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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오리너구리

작품 깊이 읽기

by Michelle Lyu

철학자와 오리너구리

토머스 캐스카트와 대니얼 클라인 지음

박효진 옮김

Plato and a Platypus Walk Into a Bar: Understanding Philosophy Through Jokes

<철학자와 오리너구리: 철학을 비틀어 웃기는 아주 특별한 방법>

Tom Cathcart n Daniel Klein

철학자, 아마도 표지에 등장하는 그 철학자는 소크라테스일 것 같다. 긴 머리를 내려뜨리고 두 손으로 오리의 목덜미를 잡고 있다. 오리를 내려다보는 듯 검은 선글라스 너머로 보이는 그의 두 눈을 주시하게 하는 눈동자에는 오리 색 빛이 감돌고 있다. 무엇을 그리 골몰하게 생각하는지 일단 그 모습은 호기심을 자아낸다. 하나 더 호기심을 잡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책의 제목이다. Plato and a Platypus 제목에서 Plat 병존으로 시사하는 말장난의 시작은 이미 독자에게 이 작품이 언어유희의 대가인 셰익스피어를 방불케 하는 지적 흥미를 유발한다.

<철학자와 오리너구리> Plato and a Platypus

Plato: 형이상학과 이데아 이론으로 대표되는 고전 철학의 상징이다.

Platypus: 포유류지만 알을 낳고, 오리 부리에 비버 꼬리를 가진 이상한 동물이다. 오리너구리는 카테고리로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존재로 철학적 분류의 한계를 나타낸다.

따라서 ‘플라톤과 오리너구리가 술집에 들어간다.’ 이 농담은 엄숙한 철학 플라톤과 혼란스러운 현실 오리너구리의 만남을 제시한다. 즉 철학 세계는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고, 오리너구리처럼 예외투성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철학 이론들이 현실을 진지하게 설명하려 하나 현존하는 현실은 언제나 너무나 복잡하고 모순적이다. 이 작품은 ‘철학으로 세상 모든 것을 설명하려 시도하나, 농담은 그것이 얼마나 어긋나는지를 보여주는 도구’란 전제를 내세운다. 철학자가 종종 개념을 지나치게 정의하려는 것에 대해 오리너구리처럼 현실에는 기존 개념에 꼭 들어맞지 않는 것들이 존재하니 “철학은 그냥 어쩜 웃으면서 이해할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작품 부제가 ‘삶의 무게를 덜어주는 유쾌한 지혜들’이다. 옮긴이의 말을 빌자면 ‘인생에 새로운 답이 필요할 때 쓸모 있는 것이 철학이며 좋은 답을 찾으려면 좋은 질문이 필수’이기에 철학을 가지고 논다는 것은 대상을 이해하고 거리를 좁히는데 농담은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피력한다.

삶을 살아가며 삶의 문제에 대처하는 유쾌한 방법으로 비슷한 설명을 무한히 계속하는 논증 ‘무한퇴행’이라는 철학 개념을 작품 서두에서 바로 만나게 된다. 이 무한퇴행을 철학자가 삶의 진실을 찾아가는 통찰이라고 부른다면 농담꾼은 이를 재치로 표현한다. 이 작품은 세상을 살아가며 어떤 한 방법이 다른 방법보다 정말로 믿을 만한가에 초점을 두고 있다. 설명으로 듣는 어떤 것이, 눈으로 본 그 무엇이, 결과가 비슷하면 원인도 비슷해야 한다는 유비논증의 형태를 빌어 요사이 지적설계로 시계공 논증 주장자에게 엉뚱하게 이용되고 있다고 언급한다.

작품의 서문에서 화두로 제시하는 여러 질문은 철학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한다. ‘직장인에게 자유의지가 있을까?’라는 형이상학 철학 분야를, ‘실패에 성공한 사람은 성공한 걸까, 실패한 걸까?’는 논리학을 다룬다. ‘아침마다 죽음을 생각하라고?’ 이는 실존주의다. ‘농담만으로 철학을 배울 수 있을까?’ 메타 철학 분야다. 이렇듯 모든 철학 분야에 농담이 들어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렇다면 정말 농담이 지적설계를 찾아가는 사용자나 독자가 일부러 찾아야만 알 수 있는 숨겨진 요소 이스터 에그((Easter Egg)일지도 모른다. 사실 좀 민감한 독자는 이미 느끼겠지만 작품 제목 자체가 이스터 에그다. "Plato and a Platypus Walk Into a Bar" 고전적인 농담 형식을 차용 한 ‘Plato(플라톤)’와 ‘platypus(오리너구리)’의 어감과 의미는 철학적으로 유의미하다. 플라톤은 보편자를 중시한 형이상학의 대가고, 오리너구리는 분류학적으로 애매한 동물로 철학적 분류의 어려움, 본질과 속성에 대한 문제를 나타낸다.

작품은 고전 철학 개념 형이상학(Metaphysics), 인식론(Epistemology), 윤리학(Ethics), 논리학(Logic), 실존주의(Existentialism), 실용주의(Pragmatism) 등 여러 철학 사조를 짧은 농담과 유머를 들어 쉽게 설명한다. 예로 “하이데거가 길을 잃었다. 그러자 그는 말했다. ‘사실 길을 잃은 게 아니라 단지 길의 존재가 나를 벗어났을 뿐이다.’” 이 농담은 하이데거의 ‘존재론’ 개념의 패러디다. 하이데거는 실존주의의 대가로 존재란 단순히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물음의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렇듯 각 장마다 관련 농담을 소개해 관련 철학 장르의 전제로 내어놓고 곧이어 그 농담을 통해 해당 철학 개념을 설명하는 형식이다. 이런 구성 접근법은 대중 친화적 철학 입문서를 지향하며 철학 전공자가 아닌 철학을 어렵게 느끼는 일반인도 쉽고 가깝게 접근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각 장마다 진지한 철학 개념을 등장시키고 뒤이어 나오는 농담 하나로 개념을 비트는 방식이 반복된다. 이는 철학적 사고의 상대성과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일례로 제6장 실존주의 "‘나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고 외쳤지만, 결국 치킨을 또 시켰다." 이 문장은 자유의지와 실존의 무게를 보여준다.

또 작품 속 철학자들이 현대인처럼 대화하거나, 바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형식이 자주 등장한다.

소크라테스: “바텐더, 너는 나에게 술을 따르라고 명령했는가,

아니면 그것이 정의로운 행동인가?”

칸트: “나는 술을 마시지 않지만, 네가 술을 마시는 걸 막을 도덕법칙은 없다.”

작품 속 등장한 일부 농담은 존재하지 않는 철학 논문이나 패러디된 철학 용어를 인용하기도 했다. ‘<도덕적 실재론에 관한 코요테의 입장> Wile E. Coyote, ACME 대학 논문, 1983’ 이는 사실 철학적 진지함을 깨뜨리는 메타 유머다.

각 장마다 주요 상징 철학을 부제로 내세운다.

1장, 직장인에겐 자유의지가 있을까? 에는 ‘세상 모든 것에 관한 형이상학적 농담들’이 부제다. ‘목적론, 본질주의, 합리론, 무한과 영원, 결정론 대 자유의지, 과정 철학, 좀 더 간단한 철학은 없을까?’로 맺는 형이상학을 담고 있는 철학 장르가 등장한다.

2장, 실패에 성공한 사람은 성공한 걸까, 실패한 걸까? ‘친구를 잃어도 논쟁은 이겨먹겠다는 이들을 위한 논리학’이 부제로 등장한다. 이 장에서는 논리학을 이루는 모든 개념이 설명된다. A이면서 동시에 A가 아닌 상황이 설립할 수 없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원칙 무모순율, 비논리적 추론, 구체적 사례들에서 일반적 결론을 이끌어내는 추론 귀납논리, 반증가능성, 연역논리, 유비추리를 포함하는 귀납논리, 인과관계의 오류, 몬테카를로 오류, 순환논증, 권위에 호소하는 논증, 제논의 역설, 논리 역설과 의미 역설의 개념 정리가 일목요연하게 언급된다.

3장, 오리너구리는 오리야, 너구리야? 이는 ‘인식론의 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다. 이성과 계시, 개인의 경험 특히 감각경험이 지식을 얻는 기초적 혹은 유일한 경로라고 주장하는 경험론, 과학적 방법, 독일관념론, 수학 철학, 실용주의, 현상학이 나타난다.

4장, 선의의 거짓말도 하면 안 될까? 에서 ‘옳고 그름에 관한 윤리학적 논쟁들’이 등장하고 도덕적 절대주의, 플라톤식 덕목, 스토아 철학, 최대 다수에게 최대 행복을 주는 것이 옳다는 윤리적 입장의 공리주의, 정언명령과 황금률, 권력의지, 그저 어떤 행동이나 그 행동을 하는 사람에 관한 감정적 표현이라는 윤리적 입장인 감정주의, 응용윤리학, 정신분석학이 준 충격, 상황 윤리학의 개념이 설명된다.

5장, 신은 도박을 할 수 있을까? 신과 종교에 관한 발칙한 질문들을 종교학적 관점에서 다룬다. 신에 대한 믿음, 이신론과 역사적 종교, 신학적 차이, 얼간이 철학이 나타난다.

6장, 아침마다 죽음을 생각하라고? 실존주의로 삶의 불안을 해소하는 법을 부제로 달며 헤겔식 실존에 관해서도 설명한다.

7장, 철학은 말장난에 불과할까? 는 언어철학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로 일상언어철학, 고유명사의 언어적 지위, 모호함 등 철학의 개념이 언급된다.

8장, 농담은 공리주의를 따를까, PC주의를 따를까? 로 표현되는 ’웃으면서 사회와 정치를 말하는 기술은 자연 상태, 힘은 곧 정의다, 마키아벨리즘, 페미니즘, 경제철학, 법철학의 개념을 풀어낸다.

9장, 외계인에게도 농담이 통할까? 상대성을 통해서 세상 이해하기를 부제로 내세우며 진리의 상대성, 시간의 상대성, 세계관의 상대성, 가치의 상대성, 절대적 상대성의 개념을 설명한다.

마지막 10장, 농담만으로 철학을 배울 수 있을까? ’철학은 무엇인가에 관하여‘가 부제이다. 메타 meta 접두어는 ’너머, 그 아래 모든 것을 다 포괄하는 자의성을 드러내며 철학 그 자체를 농담의 대상으로 삼는다. “철학자들이 너무 많이 생각해서 세상을 바꾸는 걸 잊었다.” 이는 철학 비판이자, 이 책 저자의 자기 패러디로 볼 수 있다.

<철학자와 오리너구리>(원제: Plato and a Platypus Walk Into a Bar)의 제목과 내용에서 드러나는 "뜻"은 단순한 유머 이상의 철학적 풍자와 은유를 담고 있다.

<철학자와 오리너구리>를 읽어가는 내내 학창 시절 죽어라 외웠던 철학 개념들이 재정리되어 들어 왔다. 당시는 철학의 개념이나 내용 이해보다 아마도 문자 그대로의 뜻을 암기하기 바빴을 것이다. 학부에 들어가 본격적인 철학 개념을 담은 개론서와 입문서를 접하면서 다소나마 본질, 명제, 선험적, 실존, 실용, 의무론, 정언명령, 합리론, 현상학, 화두 그리고 델로스 용어 정의에 깊게 의미를 담게 되었다. 2025년 6월 현재, 이제 <철학자와 오리너구리>로 통해 그 무수한 철학 용어 들을 재정립하는 시간과 마음을 갖게 되어 무한 환희로 가슴이 벅차 온다. 이런 마음이 드는 이유는 늘 좋은 책은 체화되어 가는 가슴이 먼저 반응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좋은 내용 귀히 읽었다. 귀한 시간을 인식하게 해주어서도 참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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