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계속되는 온라인
햄릿을 원격강의로 풀어내고
이제 곧 머지않아 겨울이 손짓을 하며 다가올 것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파란 하늘이 시야에 들어왔다. 하루 사이에 가을이 부쩍 온 느낌이다. 강의를 여는 한 주 내내 혼돈 속에 있었으며 오늘은 현재의 지금과 조우 중이다. 유난히 혼란과 혼돈을 주었던 한 주였다. 바람이 옷깃을 매만지며 ‘너무 수고했어!’라고 말을 건넸다.
경기 안양 SD도서관 두 번째 온라인 강의를 마쳤다. 한 시간 반의 시간이 순식간에 지났다. 머리에 있는 것은 무궁무진한데 수강자 없이 또 응답도 없는 허공에 대고 강의를 하는 것은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처연함을 느끼게 한다. 평생 강의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변화 속을 걷는 것은 쉽지 않은 자신과의 자아와의 투쟁이었다.
그림으로 풀어내는 두 번째 강의의 주제이자 그림은 셰익스피어의 <HAMLET>(햄릿)이다. 그림으로 본 <햄릿>의 주인공은 사실 햄릿이 아니라 ‘오필리아’다. 문학계의 당연한 주인공이 햄릿이라면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의 세계에서는 햄릿의 주인공은 햄릿이 아니라 여주인공 ‘오필리아’가 당연히 권좌의 자리를 차지한다. 순수와 비련의 여인 오필리아를 그려낸 많은 그림이 수많은 역대 화가들의 다양한 관점과 시선으로 재탄생되었다. 그 시선을 따라가며 햄릿을 풀어냈다
‘소유냐 존재냐’, 에리히 프롬의 유명한 책의 화두가 되기도 했던 ‘to be or not to be’는 햄릿의 명대사로 각인되었고, 정신분석학의 대가 ‘프로이트’에게 숱한 꿈의 해석을 제공하는 단초가 되었다. 이 한 문장이 시사하는 화두는 4세기 전, 400년 전이란 세월을 무색하게 만든다. 햄릿을 고뇌와 갈등의 대명사로 만들고 또 사유하는 숱한 문학계를 비롯한 의학계, 미술계 등의 세계 존재하게 만들었다.
‘and’와 ‘or’, 대부분의 사란들이 예사롭지 않게 받아들였던 등위접속사는 아주 상반된 의미로 눈길을 잡으며 완전히 다른 가치 존재론적인 세계로 향하게 했다.
그 한 문장이 주는 완전하고 완벽한 내용을 찾아 많은 시간을 헤맸다. 셰익스피어의 탄생지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븐’의 거리의 곳곳을 수도 없이 걷고 걸었다. <햄릿>이 읊조리던 그 한 문장을 따라 수십 년 전 백 팩을 메고, 햄릿을 담고 그 시간, 그 거리를 헤맸다. 강의를 풀어내며 자신 역시 그 혼돈의 시간을 지나는 감회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깊은 심연으로.
파란 하늘을 다시 봤다. 그 순간 역시 늘 소중히 여기고 사는 찰나의 변화를 의식하며, 매 순간마다 바뀌어 가는 구름을 따라가는 눈이 분주했다. 이 모든 게 찰나이다. 찰나의 인식을 직관하며 햄릿이 추구했던 한 마디 ‘영원으로 향한다’로 모두를 안내한다.
목이 말랐다. 목이 아팠다. 원격 강의로 꼼짝도 않고 한 자리에 앉아 자신과의 자아 사이의 깊은 심연을 헤엄치는 기분이었다. 강의는 내게 늘 존재하고 있다는 살아가고 있다는 확신을 주었다. 그저 이 자리에 있음이 감사했다.
오늘 다른 교육기관은 ebs클래스 개설로 한 학기, 2학기 수업을 오픈한다. 오늘을 기점으로 2020년 2학기 강의를 모두 열게 되는 셈이다. 아마도 수난의 한 주가 될 것이다. 오늘 강의를 열은 기관은 유난히 소통이 부재했다. 허나 아무튼 이 학교를 마지막으로 이제 모든 학교의 강의가 오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