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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고푸른 Jul 31. 2022

믿을 수 없을 만큼 평범한 날들. 113

너는 아직도 그 노래를 부르고 있을까?

고등학교 때 김승규라는 친구가 있었다

기타를 잘 쳤고, 노래를 잘 불렀다

중저음의 편안한 목소리로 해바라기의 "내 마음의 보석상자"  정태춘의 "시인의 마을" 같은 노래들을 자주 불렀다

그 친구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언제나 평화로워지는 듯했다

대학을 진학하고 승규는 동성로 대구백화점 근처의 라이브 호프에서 아르바이트로 노래를 불렀다

가끔 동성로에 나갈 일이 있으면 승규가 노래하는 가게에서 맥주를 마시며 그의 노래를 들었다

김광석이 있던 시절의 동물원과 김종찬, 조덕배의 노래들을 주로 불렀다

군대를 가고 난 뒤, 대학시절에는 다시 승규를 만나지 못했다

입대를 하고 복학을 하는 시기가 엇갈리게 되면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3~4년을 볼 수 없게 되는데 핸드폰도 삐삐도 없던 시절이라 그렇게 소식이 끊겨버렸다


승규를 다시 보게 된 것은 10년쯤 뒤 회사를 다니고 있었을 때였다

친구들과 만나 팔공산 근처의 카페를 들렀는데 귀에 익은 노랫소리가 들러 무대를 돌아보니 승규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변진섭의 노래가 추가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해바라기와 정태춘, 김광석과 김현식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노래가 끝날 때를 기다려 인사를 하고 같이 차를 마셨다.

이런저런 근황을 나누고  다음 타임이 있어 가야 한다는 친구와 아쉬운 작별을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를 만나지 못했다


그를 만나지 못했어도 나는 안다

그는 아직도 기타를 메고 어두운 카페 한구석에 조용히 자리 잡고, 낮고 편안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나는 안다. 승규는 여전히 김광석과 동물원의 노래를,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의 노래를, 해바라기와 박학기의 노래를 부르고 있을 것이고 나는 어느 날 동성로를 걷다가 무심코 들어간 카페에서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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