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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elle Lyu Aug 02. 2020

변화에 적응하는 여린 몸짓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변화에 적응하는 여린 몸짓

 

혼돈 상태다

여기저기 <한여름 밤의 꿈>에 대사들이 난무한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아니! 이게 웬일!’ 대사를 읊는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남녀노소가 한 목소리로 주거니 받거니 <한여름 밤의 꿈>의 오벨론, 티타니아, 퍽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경이로웠다. 

한 세대도 훨씬 이전, 한여름이 오는 저녁나절이었다. 단발머리에 청바지를 입은 한 학생이 한쪽 어깨에 백팩을 메고 손에는 지도와 수첩과 연필을 들고 셰익스피어 생가를 찾아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븐(Stratford-upon-Avon)을 헤매고 있었다. 거리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대사를 듣는 순간, 그 대사를 따라 하고 싶은 욕망이 가득했다. 허나 유감스럽게도 자신이 잘 아는 대사는 학부시절 한 학기 내내 고심하며 씨름했던 백팩에 조용히 들어 있는 <햄릿>이었다.  

셰익스피어를 좋아했고 잊지 못했다. 아주 오래전 ‘가장 나다운 나’의 정체성을 찾아 떠났던 길이다. 모두 말렸다. ‘그 먼 곳으로 공부를 하러 간다고!’ 마음이 바닥이 될 때마다, 눈을 감으면 모두 염려했던 그 말이 나를 괴롭혔고 외롭게 했다. ‘가장 나다운 나’의 정체성은 그때 그 외로움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죽기 살기로 몰입했다. ‘셰익스피어’에 다가가기 위해서... 그리고 결국 셰익스피어는 나의 정체성으로, ‘가장 나다운 나’의 바탕을 세우는 학문의 전부가 되었다.

텍스트를 읽고 분석하고 가르치는 일로 생을 걸었다. 매일 아침이면 텍스트와 자료를 챙겨 가방에 담았다. 텍스트와 자료만 있으면 어떤 강의도 완벽했다. 차츰 강의 툴의 변화가 왔다. 변화는 물 흐르듯이 완만하게 다가왔다. 조용한 변화 속에서 여전히 중심 있게 텍스트와 자료만으로 학부와 대학원의 강단을 지키는 사람도 있었고, 새롭게 PPT를 작성해서 변화에 순응하는 쪽도 있었으나, 어느 쪽을 선호하든 사실 두 편은 서로 공존했다. 

강의 PPT가 잔잔하게 선을 따라 이어가는 변화였다면, 갑작스레 다가온 코로나19에 대처하여야 하는 강의 툴의 변화는 너무나 급격했다. 변화의 변곡점이 하늘로 치솟아올라 쉽게 따라갈 수도 숨을 쉴 수조차도 없었다.      


시작은 조용했다.

까뮈의 <페스트>의 배경인 오랑시에 잠잠히 퍼져온 쥐가 옮긴 균처럼 세상의 변화에 대응하라는 요구의 모습이 조금씩 검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림자 속에 있는 한 개인도 예외가 아니었다. K대에서 강의가 연기된다는 소식이 왔다. 처음 온 연락은 개강을 2주 미룬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또 이 주 뒤, 다시 한 달, 또다시 두 달 지연이 계속되었고 급기야 강의는 폐강되었다. 

같은 현상이 K대에서만이 아니었다. 다른 기관도 마찬가지였고 한 기관에 속한 세 강의 중 두 수업은 아예 취소되었다. 그 소속기관에서 오직 한 수업의 시작을 1학기 마지막 두 주를 남기고 요청하기도 했다. 허나 이미 수개월이 지난 상태고 한 기관에서 오로지 한 수업을 위해 수업, 강의 준비로 수많은 시간과 온 정성을 쏟아야 하는 마음이 허락되지 않아 자진해서 취소했다. 거의 모든 기관이 외부강사를 거부했다. 오로지 관악에 있는 S대에서 외부강사로 온라인 강의를 하게 된 I교수는 전화로 ‘너무 사는 게 재미없다, 강의 재미없다’는 말만을 계속했다. 변화는 모두를 슬프게 했다.

2020년 3월부터 시작된 강의, 수업 캔슬로 사오 개월을 지나가고 있었다. 학교는 발 빠르게 온라인으로 영상으로 동영상으로 랜선으로 수업이 전환되었다. 허나 6월까지도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60대를 살고 있고 얼마나 지금 이 변화에 적응해 배워야 할 것이 많은지 알게 되자 나약해지는 마음이 좌절과 별로 다르지 않은 통감을 자아냈다. 코로나19가 지속되는 시간만큼 마음은 계속 바닥을 향해 가라앉았다. 약해졌다. 급기야 집콕이 주었던 무운동의 생활 패턴이 건강 이상 신호를 울렸다.

119에 실려 A병원으로 갔다. 별다른 증세 없는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한 이명, 이석, 전정관의 이상 증상이라고 했다. 병원에서 받아온 약을 먹었다. 어지러워서. 그리고도 낫지를 않아 또 위례 C이비인후과를 찾았다. A병원에서 근 20, 이비인후과 첫 방문 때 20, 다시 방문 4 병원비가 한순간에 수십을 넘었다. 모든 게 긴장의 연속이었다. 건강도 또 병원비도 긴 수명이 주는 지난함도. 일부러라도 생활 운동을 해야 한다고 남편과 아이들이 채근을 했다. 큰 아이는 마음의 시간을 내어 설득과 격려로 엄마의 손을 잡고 ‘휴먼 링’을 돌았다.

마음 추스름이 필요했다. 갑작스럽게 변하는 세상이 ‘변화에 순응하라’고, ‘따라오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따라오던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무가치한 존재로 살던지 선택은 결국 자신의 몫이 되었다. 무가치한 존재, 존재하지 않은 사람으로 살 수는 없었다. 자신이 학문으로 세워온 그 숱한 시간, 세월, 노력을 백지화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결코 자신다운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선택지는 하나였다


배우기로 했다. 

배워야만 했다. 온라인, 랜선, 플랫폼 등 생소하기만 했던 것에 대해... 심히 앓았다. 누구도 모른다. 알 수가 없다. 오직 해내야 한다는 마음만이 자신을 잡았다. 그것이 자신이라고 여겼다. 스스로 현재의 무기력에서 나올 수 있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영어, 글, 책, 강의였다. 자신의 정체성인 영어 글 책 강의 그 모든 것을 거의 하지 못한 채, 무의미한 시간 지남으로 반년이 지났다. 

그때서야 정신이 들었다. 후배가 영상수업을 하는 방법을 강의한다고 했다. 하루 강사료가 어마어마했다. 하루에 한 번에 모두 모아 온라인에 대한 모든 강의를 했다. 그것이 강사를 위한 것인지, 수강생을 위한 것인지 애매모호했으나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텍스트 읽기, 수업, 강의 그 영역을 가장 잘하는 아주 익숙한 삶을 살았고, 그 삶 속에 있었고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변화에 적응하는 여린 몸짓이라도 순응만이 정답이었다. 온라인 강의 장소를 찾아가는 초행길이라 찾기가 어려웠다. 전국에서 수강생이 왔다. 부산에서 강원도에서 부천에서 경상도에서 울산에서 달려온 수강생 거의 모두가 교수이거나 강사였다. S대 교수와 부인 l대 교수도 왔다. 부부가 나란히 앉아 수업을 들었다. 자신이 가장 나이가 많았다. 그 사실을 알자 가슴이 둥당거렸다. 후배인 J쌤은 이미 ‘새 시대’에 잘 적응한 단단한 모습으로 제1장 강의의 서두를 열었다.

오전 10시에서 1시, 오전 수업은 그대로 이해했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점심 후, 2시에서 5시 머리가 하얘졌다. 백지상태였다. 하루에 그 많은 기능을 툴을 몰아서 한다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이해조차 안 되는 생소한 새로운 용어들이 난무했다. 급기야 배가 부글거렸고 머리에서 식은땀이 났다. 특유의 성실함과 또 과한 수강료가 부글부글 끓는 배를 움켜쥐고 그 자리에 끝까지 머물게 했으나 이미 머리는 텅 빈 상태였다. 배 속에서 굉장한 전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급기야 5시부터 시작하는 실습시간을 뒤로하고 가장 먼저 집을 향해 강의실을 나섰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데리러 오라’고 그리곤 그 후로 집에 어찌 왔는지 암전이다. 

 

온 마음을 잡고 있던 온라인 강의가 새벽에 눈을 뜨게 했다

시계를 보니 4시다. 스스로가 보인다. 마음이 아프고 몸이 아프고 그래 생각이 아픈 시간을 가고 있음을 직감한다. 나이 듦, 낡아 감을 안다. 자연의 현상이고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진리이다. 비켜갈 수가 없다. 

온라인 강의 새로운 영역이고 두려움에 1학기를 접었다. 7월 다시 강의 요청이 오고 강의를 요청한 기관은 ‘온라인 강의할 수 있으시냐’고 세심하고 조심스레 묻고 전화와 문자를 보낸다. 감사하다. 감사한 일이다. 

교수님은 ‘할 수 있다’고 격려했고, 후배 K는 ‘다 갖춰진 분이니 이 고비를 넘겨야만 한다’고 마음을 보탰다. 아들은 마이크로소프트 2019를 깔아주고, 아들 같은 l전도사님은 온라인 하는 방법 툴을 알려줬다. 변화에 시작을 연 후배이자 세상 길잡이인 j쌤은 교육 콘텐츠 대표 입장에서 정보를 줬다. 

최고의 수훈자는 제자 EY이다. 무슨 정보든 말만 하면 바로 찾아 보내 주었다. 새벽이든 한밤중이든 낮이든 개의치 않았다. 언제나 ‘네! 선생님’ 답하고는 바로 답장이 왔다. 온종일 대기하고 있는 사람처럼 즉각 답이 왔다. EY이가 얼마나 마음을 쓰고 있는지 보였다. Zoom, Vllo, 온라인 랜선, 쌍방향 온라인까지 EY이가 찾아 보내준 모든 것으로 이제 겨우 눈을 떴다. 텍스트에 익숙한 사람임을 EY이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멀리 있는 C작가도 도움을 줬다. WY이도 ppt 녹화 영상을 보내주었다.

그리고 K 구는 정성을 다해 모든 선생님들에게 온라인 강의에 기초를 세울 수 있는 수강 기회를 제공했다. K구, 교육지원과의 구성원은 한 마음이 되어 강사들을 싸안았다. 하루에 숱한 기능을 엄청난 수강료를 주고도 하나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것을 K 구는 오로지 동영상 한 기능을 두 시간씩 두 번에 걸쳐 자세히 제공했다. 한 번은 이론으로 또 한 번은 실습으로. 덕분에 Vllo는 확실히 익혔고, 익힌 것을 기반으로 3분짜리 수업 소개 영상을 만들 수 있었다.

수업 소개 영상을 보내며 스스로 너무나 대견했다. 영상 번역을 하는 제자 EY 이는 3분 수업 소개 영상을 전문가답게 초단위로 나눠 분석 관찰해주었다. 이미 제출 상태로 고칠 수는 없었지만 대단히 유익한 지적이었다. 한 사람을 온라인 강단에 세우기 위한 무수한 노력이 하나로 결집되었다. 이 모두가 사랑이다.


Where there is a will, there is a way. 

살아온 나날 동안 그리고 아마도 남아있는, 살아갈 나날 동안 결코 이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듯하다. 늘 삶을 지켜가는 자신의 철학이다.

눈물이 잔잔히 고인다. 한 배우가 창공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는 생애 처음 패러글라이딩을 하며 시야에 들어오는 광경을 보며, 옆에서 하늘을 나는 선배 동료 배우가 창공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감동과 감격에 겨워 혀어--- 끝내 제대로 대답을 잇지 못하는 그를 보았다. 아니 그의 눈물을 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아니! 이게 뭐지!” 한 번도 제대로 여행을 다녀보지 않은 남자. 오로지 일로만, 한 길로만 달려온 남자. 무언가 자신을 위해서는 해보지 않은 남자. 그 한 남자, 그 배우가 보여주는 진실 진정 꾸미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이 마음을 울컥하게 했다.

그 모습에서 이 시간에 있기까지 많이 외로웠던 자신을 봤다. 부단한 노력을 했고 그리고 또다시 부단한 시간에 있는 자신을 봤다. 때론 다 놓고 싶었고, 때론 절대로 이렇게 존재할 수는 없다고 지난한 마음이 사투를 벌였던 시간이 자신에게 고스란히 다가왔다. 스스로 온라인 강의로 또다시 외로운 사투 속에 서있는 자신을 스스로 아프게 감싸 안았다. 

전공이고 평생 했으니 수업에 카리스마가 있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 소리에 여리고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마음이 가슴이 토로해내는 자신만이 아는, 자신만 알 뿐인 모든 소리를 다 가슴에 묻었다. 숨을 깊게 쉬며 참아 안았다. 지금까지 오직 영어 글 책 그 한 길로 오느라 그만큼 자신이 아팠던 숱한 이야기들은 결국 오로지 자신만이 알 수 있다는 격한 마음이 되어 모든 말을 삼켰다.

창공에서 배우가 흘린 눈물이 무엇인지 그 장면을 보며 그가 모든 지나온 삶을 다 말 안 해도 알 것 같았다. 느낄 수 있었고 볼 수 있었다. 감성의 사람이기에. 여린 사람이기에. 마음을 가장 중요시 아는 사람이기에. 자신도 한 길만을 보고 온 사람이기에. 배우로서 그가 한 길을 향해 오느라고 얼마나 부단한 노력을 했는지 알 수 있기에 볼 수 있기에 공감했기에 눈물이 났다


마음 추스름이 필요했다

세상이 변화에 순응하라고 따라오라고 끊임없이 쉬지 않고 강력히 요구했다. 심히 앓았다. 변화에 적응하려고. 누구도 모른다. 알 수가 없다. 해내야 한다는 마음만이 자신을 잡았다. 그것이 자신이라고 여겼다. 그래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변화를 인정하며 서가고 있다. 

급기야 그 마음, 상황에서 굳게 서라고 서야 한다고 최종적 용기와 힘을 준 것은 ja다. ja가 한 권의 책을 보냈다. 서너 시간 만에 다 읽었다. 7월 마지막 날이어서 좋았다. 나태주의 산문 <오늘도 네가 있어 마음속 꽃밭이다> 힘이 되었고 위안이었고 위로였다. 선배를 너무 잘 아는 처방이었다.

책! 책이었다. 공황장애에서도 헤쳐 나올 수 있었던 그 처방, 책이다. ja는 그 사실을 너무 잘 알았다. 읽었고 깨닫고 또다시 굳게 선다. ‘최고의 정점과 사막의 골짜기에서 있을 때’라도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8월 1일 이제 시작이다.

온라인 강의해낼 것이고, 잘 해낼 것이고 마음 보탬을 준 모두를 잊지 않을 것이다. 결코...

“잘하고 있어!” 스스로 자신을 격려한다. ㅎㅎ 그 말이 누구에겐가 듣고 싶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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