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시간.
회상
숨결이 날아가는
길게 뻗은 다리 위
나의 자리는 난간
아름다운 바람사이
별빛 같은 것들이 내린다
그래요.
지금 하늘이 몰고 오는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모든 것들은 순식간에 바꿔 버리겠지요?
누렇게 익은 논밭을 본 적도 없는데 어느덧 가을은 부쩍 차가워진 얼굴로 옷깃을 추스르게 만들 겁니다.
그렇게 옷깃을 여미며 돌아본 산등성이에는 모닥불 같은 붉음이 더해지다 못해 감춰왔던 황홀한 절정까지도 내보일 것이겠죠. 그와 동시에 영변 약산 진달래꽃이라도 되는 듯 지르밟고 가시라며 잎사귀라도 사방에 뿌리면 단풍은 찬바람에 휘휘 돌다가 저의 발끝마다 맺힐 겁니다.
이처럼 변해간다는 것이 설렜던 혹은 아름다웠던 시간들을 그대는 기억하시나요?
빠른 시간들조차도 거북이 걸음처럼 느려 조금 더 내일이 오기를 기다렸던 시간들.
그래요. 모든 것이 호기심이었던 그대는, 배우고 싶은 것이 많다던 그대는 분명 그런 시간들이 저보다는 많지 않았을까 짐작하고는 했습니다.
저는 살다 보니... 아니요. 어쩌면 산다는 걸 잊다 보니 말입니다. 설렘과는 다소 동떨어진 시간을 창살처럼 늘어놓은 채 갑갑하게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날에는 꼭 창밖을 보면 지워져 가는 그믐달이 걸려 있었습니다. 점점 희미해져 가는 지난날의 시간처럼 말이죠. 그리고 곧 그리움이 파도처럼 밀려와 눈물샘 밑자리까지 차오르곤 했었습니다.
그토록 그리운 그때가 언제냐 물으신다면 글쎄요. 정확히 어느 시기를 집어낼 수 없겠습니다만...
치열하게 모든 것을 희망할 수 있었던 시절이라 말하면 그대는 이해하실까요?
무엇을 꿈이라 부르던 사랑이라 부르던 혹은 소망이라 부르던 죄가 되지 않았던 시절.
그때는 모든 것이 변하길 간절히 바라고는 했었지요. 내가 변해야만 그리고 시간이 흘러야만 희망하던 모든 것들이 있는 장소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그러나 막상 시간이 흘러 어렴풋이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을 느끼던 시점부터는 많은 것들이 할 수 없는 것, 버려야 하는 것, 책임져야만 하는 것으로 변했습니다. 제가 그리 당차고 용기 있는 사람은 못되었기에 자연스레 순리라는 미명 아래 흘러가려 했었지요.
그대. 그대에게는 어떤 시간들이 아름답고 설레었나요?
요즘 들어서는 그런 생각들이 머리를 습격했습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자꾸 걸어가는데 계속 같은 길만 반복되는 듯한 느낌. 제자리는 아닐까 하는 두려움 같은 것들이 말이지요. 이대로 반복되다 모든 것이 끝나 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들이 막을 수 없는 비처럼 내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괜찮습니다. 그대.
제가 삶을 그렇게 바라 봤기에 그런 식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이미 지난 세월 동안 깨달았기에.
매일 같은 길, 같은 곳으로 출근하는 사람의 눈에 보이는 익숙한 풍경처럼 삶이란 것도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떠나는 순간 다시 한 번 심장은 고동칠 겁니다. 여행처럼 말이지요. 새로운 것들을 향한 동경이자 낭만으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