체 말이 안 되잖아?"

"말이 돼! 따라와 봐!"

윤주는 선옥을 이끌고 문을 열고 나와서 지하로 가는 계단을 내려간다. 낮인데도 지하는 어두컴컴하다. 윤주가 계단 아래로 내려서자 동작 센스로 작동되는 천장 전등이 하나 켜졌으나 별로 밝지 않다. 지하에는 방화 철문 2개가 나란히 잇닿아 있다. 윤주는 주머니에서 열쇠 하나를 꺼내서 그중의 오른쪽 문을 연다.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니 한 소녀가 피아노 앞에 놓인 휠체어에 앉아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

"장새롬!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아저씨! 나도 다 알아요. 이제!"

"뭘 안다는 거야?"

윤주가 언성을 높이자 선옥이 윤주의 팔을 살며시 당겨 제지한다.

"아줌마는 누구예요?"

소녀가 선옥을 바라보며 묻는다.

"내 여자 친구야.

신경 끄고 어떻게 한 건지 말해봐! 누구랑 연락을 했어?"

"호호호 제가 누구랑 연락을 해요? 사람들과 연락이나 할 수 있게 해 주었어요?"

소녀가 시니컬한 웃음을 웃으며 말한다.

"그건 너를 보호하려고... 아무튼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노래에 메시지를 넣었지요!"

"메시지?"

"지난번에 만든 '강변연가'에 의미 없는 후렴구가 있지요? 그걸 거꾸로 읽으면 내가 넣은 메시지가 들리지요! 제가 기대한 대로 호기심 많은 누군가가 그걸 뒤로 돌려본 모양이네요. 어쩌면 우연이었을 수도 있고요!"

"그래서? 이렇게 해서 뭘 하려고?

원하는 게 뭐야?

돈이야?

그렇다면 이렇게 나를 파멸시키면 안 되지!"

"흥, 돈이요?

필요 없어요. 난 더 이상 아저씨에게 이용당하지 않을 거예요!"

"이용? 내가 너를 이용했니?"

"그럼요! 날 속였잖아요!"

"대신 널 보살펴주었잖아!"

"흥, 보살핌? 필요 없어요!"

"야! 답답하다. 이렇게 하면 너나 나 둘 다 망하는 거야!... 지금이라도..."

선옥이 말을 막아선다.

"잠깐, 두 사람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

윤주가 말을 멈추자

"아저씨가 설명해 주세요! 거짓말 말고 사실대로!"

소녀가 독기 어린 표정과 말투로 쏘아댄다.

윤주가 선옥을 향해 돌아보며 설명한다.

"처음엔 나도 자다가 영감을 얻어서 작곡을 한 건지 알았는데 어느 날 보니 그 곡조가 내 머릿속이 아니라 실제로 귀에 들린다는 걸 알아챘지. 약한 피아노 소리였어. 그래서 소리를 따라와 보니 얘가 치는 피아노 소리였어. 얘가 작곡한 거지!"

"그럼 공개를 하면 되지 왜 숨겼어요?"

선옥이 묻는다.

"이미 발표한 곡은 어떻게 하고? 그것도 다 표절이었다고 해? 그러면 어떻게 될 거 같아?"

",,,"

선옥이 답을 못한다.

"이게 유일한 해결책이었어. 우리가 다 사는..."

소녀가 말을 자른다.

"사기꾼!

그럼 내겐 왜 거짓말을 했어요? 아직 성공을 못했다고 했잖아요? 그냥 밤무대에서 부른다고....

이렇게 버젓이 돈도 벌고 콘서트까지 했으면서...

나도 '쭈니'가 아저씨 예명인 줄 우연히 알아내지 못했다면 지금까지도 깜쪽같이 속고 있을 거 아니에요?

다 돈 때문이잖아요!

나한테 작곡료를 안 주려고."

윤주가 한 풀 꺾인 목소리로

"아니야. 돈 때문만은 아니야. 그저 네가 어떻게 나올지 자신이 없었어. 네가 동의를 하지 않으면 그동안 쌓은 내 명성이 한순간에 무너질까 봐 그게 무서웠어. 이게 어떻게 이룬 건데! 내 삶의 유일한 의미인데..."

"그럼, 내 삶은요? 저도 음악이 제 삶이에요!"

"나라고 한 게 아무것도 없니? 내가 그걸로 노래를 부르고 공연을 하지 않았다면 네 곡이 세상에 빛을 볼 수 있었겠어?"

새롬이 뭔가 대꾸를 하려는데 선옥이 중재를 시도한다.

"그래도 그건 아니지요. 적어도 새롬 씨에게는 나중에라도 솔직하게 말을 했어야지요!"

"좀 더 있다가 말하려고... 돈도 나누어주려고 했어... 이제 막 시작이잖아... 모험을 하기가..."

윤주가 변명을 하자 새롬이 나서기 전에 선옥이 일부러 더 화를 낸다.

"아니 그걸 핑계라고 대세요? 정말 실망이에요!

도대체 어떻게 하려고 이랬어요? 언젠가는 이렇게 터질 줄도 몰랐어요?"

".."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겠지요! 이제 어떻게 할 건가요?"

"...."

"당장 기자회견 열어서 다 공개하고 자백하고 사과하세요, "

"그건 좀..."

"못하겠다고요? 안 하면 내가 메니져 자격으로 공개하고 윤주 씨와도 끝낼 거예요!

어떡할래요?"

"...."

"뭐예요? 도대체 이렇게 우유부단하게 결심을 못하니 일이 이렇게까지 커졌잖아요! "

"미안해!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윤주가 애원을 한다.

잠시 뜸을 들인 후

"그럼 그동안 발표를 한 곡은 윤주 씨가 작곡을 한 걸로 하고 앞으로는 새롬 씨가 만든 걸로 발표를 하면 어때요? 대신에 그동안 번 수익의 절반을 새롬 씨에게 주고 앞으로도 반반 나누는 걸로! 돈 때문이 아니라고 했지요?"

"그러면 나야 좋지!"

"그럼 새롬 씨는 어떠세요? 괜찮아요?"

선옥이 새롬을 바라보며 묻는다.

새롬이 고개를 끄덕인다.

윤주가

"그럼 지금 언론과 댓글에 뜨는 건 어떻게 하고?"라고 묻자

"내일 기자회견에 새롬 씨가 동행을 하고 새로운 작곡자 등장을 위한 깜짝 이벤트였다고 해명을 하세요!"라고 선옥이 똑 부러지게 정리한다.

"사람들이 믿을까?"

"안 믿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당사자들이 그렇다는데.. 좀 욕은 먹겠지만 법적으로는 문제없어요. 어쩌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어요. 언론의 주목을 받았으니까요..

이제 와서 다른 방법도 없잖아요! 모험을 해 봐야지요!

새롬 씨 괜찮겠어요?"

소녀가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당장 계약서 쓰고 기자회견 준비합시다.

새롬 씨도 여기 있지 말고 올라가요.

천재 작곡가가 지하 방에서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새롬과 윤주가 마침내 환하게 웃는다.

"자, 거기 휠체어 손잡이 잡으세요. 내가 앞을 들 테니... 계단 오르기가 쉽지 않겠네.."

선옥이 독촉을 하자 두 사람이 동의를 하고 움직인다.

윤주가 휠체어를 밀다가 계단에 다다르자 선옥이 바퀴 쪽을 든다.

"영차!

천재 작곡가 장새롬!

5년 만의 외출입니다.

딴딴딴단.... 길을 비키세요."

선옥이 터키 행진곡을 허밍 하자 모두들 따라서 합창한다. 계단을 올라오니 마침내 환한 햇살이 쏟아지고 세상이 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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