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숨결
묘지기
엄마는 세상 문외한으로 생을 지난 아주 마음이 여린 소녀였다. 여자이었다. 여인이었다. 엄마가 지나온 삶의 매 순간이 막내에게 숨결이 되어 흐르며, 도저히 사라지지 않은 채 가슴에서 내내 아른거린다. 깊이 엄마를 생각나게 하는 매개체는 엄마가 살아가면서 세상에 보이신 마음 하나하나가 모두에게 전했던 잊히지 않는 가슴앓이의 영구성이 되었다.
막내는 엄마의 유물 옥색 자석 팔지를 만지작거렸다. 그 유물이 시간 여행을 시작하며 온몸을 녹일 듯한 막내의 오열을 멈추게 한다. 관습, 관례, 법 같이 엄마의 성정에 어떤 제약도 가할 수 없는 필요성을 지니게 한 사유 중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엄마의 마음이다. 어쩜 엄마가 생을 살며 전혀 느끼지 못했던 모든 것이, 엄마가 도망치고 싶었던 그 모든 것이 바로 인생의 테두리라는 것을 엄마는 뻘겋게 탁탁 피어오르는 번개탄 불꽃에서 느꼈을지 모른다. 엄마는 본의 아니게,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도 없이, 어떤 한 삶이 존재하기 위해서 자신의 주위에 지속되는 현실이 부정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때 아셔야 했다.
엄마는 필멸의 육신으로 자녀를 지켰고 이어져 내리는 후손에게 지혜와 미덕의 전형을 만들어 놓았다. 모인 일가는 엄마의 삶이 수많은 시간과 긴밀하게 이어지는 수를 놓으며 장구히 가져다 놓고 또한 이끌어 온 뿌리의 연계임을 알았다. 일가 모두에게 바깥세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주위에 질서를 부여하게 했던 존재, 그 사람이 바로 엄마였다.
봄이 오던 그 어느 날 견고하게 엄마의 삶을 지탱하던 수많은 협약이 점점이 깨지며 바스러지는 격한 소리를 내었다. 그해 봄은 유별나게 곤혹감을 동반하여 질척거리며 오고 있었다.
엄마의 묘는 쓰지 못했다.
아니 엄마를 모실 묘지가 없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엄마는 막내와 둘이 제기동에 남았다. 제기동 집을 정리하자는 자녀들의 말에 엄마는 굳게 침묵했다.
“막내랑 둘이 그냥 아버지 계신 여기에서 살란다.”
긴 침묵 끝에 엄마는 한마디를 토해 내셨다. 자녀 누구도 엄마의 말을 감히 거역할 수 없었다. ‘막내랑 여기에서 그냥 살란다’ 그 말씀을 하는 엄마의 어질고 말갛고 조용한 큰 눈망울을 자녀 누구도 도저히 바라볼 수가 없었다. 엄마는 말이 많지 않으신 분이셨다. 말보다 늘 마음이, 행동이 우선하는 삶을 사셨다. 막내는 그런 엄마가 언제나 좋았다.
엄마의 고향은 이북이었다. 황해도에서 전쟁을 피해 피난 온, 내려온, 고향을 두고 떠나온, 남하한 사람이었다. 고향을 떠난 이래로 제기동 한옥에 거처를 두고 평생 사셨다. 엄마에겐 아버지와 함께 살던 제기동이 엄마의 생애 두 번째 고향이자 아버지와 함께한 얼과 정신과 추억으로 얽혀 있는 생명의 공간이었다.
제기동, 엄마의 한옥은 형제자매 없이 홀로 자란 엄마가 한 집안의 첫째 며느리가 되어 시집을 온 이래로 계속 살던 집이다. 고향이 이북인 엄마는 두 번째 고향인 제기동을 떠나 아버지가 떠나신 그 순간까지 생애 다른 어떤 곳에서도 살아본 적이 전혀 없었다.
아버지의 형제는 둘 뿐이었다. 형인 아버지는 제기동에 아우는 돈암동에 자리를 잡고 형제는 남한에서 견고하게 삶의 뿌리를 내려갔다. 엄마는 한 집안 큰 며느리로 수십 년을 그것도 너무나도 전형적인 동방 예의지국 한국의 여자로 살아오셨다. 그런 엄마에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간다는 것은 아무리 이제 자녀의 집이 되었다고 해도 생각하지도 못한 어불성설이었고 마치 낯선 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방인이란 감정이 각인되어 몸서리를 치셨다.
‘막내랑 그냥 여기 살란다’라는 조용하나 단호한 엄마의 말에 언니 오빠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의사인 큰 형부를 선두로 모두 엄마와 막내를 홀로 둘 수 없다는 각자의 이유와 근거를 제시하며 설득이 아닌 강한 강제성을 드러내는 말로 자녀들은 한 마디씩 제기동을 떠나야만 한다는 주장을 밀어붙였다.
자녀 모두의 각각 의견이 분분함에도 불구하고 희생과 헌신이란 단어가 흡사 엄마를 위해 존재하는 언어라도 되는 듯 자녀 뒷바라지를 평생 해온 엄마는 나름으로 자신이 제기동에 남아 살고 싶은, 남고 싶은 이유를 단호하고 분명하게 내비치셨다.
“우리 막내!
막내가 아직 공부 중이고 막내가 공부를 다 마치는 날, 그날.
그때는 한 번 생각해 보마......”
절대 누구에게도, 누도 짐도 해도 되지 않고 싶다고 상황을 종료하는 엄마의 끝맺음 말에 자녀 누구도 엄마의 자존심을 더 이상 건드릴 수 없었다. 엄마는 사는 내내 자존감을 지니며 자존심을 놓지 않고 사신 분이셨다. 그런 엄마를 모호하고 그저 자기애적인 이유를 들어, 편의를 들어 설득하고자 함은 통하지 않았다. 언니들과 오빠는 사실 그런 견고한 자기 확신을 가지고 계신 엄마를 언제나 존경하고 존중했다.
엄마는 아버지의 보호 아래에서 소유가 적든 많든 자신의 의지 담아 어떤 경우에도 자존을 지키며 사는 허락하는 삶을 꾸려 오셨다. 아버지가 세상 떠나신 뒤로도 엄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기울여 비루하지 않은 생을 영위하셨다. 자식들에게 손을 단 한 번 벌리지 않고 사셨다. 엄마에게는 여리나 도저히 누구도 넘을 수 없는 견고한 강인함이 있었다. 자녀들은 끝내 그러한 엄마의 생각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엄마와 막내가 함께 사는 둘만의 삶은 참으로 외로웠다. 지금으로서는 그리 많은 나이가 아니겠지만 이제 하늘의 뜻을 조금 알게 된다는 지천명의 나이, 오십 초반의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당시 어떤 것도 없었다.
집안에 지니고 있던 돈이 점점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는 날 언제나 자신이 아닌 가족, 특히 자녀들이 엄마의 세상, 삶의 중심이었고 그리고 늘 타인을 배려하며 사신 엄마는 결코 자신의 필요를 위해서는 단돈 한 푼도 쓰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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