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이 전한 말

삶의 결

by Michelle Lyu

봉영이 아줌마가 왔다.

저녁 어스름이 어느 사이 빠르게 밤의 길목으로 들어선다. 저녁상을 물리자마자 검게 다가온 어둠이 온 하늘을 순식간에 덮었다. 4월이었다. 겨울의 끝자락에 있는 시간은 빠르게 어둠을 재촉해 왔다.

백규는 안방으로 들어가 티브이를 켜며 차 한잔을 준비해 달라고 아내에게 부탁한다. 티브이에서는 계속 민청학련 사건이 화면을 온통 채우고 있다. 1970년대다.

식탁에서 물러나 방에 들어선 막내는 책상 위에 펼쳐져 있던 책을 들었다. 작품을 읽어가며 주인공이 보여주는 세계와 내면 인식으로 향해가는 사유에 대해 깊은 생각으로 몰입한다. 책의 내용은 읽는 내내 막내 안의 사유 세계와 바깥 세계에 대해 깊은 조우를 하게 했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데미안처럼 신중하게 읽던 페이지로 되돌아가기를 여러 번 반복한다.

대문 초인종이 울렸다. 초인종 소리가 길게 울렸다. 길게 길게 또다시 울렸다. 누군가 초인종을 잘 접해 보지 않은 사람이 누르는 모양이었다. 그저 아이들이 장난치는 것이라 여겼다. 아이들이 줄지어 뛰어가며 남의 집 초인종을 장난 삼아 누르고는 우르르 도망가던 모습이 자주 목격되던 시절이었다. 셋째 화숙은 설거지와 차 준비로 초인종 소리를 듣지 못했다. 인터폰을 누르러 나오는 기척이 없었다.

막내는 작은 언니가 인터폰 버튼을 눌러 대문 열기를 기다렸다. 인터폰 누르는 소리가 여전히 들리지 않았다. 기다려도 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때 다시 초인종 소리가 길게 들렸다. 막내가 인터폰을 눌렀다.


문밖에서 ‘계세요? 계세요? 안에 누구 안 계세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따라 현관을 지나 대문으로 나갔다. 놀랍게도 대문 앞에는 첫째 큰 언니네 집에서 일을 도우며 바깥채에 세 들어 살던 봉영 아줌마가 서 있었다. 우리 집을 방문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얼굴이었다.

“아이고, 제가 집을 맞게 찾아왔네요!!!

막내 이모를 보니 잘 찾아왔네요!”

어둠을 타고 막내가 안내하는 대로 집안으로 들어선 봉영 아줌마는 소파에 앉지도 않고 마룻바닥에 털썩 앉으며 인사를 했다.

“방으로 들어오세요. 아직 날이 찬데......”

화숙은 봉영 아줌마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보일러가 가동되었으나 마루는 아직 따스한 봄기운이 스며들지 않아서인지, 없어서인지 겨우 냉기를 가실 정도로 미지근한 온기만이 느껴졌다. 화숙은 아줌마를 안방으로 이끌었다. 쭈뼛거리며 안방에 들어선 봉영 아줌마는 한눈에 보기에도 얼마나 조심스레 갖고 왔는지가 느껴지는 누런 봉투를 가슴에 꼭 껴안고 있었다. 방에 앉으며 봉투를 무슨 소중한 보물 다루듯 조심스레 방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곤 천천히 봉투를 풀었다. 두껍고 탁한 누런 봉투 안에는 여러 겹겹으로 둘둘 말아 싼 신문 뭉치가 들어 있었다.


“아무래도 제가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을 듯해서요.

더 미뤄서는 안 될 것 같아서요.”

숨을 몰아쉬듯 말을 꺼내며 봉영 아줌마는 빠르게 신문에 싸인 두루마리 뭉치를 펼쳐 보였다. 여러 겹 신문지로 둘둘 말려 싸여 있던 뭉치를 풀자, 그 속에는 놀랍게도 두툼한 지폐 다발이 가지런히 들어 있었다. 펼쳐 낸 지폐 양이 상당했다.

“아니! 이게 뭐예요?”

많은 지폐를 보고 놀란 화숙이 물었다.

그러자 봉영 아줌마는

“할머님이!

할머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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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akespeare " 전공. 나에 대한 생각, 타인에 대한 이해, 사회를 보는 길이 바로 문학이라 생각한다. 내게 나를 보여주는 거울이며 타인에게 향하는 창이며 통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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