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다.
품다.
살다 보면 다들 하나씩은 품게 되잖아? 무엇이라 이름 붙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마다의 그것들을 말이야.
무릇 파도에 휩쓸려가는 모래알처럼 보일지라도 결국 파도가 지나간 자리, 여전히 남아있는 백사장과도 같은 것. 사람들은 세월이란 파도에 휩쓸려도 결국 끝끝내 남아버린 것들을 하나씩은 품고 있었던 것 같아.
암탉이 품는 알처럼 무엇인가를 소중히 품어봤던 사람이라면 알 거야.
사람들의 얼굴에 왜 오후 8시 같은 땅거미가 져있는지를.
왜 우리들의 얼굴 위로 장마전선 따라 낀 구름 같은 것이 껴있는지. 왜 그런 회색빛 스산함이 물들어 있는지를 말이야.
그런 콘크리트 빛 사람들을 마주칠 때마다 난 잠시 멈춰 서서 추모곡을 가슴에 새기고는 했어.
무엇을 위한 추모냐고?
사람이 낳는 것이 꼭 아이만은 아니었으니까. 마음이 낳은 것들도 자식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지.
그들은 이 길까지 걸어 오면서 품어왔던 것들을 자의든 타의든 버리면서 와야만 했을 거야.
난 알 수 있었지.
내 얼굴에도 그들처럼 먹구름이 머물었던 적이 있었거든. 금세 비를 쏟아낼 것만 같은 표정을 지었던 적이 있었기에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지.
뺏기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날개 짓에도 결국 잃고야 말았을 것들. 그것들을 위해서 난 추모를 했던 거야.
시대란 이름이 아픈 자들, 오늘이란 시간이 범람한 강처럼 밀려오는 사람들.
알고 있어. 오늘은 분명 감사할만한 시간이었고 언제라도 희망은 있다는 것쯤은.
다만 그런 긍정적인 생각들이 사랑하지 않는 결혼상대를 만나는 일처럼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가슴으로는 퍽퍽한 닭가슴살을 삼키는 일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
지금 시대란 거리를 걷는 사람들이라면 분명 저마다 무엇인가를 버리며 살아왔을 거야.
그런 사정은 가진 자든 부랑자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 왜냐하면 모두의 얼굴에서 저물어 가는 하루를 발견했거든.
아이러니하지?
누구나 버리고 싶지 않아서 살아왔던 세상인데. 잃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생각할 수 있는 뇌가 진화했고 뺏기지 않으려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만든 것일 텐데. 그렇게 지키고 싶어 하는 수 십억의 의지가 얽힌 세상은 결코 버릴 수 없을 것이라 여긴 것들을 버리게 만들고야 말았어.
그대는 오늘도 무엇인가를 버리며 살고 있겠지?
생이란 긴 여행을 떠나야만 하는 그대이기에 무거운 짐들은 버릴 수밖에 없었을 거야.
휩쓸려가지 않고 남은 것들은 가장 소중한 것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가장 무거웠기에 남겨진 것들이기도 했으니까. 무거운 짐은 긴 여행길에는 도움이 되질 않는 법이었지.
그대. 박범신은 말해.
소유하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변치 않는 마음이 행복이라고. 그대는 놓아줬던 것들 때문에 너무 많이 슬퍼하지는 않길 바랄게. 품으려고 했었던 마음이 행복이었으니까. 품었던 것이 아닌 무엇인가를 품겠다는 마음 그 자체가 나는 행복이자 희망이라고 말하는 거야.
그대. 오늘도 나는 무엇인가를 버리며 나아가고 있어.
계속 무거운 짐을 메고 걷다가는 끈기 없는 나는 곧 멈춰 서리란 걸 알았으니까. 지금은 멈출 때가 아니었거든.
나도 그것이 가슴 아픈 일이지만 참고 있는 거야. 그대 역시도 아직은 멈출 수 없는 사람이라면 나처럼 생각해보길 권장해.
품을 수 있다는 부동심만 있다면 그대는 잃은 것이 아니라 잠시 그곳에 놓고 온 것이라고 말이지.
비가 오는 날에 우산을 꺼내는 일처럼 그것들을 되찾아올 때를 잠시 기다리는 것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