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이 그대를 위협할 때.
쾌락이 그대를 위협할 때.
욕심을 버리는 만큼 힘든 일이 있을까요?
존재는 태생부터 살아감을 전제로 하기에 살아감에 있어서 생존이라는 가장 근본적이고도 강력한 욕심을 쥐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선사시대가 아닌 이상에야 생존이란 다양한 사회적 욕망을 포함하는 것이겠습니다.
나는 그것이 존귀한 본능이라 여기기도 했습니다만 강력한 유혹과도 같다는 욕심의 이중성을 생각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살아가면서 욕심을 냈던 이유는 행복의 순간을 만나기 위해서라 짐작합니다.
나는 그것을 아름다운 이유라 여겼습니다만 또 한 편으로는 쾌락과 행복의 불분명한 경계선 때문에 고생했던 기억도 떠올랐습니다.
쾌락은 어디까지고 행복은 어디까지일까요?
둘은 나뉠 수 있는 것일까요? 혹은 서로 땔 수 없이 상충하는 부분이 있는 것일까요? 쾌락을 나쁘다 할 수 있는 걸까요? 혹은 쾌락이 행복을 대변할 수 있는 것일까요?
대답할 수 없는 질문지가 늘수록 더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훗날 저의 답변은 쾌락은 순간적이고 양심의 가치와는 무관하며 중독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도의적이고 누가 봐도 문제가 없는 것이라면 우리는 쾌락이라 표현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은연중에 느끼게 되었습니다. 쾌락이란 말 대신 보람이나 즐거움, 유쾌함 등으로 표현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쾌락은 욕망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욕망은 도덕이나 법, 인간의 기본권과는 무관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쾌락의 원인인 욕망이 그 위험성을 내포되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즐거움만 누리며 살 수 없던 이유는 '정의'라는 것이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강도질을 해서 뺏은 돈이, 식민사관을 통한 제국의 정당화가, 심지어는 일방적인 사랑의 표출이 타인에게는 괴로움을 불러일으킨다는 것까지도 욕망에서 비롯된 일이었고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만.
양보는 사치이며 화를 내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해 보복운전을 했고 권력욕에 충실한 포퓰리즘은 성황을 이루며 가난이 죄가 되는 세상에 물질욕은 보다 중요한 것이 되는...
어느새 그런 무서운 세상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나는 그런 것들로부터 물들지 않았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요? 언제라도 욕망으로부터 자유롭다 외칠 수 있는 사람일까요?
과거를 반성하며 생각에 잠겨있을 때 간디의 묘비에는 7가지의 죄악이 떠올랐습니다. 그중에는 양심 없는 쾌락이 있었지요. 저는 그리고 우리는 괜찮은 걸까요?
힘겹기는 하지만 우리는 아직 잘 이겨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올바르지 않은 것을 규찬 하며 차별하는 것을 보고 바뀌어야 된다 말하고 부도덕적인 사람이 되지 말라 가르칠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쾌락사회로부터 이겨낼 희망이 없었다면 이미 거리는 포화가 터지는 무법천지였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쾌락은 일시적이기에 중독됩니다. 설탕이 달콤함에 계속 숟가락을 드는 일처럼 휘발성이 강하고 중독적이지요. 다만 행복은 끝끝내 남는 것입니다. 아직까지도 어린 시절 엄마의 품이 생각나는 일처럼 행복이라는 것은 가슴에 남는 것이지요.
욕심은 고뇌를 낳으며 고뇌는 번뇌라 불리고 왜 그것을 잊기 위해 무념무상이라는 경지를 공부하는지도 얼핏 느끼게 되었습니다.
고뇌하는 인간에게는 세상은 불협화음으로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의지대로 뜻대로 될 리가 없었으니까 말입니다. 적어도 우리가 사는 곳은, 사회란 곳은 수많은 의지가 뒤얽혀 있는 곳이었지요.
그런 세상은 사람이 사람으로서 도리를 다하고 살기 어렵도록 만드는 일임을 목격합니다.
목적을 위해서는 조금 더 욕심을 내야 했고 질주하는 차처럼 위협적으로 나아갈지라도 그것은 살아가기 위해서라는 말로 정당방위가 되는 건지도 몰랐지요.
나는 오늘 질주하지 않는 차가 되리라 생각하며 조심스레 나아가려 합니다. 양심이 남아있는 가슴을 움켜쥘 수 있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하면서 말입니다.
자꾸만 행복이 아닌 쾌락이, 서툰 욕망이, 못된 욕심이 그대를 위협할 때 가슴을 쥐고 물어보라 권하겠습니다.
이미 우리에게는 충분한 양심의 씨앗이, 올바름에 대한 생각이 심어져 있다 믿으므로.
우리는 쾌락의 욕심이 아닌 행복의 길로 갈 수 있는 용기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어쩌면 그대도 나처럼 수많은 고민에 답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