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살도록 하소서
내 안에 살도록 하소서
그대 내 안에 살도록 하소서
양지 바른 앞뜰과 아담한 집
사랑하기 좋을 온도와 바람
그대만이 이유가 될 풍경이니
그대만이 내 안에 살도록 하소서
오랜 시간 돌아올 그대일지라도
꽃은 씨앗 되어 더욱 가득해지고
나무는 자라 아늑한 자리를 줄지어니
그대만이 내 안에 살도록 하소서
앞마당에 물들어가는 감나무를 보며 은은한 국화차를 마시는 오후였습니다.
이럴 때면 손이 많이 가는 낡은 주택이지만 마당을 볼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아파트보단 땅에 가깝게 사는 일이 로맨틱함을 느낍니다.
그래요. 저에게는 그런 낭만들이 있습니다.
오늘같이 한적한 가을밤이 찾아오면 휴대폰과 TV를 켜는 일보다 라디오를 듣는 일이 좋았지요.
라디오 DJ의 목소리를 조금이나마 깨끗이 들으려 주파수를 거북이처럼 맞춰갈 때의 묘한 쾌감, 적적한 창밖 하늘을 보면서 고이 적어 내린 사연을 보낸 뒤 청취하는 기대와 설렘. 그것은 마치 그대에게 살포시 걸음을 떼며 다가가는 나의 마음들과 닮아 있었습니다.
E-mail과 전화를 주고받는 일보다 손 편지를 주고받는 일은 더 짙은 감동과 설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컴퓨터나 sns의 정제된 글씨체로는 결코 알 수 없을 것들을 편지는 담고 있었으니까요. 당신의 손 글씨에는 무덤덤하지만 섬세한 당신의 성격들이 묻어났습니다.
그렇게 당신께서 손수 적어보 낸 담담한 몇 마디는 온갖 수식어로 꾸민 문장들보다 당신의 진심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지요. 참으로 섬세했던 그대의 성격처럼 정성스레 쓰여진 글씨들이 내 앞으로 옹기종기 모여드는 일은 모닥불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를 상상하게 했습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곁에서 걷고 있는 혹은 나를 바라보며 다정한 눈길을 보내는 그대를 볼 때면 말이지요. 그리 생각해보니 가끔보다는 더 자주였던 것 같기도 합니다.
마당 딸린 아담한 집하나 마련할 수 있다면 그곳에 꽃들을 가득 심고 크게 자라는 나무 한그루를 심어 그대와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언제고 그곳에서 지낼 수 없는 현실이겠습니다만 그래도 이따금 삶에 지치고 힘겨움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면 우리 그곳에서 서로 보듬어주며 치유의 시간을 갖도록 하자고 말입니다.
그런 나의 바람은 꿈이라 표현할 만큼 멀고 현실을 팍팍하기만 합니다만 그래도 아무리 힘겹더라도 나는 늘 당신과 이뤄갈 낭만적인 세상을 잃기는 싫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수많은 이유 중 가장 중요한 이유들의 대부분이 당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니까요.
태풍 속에서 길 잃은 양처럼 살아갈지라도 언제고 그대만은 평온한 내 안에서 살도록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