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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터베리 이야기

제프리 초서

by Michelle Lyu

캔터베리 이야기

제프리 초서

The Canterbury Tales

Geoffrey Chaucer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바람이 아주 좋다. 두통이 좀 있고 미열이 느껴진다. 바람이 좋아 창가 소파에 앉았다. 머리가 흔들린다. 바람에 실려서. 책을 잡았다. 대학원 때 죽어라 읽고 분석했던 <The Canterbury Tales>다.

새로운 언어, 세상에 존재하나 특이하고 어려운 언어, 영문학도가 아니면 도저히 만날 수 없던 언어, 영어이지만 영어와 또 다른 중요한 언어로, 영어의 다른 한 가지 언어로 자리한 중세어를 배웠다. 허나 이게 다가 아니었다. 베어울프를 읽기 위해 고대어를 배울 때는 머릿속이 새하얘졌었다.

머리가 텅 비어버린 듯이......

25년 1월 5일 다시 <캔터베리 이야기>를 펼친다. 거실 창문 너머로 뽀얀 흰 눈이 날린다. 눈을 날리고 있는 회색 하늘이 숱한 생각을 불러낸다.

<캔터베리 이야기>의 등장하는 중세의 순례자들은 말을 타고 이동했다. 이동 수단인 하얀 말에 타고 있는 한 순례자가 오른손에 말고삐를 부여잡고 왼손은 식지를 곧게 앞을 향해 뻗어 무언가 가리킨다. 순례자의 눈도 말의 눈도 향하는 곳을 깊게 주시하고 있다. 응시하는 표정에는 호기심과 놀라움이 담겨 있다.

그는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캔터베리 이야기>(The Canterbury Tales)의 시작은 의식주에 하나인 식(Food)이 주는 엄중함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공짜 저녁 제공이라는 전제는 상당히 고무적으로 우리 앞에 놓인 음식(飮食)의 의식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이끈다.

<캔터베리 이야기>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한다. 최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게 공짜로 저녁을 제공한다. '바로! 지금, 이 제안 의견에 공감하는 사람은 손을 드시오.' 순례자들(The Pilgrim) 모두는 그들의 손을 번쩍 들었다.

한 그룹의 순례자들이 런던에서부터 캔터베리를 향해 5일 동안 함께 여행하는 중이다. 여행 가는 도중에 순례자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이 재미를 느끼게 하는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 어떤 이야기들은 아주 행복하고, 그리고 또 어떤 이야기들은 너무 슬프다. 그러나 그들이 풀어내는 모든 이야기에는 주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현재를 사는 우리, 모두는 그 메시지로부터 중요한 교훈을 얻는다.

'As you know, it's a long way to Canterbury. You need to stay happy on the journey. I've got an idea. You must all tell a story on the way. We'll give a dinner to the person who tells the best story. Now, put up your hands if you agree.'

The pilgrims will held up their hands and cried out, 'Yes!'

알다시피, 캔터베리까지는 먼 길이요. 당신들은 여행 중에 우리는 모두 행복하게 지내야 합니다. 내게 좋은 생각이 있어요. 가는 길에 여러분 모두 이야기를 한 가지씩 하기로 합시다. 우리는 가장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에게 저녁을 줄 것이다. 자, 동의하신다면 손을 들어주세요.'

순례자들은 모두 손을 들고 '네!'라고 외칠 것이다.

(원문 번역 Michelle Lyu)

<The Canterbury Tales 내용 중에서>


<캔터베리 이야기>(The Canterbury Tales)의 저자,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는 1342년경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런던에서 태어났다. 우리는 사실 그가 태어난 정확한 해는 알지 못한다. 그는 ‘영시의 아버지’로 전형적인 중세인의 삶을 살았다. 그는 귀족이나 부유층 자녀들이 궁정 관리가 되기 위해 다니는 일반교육이나 법 교육을 가르치는 특별한 교육기관 ‘Inns of Court’를 다녔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아버지 존은 초서의 조부와 함께 ‘포도주 사업’을 했다. 아마도 그들은 에드워드(Edward) 3세를 위해 일했을 것이다. 당시 그의 가족은 아주 많은 돈을 벌었고 편안한 생활을 영위했다.

초서는 어린 소년이었을 때 런던에 있는 학교에 다녔다. 그는 그 후에 왕가의 일원이었던 대단히 중요한 부인을 위해 일하게 된다. 이 일은 굉장히 좋은 직업이었고 그 일을 하며 초서는 몇몇 정말 재미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기회를 얻는다.

1359년 초서는 군인의 신분으로 해외로 파견되었다. 그는 ‘100년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그가 군인으로서 해야 할 임무는 프랑스에 대항하여 국왕을 위해 싸우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레임(Rheim) 근처에 있던 프랑스군에게 잡혀 감옥에 투옥된다. 일 년 후 국왕은 초서를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 그의 석방을 위해 아주 많은 거액의 돈을 지급해야만 했다.

영국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초서는 왕과 왕의 가족 또 왕의 친구들을 위해 일하게 된다. 1367년경 초서는 여왕을 위해 일하고 있던 여인, 시종 필리파 드 로에트(Philippa de Roet)와 결혼한다.

초서는 굉장한 독서가였고 특별한 기억력을 갖고 있었다. 그는 라틴어, 프랑스어, 앵글로-노르만(Anglo-Norman)어, 이탈리아어를 배웠다. 그는 또한 문학, 역사, 과학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았다.

왕은 종종 자신을 위해 중요한 일을 수행하러 초서를 다른 나라로 파견했다. 중요한 일을 수행하러 가는 여행으로 두 번이나 초서는 이태리에 갔다. 한 번은 1372년 제노바로, 또 한 번은 1378년 밀란에 갔다. 사람들은 이러한 공무 여행 중에 초서가 이태리 스토리텔러에게 아주 흥미를 갖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초서는 아마도 그가 이태리에 있을 때 이태리 작가 보카치오를 만났을 것이고, 그가 보카치오의 작품 데카메론(1348-58)을 읽었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초서는 그 당시 이미 상당한 부자였다. 그러나 좋은 일에 마가 끼는 것이 호사다마라고 1386년 초서는 그 좋은 직업을 잃게 된다. 왕의 아들이자 초서의 친구인 존 오브 갠트(John of Gaunt)가 스페인에 대항해 싸우기 위해 런던을 떠났다. 그가 떠나자, 글로스터 공작이 John of Gaunt의 일을 담당하게 되었다. 초서는 불행하게도 글로스터 공작의 마음에 들지 않았고 미움을 산다. 글로스터는 자기 친구에게 초서가 담당했던 일을 맡긴다. 그래 초서는 글을 쓰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그는 <The Canterbury Tales>를 쓰기 시작했다.

1389년 John of Gaunt가 영국에 돌아오고, 그는 초서에게 다시 이전에 담당했던 그 중요한 공무를 맡게 한다. 초서는 점점 나이가 들어갔다. 초서는 그의 글쓰기가 점점 더 형편 없어지는 것을 스스로 느꼈다. 초서는 1400년 10월 25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체는 웨스트민스터 사원( Westminster Abbey)에 묻혔다.

우리는 사실 정확히 언제부터 초서가 시를 쓰기 시작했는지는 모른다.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프랑스 전쟁에 참전했다 돌아온 후가 아닌가 여겨진다. 초서는 많은 시를 썼다.

그런 위대한 작품들로 <공작부인의 서>(The Book of the Duchess, between 1639 and 70), <The House of Fame>, 르네상스의 이태리 문물에 초서가 영감과 지식을 받은 <새들의 의회>(The parliament of Fowls, between 1372 and 1382), <트로일러스와 크리세이더>(Troylus and Crideyde, between 1380 and 1385) 등이 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The Canterbury Tales>이다. 초서는 1386이나 1387년부터 이 작품을 쓰기 시작했으나, 그러나 이 작품을 완벽하게 끝마칠 수 없었다.

1450년쯤에 독일에 인쇄술이 들어왔다. 1477년 영국에서 인쇄할 수 있는 첫 인쇄 기계, 캑스턴(Caxton)을 만들었다. Caxton이 1478년에 The Canterbury Tales를 인쇄했다.

<The Canterbury Tales>가 단편소설의 효시는 아니다. 한 그룹의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하자는 아이디어는 당시 새로운 생각은 아니었다.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서, 열 명의 사람이 이태리에서 발생한 끔찍한 질병으로부터 피해 완전한 곳을 찾아 도망을 쳤다. 각각의 사람들은 모두 그 힘든 시간을 지나기 위해 각자의 이야기를 했다. 초서는 이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캔터베리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은 에드워드 3세(1327~1377)에서 리처드 2세(1377~1399)에 걸친 유럽에서 가장 활발한 귀족들의 사교 장소이자 위엄 있고 활발한 지적 교류 장소인 궁정이 궁정문화의 전형이었던 시대다. 초서는 작품의 주제로 익숙한 궁정문화를 다루지 않고 평민들의 생활, 다양한 인간상에 대해 다루어 시대를 초월하여 독자들에게 친밀감 주었다. 당시 궁정의 호사스러운 이면에 격변과 고난이 난무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1380년 영국민의 3분의 1을 죽음으로 내몬 흑사병과 생활고와 반란을 겪은 프랑스와의 백년전쟁은 국고의 엄청난 손실을 끼쳤다. 초서는 격변의 현실을 작품에 언급하지 않고 암울한 현실에서 독자들에게 웃음과 낭만을 선사하고자 노력했다.

당시는 사회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준 종교성 짙은 경건한 이야기가 대단히 유행했다. 타락한 성직자들이 수사(monk), 탁발 수사(friar), 면죄부 판매자(pardoner)가 되었다. 초서는 종교 전체가 아닌 일부 타락한 성직자들을 그의 작품을 통해 비난했다. 당시 민중들 사이에는 삼위일체설(Trinitarianism) 교리에 관한 논의들이 아주 팽배했다.

당시에 정치적. 사회적 상황은 무척 혼란스러운 ‘The Great Schism’ 대분열의 시기였다.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는 꿈을 통한 이야기 전개 방식(dream vision)이나 궁정 풍의 내러티브(courtly narrative)가 아닌 혼란스러운 현실을 벗어나게 해주는 차원에서 쓰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캔터베리 이야기>의 화자인 초서는 토마스 베켓 성인(St. Thomas Becket)의 유골이 안정되어 있는 캔터베리 사원으로 성지순례를 떠나기 위해 서더크(Southwark)의 타바드 여관(Tabard Inn)에 도착한다. 거기에서 다양한 계층과 직업을 가진 성지순례자들을 만나는데, 여관 주인의 제안으로 각자 4가지, 가는 길에 2가지 돌아오는 길에 2가지의 이야기를 해서 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와서 가장 재밌고 유용한 이야기를 한 사람에게 무료 식사와 술을 대접한다는 ‘이야기 시합’을 하게 된다. 순례자는 모두 30명이지만, 실제 작품 수는 24개뿐이며 이 중 2개의 작품은 미완성이다.

오늘날 많이 사용되는 <캔터베리 이야기>의 사본은 2가지다. 하나는 ‘행워트 사본’(Hengwrt Manuscript)으로 초서가 순서 없이 여러 이야기를 써 내려간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엘스미어 사본’(Ellesmere Manuscript)으로 이야기의 일관된 배열 순서로 좀 더 완전하고 오늘날 많이 사용된다.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 작품 구성 방식은 ‘액자식 이야기’(frame tale)이다. 이런 액자식 이야기 전개로 된 이야기로 ‘존 가우어’(John Gower)의 <아만티스의 고백>(Confessio Amantis)이 있다. 이 작품은 한 명의 화자가 모든 이야기를 전개하는 부자연스러운 이야기 전개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보카치오의 <데카메론>(Decameron)은 모두가 같은 계층의 엘리트들인 3명의 젊은 신사와 7명의 숙녀가 각자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다. 이 작품은 이야기의 내용도 매우 유사하며 단조롭고 부자연스러운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는 다양한 신분 계층. 직업, 복장, 좋아하는 음식, 언행이 등장한다. 이야기별로 문학적 장르, 스타일, 음조, 가치관의 차이. 대립을 유지한다. 예를 들면 기사 이야기는 고상한 이야기, 궁정 풍의 로맨스 스타일이다. 반면에 방앗간 주인 이야기는 상스러운 패빌리오(Fabliau)라는 음담패설 스타일이다. 또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는 자연스러운 이야기 전개로 공통의 화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토론하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The Canterbury Tales>의 ‘기사 이야기’(The Knight's Tale)는 첫 문장부터 강렬하다. 그때, 그 당시, 13세기에도 현재 이 책을 읽는 이런 감정을 느끼며 읽었는지 의아해진다. 그저 예전 대학원 시절에는 영문학도로서 분석과 연구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지금은 글이 주는 묘미가 마음에 전달되어 오는 진한 감동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한 여자를 사랑한 두 기사, 아르시테(Arcite)와 파라몬(Palamon)의 운명과 숙명적인 귀결을 가슴 아리게 본다. 사랑이란 이성이 마비된 맹목의 감정임을 알게 된다. 요사이 효손 우주를 통해 보는 맹목의 감정이 바로 사랑임을 이 책으로 더 깊이 각인하게 된다.

<The Canterbury Tales>에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순례자들이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대단히 재미있고 우리 독자들에게 정말 실제처럼 들린다. 그들이 한 이야기의 끝에서 우리는 마치 그들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그들은 마을에서 또 시골에서 온 가난하거나 부유한, 지적이거나 어리석은, 젊거나 혹은 나이가 든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오늘날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그러한 일들과 같은 직업에 종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모두 그들과 같은 직업의 사람들을 안다. 순례자들의 이야기는 초서 시대에 살았던 영국인의 생활 삶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도움을 준다.

순례자들의 이야기는 모두 완벽하게 각각 다르다. 그들은 유럽 넘어 모든 곳으로부터 왔다. 그들의 이야기 중 어떤 이야기들은 심지어 동쪽에 있는 어떤 나라로부터 온 것도 있다. 그 당시 유럽에 살던 사람들은 그들에게 뭔가 가르침을 주는 이야기들을 아주 좋아했다. 삶이나 새로운 생각에 관해 뭔가 메시지를 주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캔터베리 이야기>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시처럼 들린다. 모든 이야기는 초서 시대의 영어로 쓰였다.

<캔터베리 이야기> 여러 이야기 중 ‘수도사 이야기’(The Friar's Tale)의 ‘소환사와 악마’(The Summoner and the devil) 마지막은 이런 귀결로 막을 내린다.

The friar finished hus story and looked at all the pilgrims.

'Think hard about my story.' he said. 'We must hope that God will keep us from the devil!'

Then the summoner told his story about the friar. But it wasn't a very interesting story so I haven't put it in this book.

수도사는 이야기를 마치고 모든 순례자를 바라보았다.

'내 이야기를 깊이 생각해 보세요.' 그는 말했다. '우리는 신이 우리를 악마로부터 지켜주기를 바라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소환사는 수도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그다지 흥미로운 이야기는 아니었기 때문에 이 책에 넣지는 않았다.

(원문 번역 Michelle Lyu)

<The Canterbury Tales 내용 중에서>

어떤 느낌이 드는가?

도대체 얼마나 흥미로워야 밥을, 음식을, 식사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차지할까? 얻을까? 갖는가?

묘하게 가슴을 달뜨게 했던 내기의 진정한 승자가 있다는 것 그 상황이 마지막 책장을 덮는 그 순간에도 숨을 죽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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