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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elle Lyu Oct 28. 2020

상념을 올곧음으로

새로이 새로이

상념을 올곧음으로

세시 좀 넘었다
현관문을 열고 배달되어 온 신문을 들여왔다
큰 아이 아들 방 앞에서 잠시 섰다
간절함이 목에 차 온다

지키소서
아직도 아니 언제나 당신은 목이 메이고 눈가에 눈물이 고이도록 기도를 하게 하시는군요
지켜주세요
열어주세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뜻 안에 있습니다

거실을 지나 안방으로 향했다
반쪽 남편의 숨소리가 크고 높았다 낮고 작았다를 반복한다
살아있다는 살고 있다는 존재한다는 소리다

신문을 펼쳤다
지면에 채 마르지 않은 잉크 내음이 순시간에 퍼져온다
활자가 보내는 소리들이 잉크 내음 속에서 잔잔히 퍼져온다
좋다
오랜 책에서 파스스 떨어지는 종이먼지만큼 잉크 냄새가 강렬하게 타고 온다
종이 내음 잉크 내음
누렇게 변한 원서를 소중히 앞뒤로 살핀다

8회 차의 강의를 끝냈다
마지막 수업은 <데미안>이었다
분명 아이들은 달라졌을 것이다
수업을 듣기 전과 후가 마지막 활동과제까지 해서 보낸 아이들 수민 시현 등 여러 애들의 정직이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린다
깨닫는다
깨달음이 온다

당신을 놓치지 않고 살게 하소서
비루하지 않게 살게 하소서
정직하게 살게 하소서
올곧음으로 살게 하소서
초라한 변명 구실 이유 핑계 없이 당당하게 하소서
무엇에도 온 마음을 다하게 하소서
지난 모든 잘못을 용서하소서
당신의 뜻을 기억하지 못하고 멋대로 산 모든 것에서 새로이 하소서
모든 것이 당신의 뜻 안에 있음을 늘 인지하게 하소서
이제 다시 새로이 서게 하소서
모든 기도를 들으시고 받으시고 이뤄주소서

아픕니다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기도 속에 있는 모든 것을 기억하시고 가장 올바른 정직으로 이끌어 주소서
당신 만을 의지하며 갑니다
당신이시여
콧물인지 눈물인지 몰랐다
왜 이리 아픈지 기도 중에도 울었고
모든 것을 바라보는 시선 사념 속에도 울었다
아프도록 시렸다
누군가를 마음에 가슴에 머리에 넣고 사는 것이 아렸다
마음이 저려 가슴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렸다

지켜 주세요
큰 아이 작은 아인 세상에 하나인 사위 효손 우주 그리고 반쪽이 남편까지
가장 선한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는 도구 통로 파수꾼으로 사용해 주세요
당신이시여

신문을 들어 지면 냄새를 잉크 냄새를 다시 맡았다
누구에겐
무엇에겐
어떤 일이건 가장 올곧음 정직으로 이끄소서
목이 메인다

아주 오래된 지면이 모두 누렇게 변해버린 <데미안> 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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