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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이야기

찰스 램, 메리 램

by Michelle Lyu

셰익스피어 이야기

찰스 램, 메리 램

Tales From Shakespeare

Charles and Mary Lamb

원형으로 된 무대가 공연장 중심에 있다.

무대를 중심으로 빙 둘러 삼 층으로 관객의 자석 관중석이 마련되어 있다. 무대에는 이미 배우들의 공연이 한창 진행 중이다. 공연이 물이 올라 절정을 향해간다. 무대를 향해 관객석을 메우고 있던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잘 공연을 보려고 무대를 향해 고개를 앞으로 쑥 내밀고 있다. 그들 모두는 셰익스피어 극을 보러 온 사람들이다.

<셰익스피어 이야기>(Tales From Shakespeare)의 저자는 찰스 램과 메리 램이다. 두 남매가 셰익스피어의 극을 산문으로 다시쓰기 한 <셰익스피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마법을 부르는 Prospero 프로스페로, 나쁜 행동을 하는 요정 Puck 퍽, 사악한 Macbeth 맥베스, 탐욕스러운 고리대금 업자 Shylock 샤일록 등을 비롯해 아주 많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등장하는 유명한 캐릭터들을 만날 수 있다.

Miranda, who thought all men had serious faces and grey beards like her father, was excited by the appearance of this beautiful young prince. And Fredinand, seeing such a lovely lady in this empty place, thought he was on a magic island, and that Miranda was a goddess of a the place. He began to address her with the respect a goddess deserves.

She answered, a litter fearfully, that she was no goddess, but a simple girl......

미란다는 모든 남자는 그의 아버지처럼 심각한 얼굴과 회색 수염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텅 빈 장소에서 너무나 사랑스러운 부인을 본 페르디난도는 그가 마치 마법의 섬에 있다고 착각한다. 그리고 또한 페르디난도는 미란다가 그 마법의 섬에 사는 여신이라고 여긴다. 그는 여신에 대해 대단한 존경심과 경외심을 갖고 미란다를 쫓아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미란다는 두려움을 나타내며 자신은 여신이 아니며 그저 평범한 한 소녀에 지나지 않는다고 답한다......

(trans. by Michelle Lyu)

그 나라에 살고 있는 다른 공작들이 모두 숲에서 단조로우나 아주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데, 왜 밀란의 공작만은 오로지 그의 아름다운 딸과 함께 외로운 섬에서 홀로 살고 있는가?

왜 사랑에 깊이 빠진 두 젊은 남녀가 갑자기 서로를 미워하게 되고, 또 지독히도 서로를 증오했던 다른 커플 두 남녀가 갑자기 사랑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인가?

그리고 왜! 어떤 한 남자는 왕이 되기 위해 소중한 그의 친구를 죽여야만 했을까?

왜! 왜! 또 다른 한 남자는 친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기 위해 자신의 소중한 목숨을 제공했을까?

<셰익스피어 이야기>는 셰익스피어의 세계로 들어가고자 하는 모두에게 아주 훌륭하고 찬란한 멋진 여행을 유도하는 첫 번째 걸음을 떼게 할 것이다. 찰스 램(Charles Lamb)은 1775년 2월 10일 태어나 1834년 12월 27일 세상을 떠난 영국의 수필가이자 시인이다. 런던에서 출생한 그는 정신 발작증으로 어머니를 죽인 누나, 메리 램의 보호자로 일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모든 생을 바쳐 누이를 지극하게 돌보았던 찰스는 1834년에 세상을 떴고, 메리는 찰스보다 13년 후 찰스를 따라 세상을 하직했다.

1807년 찰스와 그의 누이 메리 앤 램(Mary Anne Lamb, 1764 - 1847)은 1807년 <셰익스피어 이야기>(Tales From Shakespeare)를 그들의 좋은 친구 William Godwin 윌리엄 고드윈으로부터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형식으로 써보라는 요청을 받는다. 이 요청에 램 남매는 셰익스피어의 희극 중 몇 편을 선택해 잘 알릴 수 있는 이야기로 써보기로 마음을 정한다. 찰스는 주로 비극을 택했고, 선택한 비극 작품에서 셰익스피어의 정통 언어를 많이 사용했다.

그러나 희극에서는 독창적인 언어를 좀 더 자유롭게 쉬운 일상의 말로 번역했다. 램 남매는 힘이나 마법의 사용 없이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읽기에 간단하고 용이 한 글로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셰익스피어 작품 소개로 램 남매의 <셰익스피어 이야기>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고 믿는다.

당시 찰스는 소수의 지인에게 셰익스피어 이야기가 인기를 누리게 될 거라는 편지를 썼다. 그의 판단은 옳았다. 셰익스피어 이야기는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었고 현재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에게 가장 많이 회자하고 있다. 램 남매는 당시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와 사무엘 테일러 콜리지 등과 함께 런던의 문학 서클을 주재했다.

<셰익스피어 이야기>에서 우리는 온 세상을 아우르는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작품을 통해 프로스페로와 그의 아름다운 딸 미란다, 요정의 왕 오베론과 왕비인 티타니아, 잔인한 고리대금업자 샤일록, 스코틀랜드의 초 살인적인 왕 맥베스, 완전히 똑같은 모습의 쌍둥이 세바스티안과 비올라를 만날 수 있다. 또 사막의 섬, 마법의 숲, 안개 낀 성들과 햇살이 가득한 궁전으로 미지의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사랑, 죽음, 복수, 용서, 질투, 우정 그리고 탐욕 등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감정들을 우린 셰익스피어를 통해 찾을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찬란한 ‘희곡’만이 아니라, 그의 시적인 눈부신 언어와 글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내보이는 수많은 복잡한 인간의 관계성을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독자인 우리는 아주 어렵게 느낄 수 있다.

혹 이런 어려움을 느꼈다면 램 남매가 쓴 <셰익스피어 이야기>(Tales From Shakespeare)를 통해 쉽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유머, 마법, 도덕적 의심 등 삶의 슬픈 부당성을 명백히 느낄 수 있고 알아 갈 수 있다. 또한 등장인물의 갈등, 그들의 행복한 감정과 고통을 공감할 수 있다. 이런 공감을 통해 우리는 이야기를 즐기고 동시에 셰익스피어가 우리에게 직시하게 하며 생각하기를 바라는 인생의 어렵고도 당면해야 하는 질문들을 때때로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이렇게 우리가 스스로 우리에게 자문하며 셰익스피어를 이해할 수 있다면, 인간적인 점에서 가능할 수 있는 수많은 삶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숱한 짧은 이야기들은 아름답게 빛은 발하는 찬란한 셰익스피어, 그의 세계로 향하는 문을 활짝 열어준다. <셰익스피어 이야기>는 우리가 좀 더 쉽게 탐험적인 놀라운 여행으로의 첫걸음을 떼게 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더욱더 풍요롭게 만든다.


19세기 초 도덕적 이야기는 어린이를 위한 문학에서 아주 중요했다. 권선징악의 관념은 램 남매에게 이야기를 쓰고자 하는 동기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옳음과 그름’ 사이에 차이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는데, <셰익스피어 이야기>가 사용되었다. 램 남매가 다시쓰기 한 작품의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셰익스피어 원전 작품 속 캐릭터들보다 조금은 덜 명징한 방법으로 선과 악의 면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각각 이야기의 결말에는 도덕적 면이 강조되어 드러나고 있음이 명백하다. 램 남매가 다시쓰기 한 <테일스 프럼 셰익스피어>에서 셰익스피어의 초기 작품이나 셰익스피어를 재현해 소개하는 이야기를 직접 만날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그의 이야기를 산문으로 다시쓰기 하며 램은 원전 셰익스피어의 다분히 너무나도 비극적인 극에서 가능하면 셰익스피어가 사용한 셰익스피어의 단어들을 그대로 사용했다. 그러나 램은 단어의 어휘를 훨씬 더 쉽게 구성했다. 이야기 중 몇 편은 정통보다 캐릭터들을 적게 등장시키면서 구성면에서도 훨씬 덜 복잡해졌다.

이러한 재구성이 전혀 쉬워 보이지 않았던 시대에 살았던 램 남매 그들이 새롭게 써낸 이야기는 거대한 문학계에서 첫 번째 성공을 명징하게 그들에게 안겨주었다.

찰스 램은 1775년에 태어났는데 그 해는 메리 램이 태어난 지 9년이 지난 뒤였다. 그들의 아버지는 런던에서 너무나 하찮은 월급을 받으며 변호사의 조수로 일했다. 찰스는 유명한 크라이스트 병원 학교 Christ’s Hospital School 학교에 다녔다. 그러나 메리는 예전 그 당시 우리나라의 여자들처럼 배움이 배제된 사람으로서 소녀, 여자였기에 남동생처럼 좋은 교육을 받을 기회를 가질 수가 없었다.

찰스는 그의 삶에 대부분의 많은 시간을 자유롭게 글을 쓰기 위하여 이스트 인디아 하우스에서 점원으로 일을 했다. 찰스가 했던 점원 그 일은 급료는 그리 많지 않았다. 메리도 바느질로 적은 액수의 돈을 벌었으나 가족의 가난은 늘 진행형이었다.

메리는 점차 정신적인 문제를 겪게 되었고 그때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 사건이 그들의 삶을 영원히 변하게 했다. 1796년, 어머니는 메리와 다른 소녀의 싸움을 말리려고 노력했다. 그 싸움은 정신적 문제를 지니고 있었던 메리가 자신의 싸움을 말리던 어머니를 무의식적으로 죽임으로써 끝이 났다. 법원의 판결은 메리가 정신적인 질환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했고 메리를 결국 정신병원에 보내는 것으로 결론이 지어졌다. 그러나 찰스는 법원의 판결에 여러 사항의 증거를 들어 설득했고 자신에게 메리를 돌볼 책임을 맡겨 달라고 애달프게 간청했다.

찰스의 간절함이 담긴 끈질긴 노력 덕분에 3년 후, 찰스의 보호 아래 메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허락되었다. 찰스는 자신의 나머지 생을 누나 메리를 돌보는데 보냈고,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다. 메리가 그녀의 엄마를 살해한 살인자로 낙인이 찍히고 정신질환을 겪고 있었기에 남매는 여러 번 거처를 옮겨야만 했다.

그럼에도 그들 삶의 대부분 나날, 남아 있는 날 동안 남매는 함께 조용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 허락되었다. 남매는 부모님이 안 계신 ‘엠마 이졸라’를 양딸로 입양해서 키웠다. 모든 생을 바쳐 누이를 지극하게 돌보았던 찰스는 1834년에 세상을 떴다. 메리는 찰스보다 13년 후 찰스를 따라 세상을 하직했다.

찰스는 그 당시 당대 많은 유명한 작가와 시인들을 친구로 두고 있었다. 학교에서 맨 처음 만난 시인 콜리지(Coleridge)를 비롯하여 워즈워스(Wordworth), 셸리(Shelly) 등이었다. 찰스 당시 시, 희극과 이야기를 쓴 문학계에서 존경받는 문학계의 아주 독창적인 심사위원이었다. 그는 누나 메리와 함께 어린이를 위한 책을 썼다. <율리시스의 모험>(Adventure of Ulysses) 다시쓰기로 <오디세이>(Odyssey)를 1808년에 썼다. 1809년, <레스터 부인의 학교>(Mrs Leiceter’s School) 썼고, <어린이를 위한 시>(Poetry for Children) 같은 해에 이어졌다.

셰익스피어 놀랍게도 그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특히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븐에 살았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는 1564년 4월 23일에 태어났다. 우리는 사실 그의 어머니 메리 아덴은 아버지 존 셰익스피어보다 높은 사회적 배경을 가진 가문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아마도 스트랫퍼드 문법 학교 Grammar School에 다녔을 것이다. 당시 그 학교는 지역에 사는 소년들에게 무료 교육을 제공했다. 그러나 대학 입학으로는 허락되지 않아 셰익스피어는 대학에 다니지는 못했다. 1582년 셰익스피어는 앤 해서웨이 Anne Hathaway와 결혼한다.

그 후 세 명의 아이를 낳는다. 그들은 수잔나 Susanna와 햄넷 Hamnet 그리고 주디스 judith다. 1592년부터 그는 런던에서 살았다. 연극에서 배우로도 활동하며 글을 썼다. 런던의 두 무대 글로브와 블랙 프라이어를 운영하는 연극 회사에 아주 중요한 구성원이 되었다.

그의 연극은 엘리자베스 1세와 제임스 1세의 궁정에서 특별히 공연할 기회가 주어졌다. 공연의 성공은 그를 부유하게 만들었다. 그는 가족을 위하여 스트랫퍼드에서 가장 큰 집 중의 하나인 새로운 플레이스 New Place를 샀다.

그는 뉴 플레이스를 새롭게 재건축했고 아내와 세 아이를 데리고 이사했다. 안타깝게도 1596년에 세상을 뜬 아들은 같이 할 수 없었다. 런던을 떠났고, 그는 그곳 뉴 플레이스에서 자신의 여생을 보냈다. 셰익스피어는 1616년 그의 52번째 생일날 세상을 떠났다. 그는 스트랫퍼드 교회에 묻혔다.

1590년부터 1613까지 23년 간의 시간을 지나며 동안 셰익스피어는 37작품을 썼다. 어떤 해는 한 해에 세 편을 쓰기도 했다. 1594년 <한여름 밤의 꿈>, <로미오와 줄리엣, 1595>, <베니스의 상인, 1596>, <줄리어스 시저, 1599> <햄릿, 1601>, <오셀로, 1604>, <리어왕, 1605>, <맥베스, 1605>, <폭풍우, 1611> 등이 그러한 작품들이다. 그는 또는 아주 아름다운 시도 썼다.

또한 1595년부터 그는 흥겹고 즐거운 코미디를 썼다. 코미디에는 셰익스피어의 철학을 담은 유명한 생각과 상황들을 담겨 있다. 예를 들면 <한여름 밤의 꿈>, <헛소동(Much Ado about Nothing), 1600>, <좋으실 대로, 1599>, <십이야, 1600> 등은 모두 젊은이들이 보이는 사랑의 잔인함과 오해와 폭풍우 같은 감정이 포함된 밝은 마음을 보여주는 코미디이다.

마법의 힘을 지닌 캐릭터들은 찰스에 의해 다시쓰기 된 <템페스트>, <한여름 밤의 꿈>과 맥베스에서 나타난다. <좋으실 대로>와 <베니스의 상인>, <맥베스>와 <폭풍우>의 대부분

이야기의 후반 대부분에서는 모두 용서와 복수에 대해 다룬다. 사건이 발생하는 요인이 평범하지 않고 이상한 장소에서 일어나는 사간들은 이야기의 경이로운 점들이 더해진다

속임수와 거짓말이 극에 많은 부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등장인물 캐릭터들이 개인적인 획득을 위해 서로 대항하거나 순수하게 드러내는 가식들이 얽히고설켜 경쟁하듯 나타난다.

그러나 너무나 심오하게 어두운 비극 <맥베스>를 비롯해 모든 이야기는 만족스러운 결말에 이르고 사랑과 선함으로 악과 불의를 패배시킨다.

램 남매가 다시쓰기 한 <셰익스피어 이야기>에서 셰익스피어의 초기 작품이나 셰익스피어가 삶을 지나며 추구하고자 했던 그의 이야기를 직접 만날 수 있다.

우리 모두 셰익스피어에게

“셰익스피어 씨 인간이란 무엇인가요?”

하는 귀하고 심오한 질문을 넌지시 던지게 된다.

오늘 바로 현재 이 시점을 지나면서......


©2025. Michelle Lyu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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