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밤
너의 침소 맡
별 하나와 향초 하나
은방울 꽃¹가지 놓은 채
포근한 꿈 달달한 생각
아늑한 고요의 샘
꿀처럼 흐르는 노래
포트리나²의 숨결 따라
보드라운 홀씨 머물 때
고이 너는 잠들고
연주되는 달의 바람
흔들 의자 작은 떨림
모든 것이 반짝이는 시간
1) 은방울 꽃: lily of the valley 혹은 May lily라고 하며 성모 마리아의 꽃이라고 불리며 청아함의 상징이다. 꽃말: 반드시 행복해질 겁니다.
2) 포르투나: 운명과 행운의 여신. 이 여신의 표시인 키(舵)는 인간 사회의 운명을 조종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녀의 예언은 탁선(託宣)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리스의 신화에 나오는 티케와 같은 신으로 생각되고 있다. 이 여신은 원래 생산과 풍요를 가져다주는 여신으로 믿고 존경되어 왔다.
그대, 오늘은 오랜만에 늦잠을 잔 날이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부스스한 눈가 사이로 푸른 새벽빛이 보였어야 했지만 우중충한 하늘과 빗소리가 늦은 아침을 대신하고 있군요.
늦은 저녁 창가를 맴돌던 바람에서 가을향기를 느꼈던 까닭일까요? 숨쉬기 어려울 만큼 더웠던 올 여름의 열대야가 사라진 뒤로 묻어오는 쌀쌀한 감성에 뭉클거리는 무엇인가를 느꼈기 때문일까요?
이런저런 감성에 젖은 채 쉽사리 잠들지 못한 밤이었습니다. 그렇게 실눈 같은 밤을 보내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잠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대의 지난밤은 안녕하셨나요?
그대는 언젠가 제게 가을이 좋다 하셨지요? 저도 그대는 가을과 어울리는 사람이라 말하며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잎사귀들은 화려하게 물들고 열매는 결실을 맺는 것이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약간의 쌀쌀함이 다소 그리운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하셨습니다.
그대의 말처럼 저 역시도 날이 추워질수록 좋아하는 것들이 많아지게 됩니다.
갈수록 빨라지는 시간 앞에 서있는 오늘이라면 아늑한 아랫목의 따스함과 새하얀 눈송이도 그리 멀지 않은 이야기겠지요.
그리고 밤이 길어지므로 저는 조금 더 글을 쓸 수 있겠습니다.
언제고 생각해보면 밤이 되어서야만 떠오르는 것들이 많았지요. 그 까닭은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낮에는 너무 많이 볼 수 있었기에 오히려 볼 수 없었던 것들이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습니다. 곁에 두고서도 먼 길을 보느라 눈길 주지 못했던 것들.
낮은 늘 사람을 진취적으로 만들어 앞으로 나아가도록 합니다만 밤은 언제나 제자리에 서서 곁에 있는 것들을 살피도록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밤이 길어질수록 더 깊은 생각에 잠겼고 그것이 저를 지난 밤동안 잠들지 못하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나긴 밤 동안 ‘무엇을 생각하였나?’ 물으신다면 '행복'이었다 말하면 충분한 답이 될까요?
지난밤 은방울꽃의 꽃말처럼 반드시 행복해지라는 동화 같은 이야기들을 밤하늘에 수놓았었습니다.
물론 그것 뿐만은 아니었습니다. 오늘 스치던 절망스러운 생각도 있었습니다. 또 뒷골목의 비릿한 냄새 같은 걱정들도 있었고 한적한 가슴에 빗방울처럼 내리는 슬픔들도 있었지요.
다만 알고 보면 그 모든 절망의 기복이 결국 행복을 위한 것들임을 깨달아 갑니다. 그런 것들을 견뎌냈을 때야말로 그 정도의 바람에는 흔들리지 않을 나무로 자라난 것이겠지요.
그렇기에 매일 밤 제가 걷는 아픔들이란 땅에서 수확되어지는 것은 슬픔이나 눈물 같은 것들이 아니라 행복이라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대 오늘은 어떤 밤을 보내고 계신가요?
가을 같은 그대에게 길어진 밤은 단풍 같은 아름다운 빛깔로 채워지길 바랍니다. 힘들었던 하루가 한 주가 저물어 갈 때마다 힘든 만큼 자라는 그대의 성장을 봅니다.
그러므로 그대, 오늘은 편히 잠드셔도 좋습니다. 혹 생각에 잠겨 기나긴 밤을 보내신다 하더라도 그대는 걱정 마세요. 고난과 역경조차도 모든 것이 그대의 자람을 위한 것이었음을 알아 주시길 바랍니다. 저 역시 행복해질 그대를 위해 기도하는 밤을 보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