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엄마 그리고 우주
이사 가는 날
눈을 감고 있었다. 눈은 감았으나 잠을 자고 있지는 않았다. 수시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을 먹는다는 이유로, 화장실을 가고 싶다는 이유로 수없이 잠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2시, 3시, 4시. 거의 시간, 시간 매시간마다 일어났다.
목이 매캐했다. 왜 이러지!... 숱하게 자문하고 자답했으나 사실 물을 필요도 없었다. 서운해서다. 세상에 하나뿐인 사위와 딸과 우주가 이사를 간다. 꼭 2년 만이다. 2년 바로 옆에 두고 살았다. 딸의 집과 경계선이 되어 구분한 것은, 가슴 높이 정도로 작은 나무들이 한 줄로 쭉 이어져 울타리가 되어 세워진 것이 전부였다. 그 작은 나무 울타리가 엄마 집과 딸의 집, 서로 다른 아파트의 경계를 지었다. 아주 가까웠다
within a stone's throw of the ground...
just around cornor...
지척이라는 말조차도 무색했다. 바로 곧바로 5분 거리도 되지 않았다. 그곳에 세 가족이 살았다. 아빠, 엄마 그리고 우주.
우주가 태워 나면서 함마와 할아버지는 효손, 우주를 곁에 두고 살자 했다. 그렇게 꼭 2년이 되었다.
아침부터 아니 새벽부터 엄마는 분주했다. 사위와 딸과 효손, 우주를 이사 보내는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2년 전 이곳으로 올 때만 해도 집을 사야 할까 말까 망설일 수 있는 형편이었다. 조금만 보태면 아파트를 살 수 있었다. 전세 값과 그리 많은 차이가 없었다.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망설였다. 세태가 어찌 될지를 몰라서. 가족 모두의 의견이 많이 올랐으니 좀 더 기다려 보자는 것이 결론이었다. 그러나 그 결론이 너무나 무색하고 황당하게 상황은 너무나도 당황스럽게 옴짝달싹 못하게 달라져 버렸다. 전세 값이 2년 전 보다 거의 3배 가까이로 뛰었다. 전세가 이런 상태에 이런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제 집을 산다는 것은 너무 아득한 까마득한 먼 얘기 형편이 되어버렸다. 급기야 좀 거리가 떨어진 곳으로, 전세 값을 더 보탰으나 평수는 더 좁아진 곳으로 이사를 해야만 했다.
이사로 바쁜 사위를 대신해 함마는 우주에게 치카(양치질의 우주 언어)를 하게 하고, 아푸(세수의 우주 언어)를 하게 하고, 다시 얼굴을 가다듬어 씻기고, 기저귀를 갈고, 아침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 양말을 신기고, 머리를 빗기고, 코트를 입히고, 나이키 신발을 신기고, 현관을 나섰다.
바로 복도에 섰다. 한 손에 우주 어린이집 가방을 들고 한 손에 우주 손을 꼭 잡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함마와 우주가 손을 잡고 걸었다. 아파트 앞 건널목을 건너고 어린이집으로 향해 가는데, 우주는 길 건너 자신의 집이 보이자
“우주 집이야”라고 한 마디를 한다. 두 돌, 막 24개월이 된 우주의 시선이다.
“그래, 우주 집이었지” 함마가 말을 받았다. 대답하는 함마가 울컥한다. 공동현관 앞에 연두색 이사 차가 서 있다.
엄마는 너무나도,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다. 2203동 202호, 좋은 집이었다. 2층 집은 갓난아기를 지나 우주가 24개월까지 사는 동안 늘 항상 가장 좋은 환경의 집이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다 볼 수 있었다. 봄의 생명이 움트는 초록의 향연과 여름에 축복의 비로 내리는 모습과 찬란한 햇살을, 가을 환희로 빛나는 영롱한 노랗고 붉은 단풍과 낙엽을, 겨울 흰 눈이 내리는 설국의 온화함을 바로 그대로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그 좋은 집을 떠난다.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날은 다행히 온화했다. 아침에 잔잔히 내리던 비도 오지 않았다.
딸의 집과 우리 집의 경계를 이루며, 단지를 구분하며 펼쳐진 길을 따라 걸으며 카이로스와 크로노스를 느낀다.
갓 태어난 갓난아기 우주를 안고, 2019년 1월 겨울, 함마는 우주를 안고 매일같이 노래를 불렀다. 효손 우주를 재우며. 두 손으로 안으면 바로 가슴에 폭 안겨있는 아가를 보며.
‘우주 나라에 누가 살아요?
예쁜 우주 살아요.
우주 나라에 누가 살아요?
멋진 아빠 살아요.
우주 나라에 누가 살아요?
예쁜 엄마 살아요.
우주 나라에 누가 살아요?
사랑하는 가족 살아요 ~~~~
함마가 마음으로 작사 작곡한 노래를 하면 우주 아빠도 엄마도 모두 따라 불렀다.
그 집을 떠난다. 그 장소를 떠난다. 그곳을 떠난다. 그리고 우주가 생애 첫 이사를 간다.
좋은 집을 떠나 이사를 간다.
엄마는 순식간에 2년이란 시간의 파노라마를 가슴 아프게 바라본다. 어린이집 도착해 우주를 들여보내며 가슴이 쿡 메여온다. 그간 정말 자녀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다하며 살았다고 자부했다. 천정부지로 뛰어 오른 집값을 더 도와줄 수 없어서 마음이 바닥이 되었다. 상황 오판단이 불러온 참사는 이토록 가슴을 시리게 했다. 옆에 있는 지인 중 누군가는 판단을 잘해
집을 두 채, 세 채나 집을 사고 3배나 올랐다고 자랑을 한다.
엄마는 반대의 경우에 있는 사위와 딸을 보는 것이 모두 자신의 잘못만 같았다. 엄마는 울었다. 가슴이 아파서 저리고 시려서...
엄마는 단 한 번도 집이 없이 살아보지 않았다. 어려서는 부모덕에, 결혼해서는 오빠가 첫 시작으로 마련해준 집이 언덕이 되어 이사 몇 번 해보지 않고 지금에 이르렀다. 단 한 번도 두 채를 가져 본 적 없었고, 단 한 번도 세를 살아 본 적도 없다.
정직하게 왔다. 언제나 지금까지. 새로운 집을 사면 당연히 살던 집을 팔았다. 올곧게 살았고 그게 최선이라 여겼다.
그런 엄마의, 그렇게 살아온 함마의 판단 미스로 인해, 이지에 밝지 못한 자신으로 인해, 딸이 살 보금자리를 전세로 더 작은 집으로 이사 간다. 더 많이 전세 값을 보탰으나 거처하는 공간 집의 평수는 더 작아진 곳으로 간다. 엄마 곁에서 떨어진 보금자리로 그렇게 이사를 간다.
마음이 아파서 엄마는 자꾸 후회가 되었다. 어찌할 수 없는 후회는 도저히 내일을 알 수 없었던 판단에 대한 후회는 아무 소용이 없는데도 마음 아파 눈물이 났다.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
하루가 지난 시점에서야 치유를 위한 위로의 글을 쓸 수 있었다. 더 작은 집으로, 더 많은 돈을 더 보태 전세 집으로 이사를 가는 딸의 가족, 세 식구를 보며, 사위 딸 우주를 보며 내내 가슴이 시렸다. 결혼할 때 엄마가 사준 많은 딸의 결혼 신혼 예단 물건이 부득이 버려졌다.
소파가 버려지고, 화장대가 버려지고, 거실 탁자가 버려지고, 장식장이 버려지고, 급기야 티브이 다이가 버려졌다. 신혼 예단 중 반 이상이 쓰레기로 버려졌다. 엄마는 가슴이 저리고 결리고 아팠다.
몸살을 앓았다. 20평이 넘었으나 이것저것 제한 아파트 실면적이 엄마가 신혼 때 살았던 실 면적 13평보다도 훨씬 더 작았다. 아픈 마음 때문인지 너무나 작아 보였다.
이제, 이제서야 마음을 추스르며 마음의 글을 쓰고자 했다. 한 꼭지의 생애 기록을. 사위와 딸과 우주가 써 내려가는 생의 기록을.
더 정확히 우주가 걸어가는 생의 기록을...
2021년 1월 22일 오전 9시
<이사 차가 왔다>
<울타리로 경계 지어졌던 우주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