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돼, 자연으로 돌아가면 안 돼

달콤한 환상일 뿐이야 - 자연, 평등, 평화, 조화

by 이윤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루소의 주장은 빈부격차, 공해, 자연파괴, 기후변화, 도시화와 노동의 기계화에 따른 고단한 일상 등 산업화된 근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문명의 부작용과 모순을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한 유혹으로 들린다. 그래서 18세기 말 낭만주의 사조와 1789년 프랑스혁명을 거쳐 1867년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자본론' 출간 이후 공산주의 사상의 대두, 1917년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과 1949년 중국 공산화의 사상적 기초가 되었다.

이는 인류 최초로 서부 유럽이 봉건적 신분체제를 타파하고 만민에게 평등한 정치 경제 사회적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는 법치주의 민주체제를 확립하고 이를 세계적으로 확산시키게 된 시발점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각 개인의 능력을 존중하고 경제활동의 자유와 사유재산권을 보장함으로써 풍요와 효율을 추구하지만 그 부작용으로 빈부격차와 불평등 등이 생기는 자유 시장 경제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사회주의 좌파 사상의 이론적 근거가 되기도 했다.

이를 좀 더 자세히 보면, 루소는 1755년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인간 불평등의 기원은 사유재산의 "소유"라 지적했다. 이후 루소는 부유한 자가 가난한 자를 대상으로 유혹해 거짓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진정한 사회 계약을 맺어야 한다고 '사회계약론'에서 주장하였고 '에밀'에서는 이상적 시민을 교육하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이는 만민의 평등을 지향하는 프랑스혁명의 중요한 사상적 근거가 되었고 또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서 주창된 역사의 5단계 중 1단계가 문명사회에 선행하는 자연 사회(自然社會)로서 남녀 간의 분업만 존재하고 생산수단이 사회 전체의 소유이고 생산물이 평등하게 분배되는 원시 공산체였으며 그 후 생산력 증대에 따라 사유재산의 성립과 더불어 계급과 불평등이 발생하였으므로 결국 노동자 계급이 착취 계급을 타도하여야만 궁극적인 공산주의 이상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공산주의 사상으로 이어졌으며 그 후에도 좌파 사회주의 이론가들의 사상적 기초가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루소와 좌파, 공산주의 사상의 근본적이고 치명적인 한계는 그 사상과 주장이 이론적으로는 아름답고 이상적이지만 과학적이고 현실적인 근거가 없는 공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선 루소가 돌아가라고 한 조화롭고 이상적인 자연의 모습은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없이 생각만으로 만들어 낸 출발점부터 몽상에 불과한 것이었다. 인간의 자연 상태를 인류학적 실증으로 들여다보면 결코 평화롭고 조화롭지가 않았으며 오히려 불안하고 폭력적이었고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인 욕망의 성취를 위한 개인과 집단 상호 간의 경쟁과 폭력적 다툼의 모습이었고 그나마 이들의 폭력성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근대 문명의 사회제도와 법치의 확립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었다. 이는 좋든 싫든 받아들여야 하는 인간의 모습이며 이것이 이상적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연적인' 모습을 부정하고 억지로 그 '이상적인' 모습으로 인간을 끌고 가려고 하는 순간 문제는 더 크게 발생한다. 즉 지금 인류가 누리는 이 정도의 풍요와 평화와 안정은 그 모든 모순에도 불구하고 과거보다는 엄청나게 발전한 것이고 앞으로도 개선되어 나갈 것인데 그 모든 긍정적인 모습은 무시하고 오로지 모순만을 부각시켜서 이를 파괴하면 인류는 그 어떤 존재하지도 않는 이상 사회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폭력이 만연하는 야만으로 돌아가는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현재가 어쨌거나 완벽하진 않아도 그나마 최선의 상태로 발전해 온 것이므로 조금씩 당면한 문제점을 개선을 해 나갈 필요는 있지만 현 자유 민주주의 체제 자체를 파괴할 만큼 급변을 주장하는 것은 아무리 그 구호와 이상이 달콤하더라도 절대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연'은 낭만이 아니라 '야만'이므로 우리는 결코 자연으로 돌아가서는 안된다. 동물에게는 힘과 폭력과 기만이 지배하는 자연 상태가 당연하고 이를 나쁘게 볼 것이 전혀 없지만, 인류는 이미 그 야만을 아름답게 극복한 문명사회에서 더 오래 더 건강하게 더 평화롭게 더 조화롭게 살고 있으므로 그 존재하지도 않는 아름다운 자연으로 돌아가자며 그동안 이룩한 것을 파괴하자는 위험한 주장에 선동당해서는 궁핍과 무질서와 부패와 폭력과 강제와 통제와 궁극적인 파멸만이 있을 뿐이다. 믿기지 않거들랑 북한과 구 소련과 리비아와 쿠바와 베네쥬엘라의 현실을 보라. 그들의 사상과 주장은 여전히 아름답지 아니한가?

여담으로, 루소 자신도 말은 멋지게 했지만 정작 자기 자녀는 직접 양육하지 않고 당시 유행에 따라 보육원 등에 위탁했다.


[참고문헌; 제러더 다이아몬드, 어제까지의 세계 ; 위키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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