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시.
착시.
아, 그대 나를 향해 손짓하는 것 같아
단숨에 달려간 거리.
그대는 잠시 바람에 나부끼는 것뿐...
나를 부른 적도 나를 원한 적도 없었네.
그대와 나 먹고살 방법 하나 없을까요?
세상 어느 곳에서라도 뭐하나 붙잡고 살다 보면 미련한 재주라도 혹여 그대 밥이라도 굶기는 일이 있을까요?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신다면 우리 함께 떠나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대가 언젠가 베네치아의 풍경을 보여주며 참으로 아름답지 않으냐고 물으셨지요?
그래요. 이역만리 한적한 마을 어디쯤에 우리 몸 뉠 곳 하나 없을까요? 아무도 우리를 모르는 그런 곳에서 처음부터 시작한다고 해서 사람 사는 세상인데 죽으라는 법 있을까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산다 하더라도 우리는 매일 밤 마주 볼 수 있다면, 그 미련한 진실하나라면, 분명 우리는 서로를 향해 미소를 짓지 않을까요?
무엇인가 쫓기듯 사는 삶은 되려 자꾸만 시간을 갉아먹어 갔습니다. 시간을 갉아먹힌 만큼 우리는 더 바빠졌지요. 그 덕에 우리는 양복처럼 세련되어졌고 핸드폰처럼 똑똑해졌지만 가슴속에 쥐고 있던 무엇인가는 모래알처럼 서서히 잃어 간다는 것을 그대도 나도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렇더라도 잘못된 것은 없는 것이겠습니다. 정말로 잘못된 것은 없었지요. 그대와 나, 우리는 누구나처럼 살아가고 있을 뿐이니까요.
혹자의 말처럼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면 우리는 어른이 되었을 뿐이겠고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라는 말처럼 사연하나 더 생긴 것뿐이었지요.
맘껏 쓸 돈은 없었지만 행복했었습니다. 노력만 한다면 언젠가는 꿈꾸던 곳에 올라서서 밤새도록 술을 마실 여유도 생길 거라 믿었습니다. 이렇듯 저렇듯 크고 작은 문제들이 생기면 함께 있어주는 그대를 생각하며 적절히 견디며 살아갈 거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대 떠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댈 붙잡고 싶었지만 현실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진실과 누구라도 그렇게 산다는 생각이 떠올라 무엇인가 뱉으려 했던 입은 메말라 갔습니다. 그 순간 제 손은 길 잃은 강아지처럼 갈피를 못 잡고 낡은 옷깃만을 만지작거릴 뿐이었습니다.
그때 참으로 비참한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가 간직했던 이야기들이 시시콜콜한 것들일지도 모르겠다고 말입니다. 비처럼 흠뻑 적실 감동은 없었고 어깨에 묻은 눈송이처럼 잠시 시릴지라도 툭툭 털어버리면 그뿐인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그대는 결혼이라는 현실을 찾아 떠나신다 했습니다. 내가 가리고 있었던 외로움이라는 자리에는 저보다는 괜찮은 누군가를 세우겠지요. 가끔 남아있는 제 발자국들을 보고서 그 사람이 묻는다면 살짝 미소 짓고서 오래전에 알던 누군가라는 말로서 말끝을 흐리실 겁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우리 사이가 소원해진 것도 어쩌면 꽤나 오래된 이야기겠습니다. 그대가 지칠 때면 나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고 내가 지칠 때면 그대는 그대의 삶에 치중해야만 했지요.
그대는 아마도 내게서 꿈은 보았겠지만 비전은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 역시도 꿈을 파먹고 사는 사람이라 저를 표현할 뿐이지 비전 있는 사람이라 이야기할 수 없었으니까 말입니다.
나는 그대에게서 절 향한 마음은 보았지만 망설이는 생각도 보았습니다. 그대에게는 절 바라보는 눈동자도 있었지만 귀로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지고 있었겠지요.
그래요. 나는 모든 것들로부터 떠나자는 말하고 싶었습니다.
거추장스러운 생각과 현실, 거미줄 같은 관계와 전봇대처럼 늘어선 시선들로부터 도망가자고. 아무도 우릴 모르고 우리도 무엇도 모르는 곳에서 그저 절실하게 서로 의지하며 살지 않겠냐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우리만 생각하며 살자고.
그대가 보입니다.
나에게 손짓을 하시는군요. 아니요. 가만히 보니 바람에 잠시 흔들리는 그대입니다.
저를 부른 적도 손짓한 적도 없는 그대 셨습니다. 잠깐의 착각일 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