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했으므로.
사랑했으므로
‘끝나버릴 것.’ 알면서도 한마디 건 낼 수 없었다.
그런 나를 ‘안쓰럽고 나약하다.’, ‘어리고 모자랐다.’고 표현한다면 가슴 아픈 일이다.
시들고야 말 꽃을 보고 안타까운 표정을 짓지 않는 것
그것은 분명 지금 만개한 꽃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만개(滿開)한 그대를 보았고
그런 그대를 나는 사랑했다.
결국 져 버릴 것은
그대가 아닌 내 생각 속에서만 핀 그대란 존재이므로
당신에게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마치 봄의 꽃술 은은한 향기처럼
가을 녘 선선한 바람에 흩날린 머릿결 그 아른거리는 감촉처럼
수많은 눈빛과 표현, 마음을 내뱉고 새기며
비단 같은 나의 세상 위로 오직 그대만을 수놓았음이다.
그러나 마지막 꽃잎에도 겨울은 오듯
사라지고 흐르고 흩날리며 그대는 사라졌다.
그런 사라진 그대라도 난 사랑했다.
그렇게 연하고 취약한 심장 안쪽 근육에 박힌 조각 같은 그대를 사랑했다.
무어냐 묻는다면 당신을 사랑했으므로.
왜냐고 묻는다면 그대를 사랑했으므로.
결국 사랑했기 때문에
미련이라던가. 멍청하다던가.
따분하다던가. 자질구래 하다는 말을
그대의 입으로 들을 수밖에 없을지도 몰랐지만
그래도 사랑해야만 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난 지금도 사랑하지 못한 아픔 속에서
죽어 버렸을 일이었다.
글을 쓰는 저는 매일 같이 해가 뜨고 지는 진리와 같은 거대한 삶의 의미와 씨름을 합니다.
성인과도 같은 위대하고 숭고한 삶이 아닐지라도 삶을 살아가는 존재, 즉 우리네 사람에게는 삶이란 늘 계속되는 것이었고 의미를 향한 싸움은 죽는 순간까지 끝나지 않는 것이겠지요.
이렇게 생각이 퇴적암처럼 쌓여가는 날이면 불현 듯 글을 쓰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는 일렁임 같은 것을 느낍니다.
바람이 불면 돌아가야만 하는 바람개비의 날개처럼 저의 손은 삶이란 바람을 맞이하고 펜을 집어 들며 빠르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대. 오늘 어떤 삶과 마주하고 계신가요?
글을 쓰다가 우연인 듯 필연인 듯 그대가 떠올랐습니다.
겹겹이 쌓인 퇴적암 같은 지상. 오래전 그대가 살았던 흔적이 화석처럼 남아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더러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흐릿해진 것들도 있었지만요. 어떤 것들은 만개(滿開)했던 꽃밭의 모양 그대로 간직한 채 추억이란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도 알 수 있었지요.
그 시간에 살던 저에게 수많은 시상과 가치를 떠올리게 해주었던 그대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피운 꽃밭이었습니다.
너무 어린 시절에 그대를 만났던 까닭이었을까요?
혹은 아무것도 없는 시절에 그대를 만났던 까닭에(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요.) 첫눈에 그대를 사랑한 순간 마지막이 올 것임을 직감했었습니다.
차마 입 밖으로는 꺼내지 못한 그 시절의 생각은 찬란하고 슬픈 빛을 머금은 빗방울이 되어 그대와 내가 함께 걷던 길에 내리고 있었던 사실을 그대는 아실까요?
아마 그대는 그런 나를 모르셨을 겁니다.
나는 무뚝뚝한 사람, 모든 생각을 말하기 두려워하는 사람. 내가 생각하는 치열한 것들을 당신이 알게 하고 싶진 않았고 더군다나 사랑이란 결코 강요할 수 없는 것이란 걸 알았으니까요.
그대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았던 날.
나는 당신을 보고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만개한 당신을 보며 미소를 지었지요. 그대가 없었다면 애초에 이렇게 아름다운 꽃들이 만개했을 리가 있었을까요? 어둠이 있기에 빛을 가늠할 수 있는 것처럼 그대란 꽃들이 내 가슴에 가득히 피었기에 곧 다가올 겨울이란 이별을 느낄 수 있는 것이겠습니다.
그대는 이런 나를 보며 미련이라 말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적은 시간일지라도 꽃이 피고 냇물이 흐르며 꿈결 같은 햇살이 내렸던 아름다운 세상을 경험한 저로서는 단숨에 찾아올 시린 계절을 감당하기는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대를 제가 ‘사랑이었다.’ 부르는 것 정도는 허락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사랑이라 말할 수 있기에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아름다웠던 그 시간들을 잊힘이 아닌 추억이란 말로 간직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