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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elle Lyu Mar 03. 2020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살아있음이려니

또다시 조심스레 비루하고 초라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발음도 정확하지 않았고 어눌하고 얼버무렸다
내용은 더욱 오리무중이었다
그럼에도 알았다고 답을 한 것은 그에 대한 마음 때문이었다
수십년지기다
경숙이는 다시는 하지 말라고 거듭거듭 다짐을 했다
경숙이에겐 그러마 하지 않겠다고 했다
허나 이미 알고 있었다
답을 하는 자신은 또다시 전화하고 부탁을 한다면 거절할 수 없음을 이미 알고 알고 있었다

가여웠다
자꾸 돈에 매몰되는 친우가
사학연금을 수백만 원씩 받고 있으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는 형편이다
그간 축적한 것이 많이 있는 상태인 그가
금전이 한참을 부족한 사람에게 부탁을 한다
해줬었다
또다시 묻지 않고 보냈다

그만큼 그에 대한 수십 년의 시간 마음이 귀해서다
죽는 날까지 지키고 갖고 지키고 싶어서다

기도를 했다
마음에 그가 하나님을 알았으면 해서다
그보다 숱하게 형편이 여의치 못하지만
자신은 이미 초월한 삶을 산다
매 순간 자신의 능력을 기반으로 노력하고 있으며
어느덧 잠잠히 무엇보다 힘을 위안을 주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을 느끼고 알게 되었다
불안이 없지는 않으나 그만큼의 믿음도 있다

에벤에셀 하나님이 지키심을 느끼기에...
 
atm으로 현재 잔고의 반을 보냈다
그에게는 큰 금액이 아닐지 모르나 자신에게 전부의 반이다
보내며 오로지 하나를 염원했다
ys가 돈이라는 허상에 매몰되지 않고 잘 해결되고 평안하기를 기도했다
아팠다
누구보다 이성적이며 근검절약의 대명사였던 수십년지기 친우가 안타까웠다
오랜 친우이기에 더욱 아렸다 마음 깊은 곳이...

울타리 담을 사이에 두고 이름이 다른 아파트가 존재한다
울타리의 경계를 쏜살같이 넘었다
쇼핑백에는 미역국과 어묵볶음이 들어 있다
사위 생일이다
사위를 위해 새벽 미역을 불리고 고기를 썰어 미역국을 끓이고 어묵을 볶았다
살림 잘하지도 좋아하지도 익숙하지도 않다
삶의 순간순간이 언제나 지적 체계에 맹진을 요했다
평생 가르치는 업을 가진 사람의 숙명었다
그리 살았다
늘 시간 안배에 우선순위를 생각하며 지나왔다
살림 시간 안배에서 차선이었고 잘하지 못하기에 좋아하지 않았고 그래 익숙하지 못했다
그나마 잘할 수 있는 것을 택했고 그게 어묵볶음이다
당연히 생일 미역국은 준비해야 했다
새벽 최선을 다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며 시간을 열었다

사위 서서방 생일 미역국을 들고 비번을 눌렀다
누구의 미동도 없다
세 식구가 꿈나라에 있다
창문 너머 밝아오는 새날을 본다
3월 3일
식탁에 어묵을 놓고 국냄비를 찾아 미역국을 담아 레인지에 올린다
약한 불로
우주가 잠이 덜 깬 눈으로 웃는다

아 이리 이쁜 놈이
ㅎㅎㅎ

생일 축하 노래를 급히 부르고
현관문을 열고 닫고
바로 atm에 닿는다
그에게 송금을 하고 시간을 본다
7시 반

바빴다 새벽부터
생일 미역국 끓이기 송금하기
살아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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