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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elle Lyu Mar 14. 2024

삶의 순간으로 불러낸 교수님의 한마디

남아 있는 나날들

Somewhere under stars, 

God has a job 

for me 

to do and nobody else can do it     


몇 해 전이다. 여름이 다가오는 길목이었다. 하늘이 유난히 푸르렀다. 세상에 좋지 않은 일이란 하나도 생기지 않을 것 같은 날이었다.      

 그날 적을 두고 있었던 학교에서의 마지막 강의를 했다. 언제부턴가 학교, 교적을 떠날 때를 생각하고 있었다. 담담히 D Day를 정했다. 절대 그날, 그 시간을 즉흥적으로 정한 것이 아니었다. 오래 마음에 두고 찬찬히 준비했고 정리해 왔었다. 

 마지막 강의이기에 목소리에 힘을 더 주었다. 마지막이라는 것을 전혀 학생들이 눈치 채지 않게 하고 싶었다. ‘절대 아무 말도 제자들에게 하지 말고 떠나자. 그것이 나다운 것이고 그래야 아이들도 충격이 덜 할 것이다’ 그렇게 오래 마음으로 스스로를 다스렸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그래, 오늘이구나!’ 강의를 마치고 책을 접었다. “잘들 지내고, 늘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고...” 말끝을 흐리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강의실을 나와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배웅 차 데이지선생님이 곁으로 다가오고 양선생님이 다급히 따라와 팔을 잡았다, 그리곤 책을 받아 들었다. 두 선생님이 물었다. “애들에게 작별 인사는 했어요?” 늘 정중한 데이지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말없이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두 선생님은 나의 무언의 답에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로 말을 아끼며 셋이 한 몸이 되어 한 계단, 두 계단 내려섰다. 갑자기 눈앞이 아득해졌다. 아무것도 시야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그저 눈물이 나는 거라고 여겼다. 그저 앞이 잠시 안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이었다. 다리가 휘청거리며, 그대로 폭삭 재가 사그라지듯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사람이 한 줌의 재가 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간 것 같았다. 그리곤 그대로 암전이었다.      

눈을 뜬 곳은 다른 곳이었다. 그 순간부터였다. 공황장애!!!      

평생을 해온 일, 텍스트 읽고, 가르치고, 아티클 쓰고, 텍스트를 분석하고 연구하던 자신의 정체성 전부를 잃어버린 것이다. 한 순간에. 다시는 학교 강단에 설 수 없다는, 학교의 적을 떠났다는 현실은 트라우마가 되어 온 몸을, 정신을, 가슴을, 마음을 헤집고 다녔다. ‘너는 다 끝났어. 이제 다시 소생은 불가능하다’고 한 번도 본 적도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가 나의 귀에 대고 끝없이 속삭였다.   

 보이지 않은 또 다른 나에게 나는 그렇게 수시로 매 순간 함몰 당했다. 무식욕, 무기력, 허공 응시... 살아 있으나 죽은 시간 속에 침잠했다. 그 무엇보다 두려웠던 것은 자기 안의 세계에 빠져 무엇에도, 어떤 것에도 미세한 먼지만큼의 의지도 발동되지 않는 마음이었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생각할 줄 모르는 미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몸이 마음을 지배했다. 생각은 나의 것이 아니라 타인의 것으로 느껴졌다.  

 공황장애는 마치 숨어있는 포병이 되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수시로 나를 공격했다. 그런 상태에서 시간은 쉬지 않고 흘렀다. 지난 시간은 절대로 나를 기억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여름의 한가운데, 태풍이 오고 있었다. 세찬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쳤다. 창문이 덜컹거리고 방문이 부셔져라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마른번개가 치더니 곧 이어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풍우가 땅이 꺼져라 퍼부었다.

 혼자이었다. 큰 아이는 먼 곳 유학 중이었고, 작은 아이는 결혼해 자신의 반쪽을 찾아서 간지 이제 두어 달이 지났다. 남편은 회사에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요직에 있다. 혼자였다. 누구도 없었다. 아무도 없었다. 그 순간이었다. 거대한 힘으로 나를 도외시한 시간의 흐름을 알게 한 것은 그 무섭게 퍼부어대던 비바람이었다. 세차게 몰아치는 비바람에 닫힌 방문을 열어 보았다. 그때였다. 무엇엔가 홀린 사람처럼 걸음을 옮겼다. 

 알지 못하는 거대한 힘이 서재에 꽂혀있는 오르만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으로 인도했다. 자석이 되어 나를 그 자리에 불러 세웠다.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을 잡아 꺼냈다. 무심히 책장을 팔락팔락 넘겨보았다.      

죽기 직전, 유년기의 마지막 시절에 들었던 시리아 동화가 떠올랐다. 혼자 사는 노인이 한밤중 잠에서 깨어 부엌에 가서 물 한 잔을 마시고 있었다. 물 컵을 탁자에 놓는데 그곳에 놓여 있던 초가 없어진 것을 보았다. 그리고 어디선가 실낱같은 빛이 비쳐들고 있었다. 노인은 그 빛은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노인은 자기 침대에 낯선 사람이 손에 촛불을 들고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노인이 물었다. “댁은 뉘시오?” 그러자 그 이방인은 “죽음이다.”라고 대답했다.

오르만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299면     

죽음이다. 이 한 문장이 가슴을 때렸다.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하얀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순식간에 책장을 적셨다. 책을 들고 책상에 앉았다. 책을 읽었다. 밤이고 낮이고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었다. 그렇게 읽은 책이 70권 째 되는 날이었다. 엄마가 해주시던 칼국수가 먹고 싶었다. 허기가 온 마음을 지배했다. 옷을 챙겨 입었다. 샤워도 했다. 카드도 들었다. 그리고 왼손에는 어느새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가 들려있었다. 

 두렵고 무섭고 막막한 허무 속 공황장애에서 나를 세울 수 있는 사람이 다름아닌 바로 나, 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무의식중에 잠재했던 인식을 얻게 되었다. 깨달음이었다. 책이 말했다. 책 행간에 숨어있던 마음이 말을 했다. 영어와 글을 놓쳐선 안 된다는, 죽는 날까지 영어와 글을 잃고 싶지 않다는, 영어와 글 그리고 강의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그 짙은 불안과 암울과 허무에서 나를 다시 소생시켰다. 

 그 짙은 공황장애에서 걸어 나오던 그날, 그 시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학교! 학교였다. 적을 떠난 학교에서 이제 “시간강사로 강의를 해 줄 수 없느냐”고 정중하게 요청을 했다.      

나답게 사는 존재하는 삶은 어떤 것일까내 스스로의 우문에 현답을 해주신 분은 교수님이셨다. 교수님은 마음어린 충고를 하셨다. “유군아, 강사료가 많건 적건 상관없이 일은 있어야 한다. 그 일이 자신이 가장 익숙하고 잘 하고 좋아하는 일이라면 더욱 해야 한다.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게 자신을 가장 잘 지키고 사는 삶”이라는 진정어린 경험의 말씀을 하셨다. 내 두 손을 꼭 잡은 교수님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이제 나는 안다. 자신이 가장 잘 하고, 익숙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삶의 시간을, 순간을 지나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며 그렇게 살기 위해 매 순간 노력 중이다.  현재 나는 아주 잘 그런 그 생각을 담고 살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 난 지금 가장 행복한 순간에 있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삶의 순간으로 남아 있는 나날을 걸으며...

Couldn't be better!!! Now n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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