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깊이 읽기
25.6.13
싸움에 관한 위대한 책
다비드 칼리(Davide Cali)
저자 다비드 칼리를 만난 것은 오래전 <누가 진짜 나일까?>로 복제에 대한 문학 강의를 시작하면서였다. 지금 다시 다비드 칼리의 <싸움에 관한 위대한 책>을 잡는다. <싸움에 관한 위대한 책>은 짧지만, 매우 깊은 철학과 풍자가 담긴 그림책이다. 첫 번째로 표지를 중심으로 책의 내용을 이해해 보기로 한다. 표지에 등장하는 한 사람의 얼굴이 온통 온전한 곳이 없다. 코 부분에 커다란 빨간 X표가 표시되어 있다. 얼굴 왼편에는 퍼렇게 멍이 들었다. 이제 얼굴에서 몸 부분으로 눈길을 내리자 깁스한 팔이 드러나고 군데군데 찢어진 옷이 보인다.
다음으로 책 제목이 시사하는 바를 체크하고자 한다. 제목이 스스로 “위대한 책”이라고 말하고 있다. 왜 ‘위대한’ 책이라고 말할까? 과연 이 싸움은 위대한가, 어리석은가? 싸움이라는 주제를 풍자하거나 아이러니하게 말하고 있는지 먼저 의심을 담는다.
이 책은 그림책이다. 그림책이란 글은 간결하지만, 그림이 핵심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뜻이다. 한 장씩 그림만 먼저 살펴본다. 전쟁이나 싸움의 과정을 보여주는 장면들을 따라가며,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묵상해 본다. 이제 글과 그림을 함께 다시 읽는다. 글이 전달하는 논리와 그림이 보여주는 현실 사이에 모순이나 풍자가 있는지를 생각해 본다. 겉보기에 단순한 어린이책 같지만 실제로는 폭력, 전쟁,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특히 싸움의 원인, 과정, 결과가 얼마나 무의미하고 반복되는지를 보여주는 구조에 주목하게 된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모른다를 지나 규칙을 정한다. 이에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것이 확대로 나타나 결국 모두 피해를 본다. 이렇게 반복되는 패턴은 현대 사회의 갈등 심지어 국제 전쟁의 역사와도 닮아있다.
작가는 싸움의 시작을 인류 탄생과 연결 지어서 글을 이어간다. 사소한 일로 시작되는 싸움을 내비치며 싸우는 모습의 표정을 보여준다. 그 후 싸움의 좋은 점을 다뤄내며 싸움의 시작과 유형을 설명한다. 그렇다면 어른의 싸움,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한 장면으로 깊게 내비친다. 그 후 다시 여자의 싸움은 무엇이며 싸움의 명수를 어떻게 알아보는지와 함께 시간, 공격 언어를 보여주며 싸움 시작을 누가 했는지를 제시하며 싸움 후의 모습과 후 관계를 한 편의 드라마처럼 내용에 진솔히 담아냈다.
이 싸움은 왜 시작되었을까?
진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이 싸움에서 이익을 얻는 사람과 잃은 사람은 누구일까?
싸움이 끝난 후 남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도 이런 싸움을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가?
등 끊임없이 이어지는 무수한 질문이 자성의 목소리를 내며 각인하게 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면은 책 전체의 메시지를 농축해서 보여주는 클라이맥스다.
“정말 이 책이 전하려던 싸움의 진실은 무엇일까?”
이는 싸움이 계속 반복되고,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방식을 보여주는 건 아닐까 하고 여겨진다. 요즘 내가 겪는 갈등, 분노, 싸움 이 책의 싸움과 어떤 점에서 닮았을까? 라는 질문은 최종적으로 정리된 한 문장을 도출한다.
‘싸움은 위대하지 않다. 반복된다. 그리고 결국 모두가 다친다.’
작가 “다비드 칼리(Davide Cali)”는 스위스 출생(1972년)으로 이탈리아를 기반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아동 그림책 작가다. 2005년 바오밥상, 2006년 볼로냐 라가치상 예술상 부문을 수상했다. 그림책, 만화, 시나리오 등을 넘나드는 다재다능한 창작자다. 1998년 데뷔 이후 200권 이상 작품 출간해 전 세계 어린이 독자와 교감 중이다. 바오밥상 수상작 <나는 기다립니다>는 섬세한 감성과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야기다. <늑대의 선거>는 투표와 정치라는 주제를 우화적으로 풀어내어 풍자와 재미가 균형을 이룬다. 개인적으로 깊이 좋아하는 <누가 진짜 나일까?> 미래와 복제인간을 소재로 정체성 질문을 탐구하는 철학을 담아내었다. 다비드 칼리의 작품은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도 함께 즐길 수 있는 메시지와 유머가 매력적이다. 특히 상상력과 위트를 기반으로, 일상 속 이야기부터 사회적 주제까지 폭넓게 다룬다.
봄이 지나가는 계절 ‘싸움’이라는 전투적 언어를 인류의 시작으로 성찰해 작가가 표현했다. 그가 표현한 시작의 의미는 아마도 우리 모두의 시작, 계절의 시작 봄을 지나 사계절로 이어지는 무한 반복적인 순환 속에서 깊은 시작의 의미를 담아낸다.
어떠한 시작이든 시작을 떠올리면 봄의 환희가 다가온다. 6월 봄을 지나며 다른 계절 여름을 여는 시작에서 한 번 인류와 맥을 같이하는 첫 싸움의 의미를 조우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