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1)

첫 월급날, 한의원 매출표를 보고 한숨이 쉬어진 이유

by 써니싸이드업

드디어 월급날, 로컬 한의원에 와서 받은 첫 월급은 몇 달간 백수로 여기저기 구멍 났던 내 통장을 누덕누덕 기워주는 기분이었다. 다음 달에는 보강 공사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라는 안도감도 들었다. 원장님 배려 덕에 간호조무사 선생님들과 가진 월말 점심 회식에서는 끝내주게 배를 채웠다. 역시 남이 사주는 밥이 최고다. 이런 평화가 쭉 이어지면 좋으련만, 어쩐지 마음속 한구석은 내내 편치 않았다.


오후 진료가 시작되자마자 한의원은 금세 환자들로 꽉 찼다. 베드가 모자라 대기하는 환자들이 불만을 토로했다.

"도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 거예요?", "이렇게 사람이 많으면 예약을 받아야 하는 거 아녜요?"

기다리는 환자들에게는 죄송했지만, 한편으로는 '한의원 운영하려면 매일 이래야 정상이지.' 싶어서 찜찜한 미소가 지어졌다. 본원에서 제공하는 물리치료와 침치료는 보통 50~60분 정도 소요되는데, 환자가 한 번에 몰리면 베드가 부족하니 늦게 온 환자는 대기석에서 최소 30분 정도를 기다려야 했다. 스태프들이 기다림에 텅빈 환자들의 눈동자를 보며 "죄송해요,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바로 해드릴게요!"와 같은 서비스 멘트 메들리를 애교섞인 목소리로 욀 수 밖에 없었다.

매일 환자가 이렇게 기다리면 예약제라도 도입하련만, 환자가 없을 때는 한의원에 잔잔하게 깔린 근본 없는 피아노 버전 케이팝만이 흐를 뿐이었다. 그러니 평소처럼 한적한 한의원을 예상했던 환자들이 바글대는 현장을 보고 당황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언니, 원장은 바빠야 해요. 여유로운 순간 마음은 공허해져요." 개원의 친구가 한 말도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나름 바쁜 오후를 보내고 마감 후 월말 결산을 확인한 순간, 차트에 찍힌 숫자에 숨이 턱 막혔다.

환자 수는 저번 달과 비슷한데 매출 차이가 생각보다 커서 손가락으로 새로고침 탭만 냅다 눌러댔다.

젠장, 한약 때문이구나.


"한약보다는 차라리 운동을 하시는 게 더 좋을 듯한데요." 주변의 권유에 탐탁지 않은 맘으로 한약을 지으러 방문했던 환자들을 돌려보냈던 일, 상담비 없이 무료로 식단 관리와 운동 티칭까지 했던 과거의 뻘짓이 주마등처럼 펼쳐지니 속이 쓰려왔다.

'개념 있는 한의사' 코스프레를 했던 게 결국 한의원 운영을 고려하지 않은 트롤짓이었음을 알아버린 순간이었다. 직원들 월급, 건물 관리비, 기타 부대비용을 생각하니, 월급을 받는 게 미안했다.


문득 회사원 시절, 23살 풋내기였던 나를 앉혀두고 "직원은 월급의 3배 이상을 회사에 벌어줘야 한다"라고 일장연설을 늘어놓으시던 사장님이 떠올랐다.

내가 취업 첫 달에 '적응'이라는 면목으로 안일하게 굴었구나, 내가 너무 대학병원 안에서 곱게 자랐구나 싶어서 퇴근하는 버스 안에서 속이 답답했다.

나름 매출 관리를 한다고 매주 아침 전략 회의를 열어 다른 과 전공의들이 혀를 내두르게 했던 그때도, '우리 과가 좀 유별난가?' 하고 말았지, 현실은 생각보다 차가워서 일개 한의원에서도 스태프들과 매주 전략 회의를 열어야 하는 건가 싶었다. 3년 내내 매출 분석해 개선책을 세워 실행했던 그 모든 시간이 무색할 정도였다. '나 무능한가?' 신선한 충격에 거울없이도 동공이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응... 나 XSFX 인간 맞네.^^


바삭대는 멘탈에 동기 단체 카톡방을 열어 우는소리를 냈다. "내가 월급을 받을 자격이 있냐! 나 괜찮은 거 맞냐?!"

뼈 때리는 조언만 던져줄 것 같던 개원의 친구가 차분하게 답했다."한약이요, 한약."

그걸 누가 모르냐고.

"내가 초짜 바지 원장이긴 한데, 그간 기록들을 보면 재진 환자가 한약을 다시 먹겠다는 비율이 현저히 적거든? 심지어 다이어트 약은 약국에서 품절된 핫템을 나한테 찾더라고. 탕약으로 짓기는 싫고 연조엑스제로 저렴하게 해달래. 대체 우리한테 승산이 있겠냐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삼신할매로 통하는 한의원은 진료받으려면 티켓팅해야 한다던데… 내가 용렬해서 한약 처방이 저조한 거지?"

"아니, 뭘 그렇게 이야기해? 지금 안 그런 한의원이 어디 있어?" 내 하소연에 몇몇은 되려 버럭 대꾸하더니, 잠시 침묵이 흘렀다.

추나 후 아픈 손가락을 부여잡고 '한의사, 언제까지 해야 하나' 싶어서 어제는 우울했는데, 오늘은 또 다른 의미로 마음이 가라앉는다. 돈을 벌려면 창업이 답인 걸 머리로는 알아도, 월급 받는 삶이 확실히 머리가 덜 아픈걸. 저조한 매출이 눈에 보이니 이가 달달 떨려서 새로 오픈하는 한의사들의 희비가 엇갈리는 현실은 당분간은 외면하고 싶다.


그래도 근 한 달 내내 배울 점이 가득했던 건 감사한 일이다.

환자와의 좋은 라포가 꾸준한 환자 방문으로 이어지는 걸 보며 원장님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홍보와 담쌓은 한의원에 초진 환자가 오는 걸 보면서는 역시 지인 소개와 한의원 입지의 중요성 역시 별표 다섯 개였다. 함께 일하는 간호조무사 선생님들은 모난데 없이 일도 잘하셔서 '원장님은 복도 많으시네'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다음 달엔 더 잘하겠습니다." 자진 납세하는 마음으로 정리한 매출 분석표와 함께 선톡을 원장님에게 보냈다.

"괜찮아요, 저도 처음 개원했을 때 비급여 처방은 참 어렵더라고요." 원장님의 답장에 마음이 더 싱숭생숭해졌다. 마음이 불건강해서 그런지 원장님의 격려가 되려 무겁게 느껴졌다. 그래서 약은 어떻게 판매하셨는데요? 대놓고 묻고만 싶었다.


추석이 한 달 남았으니, 9월 매출을 끌어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비급여 약물 홍보물을 중장년층들이 보기 쉽도록 제작하여 환자의 동선을 고려해 한의원 곳곳에 부착했다.


'세상 사람들! 여기 경옥고도 있고, 공진단도 있어요! 패키지 봐봐요! 기깔나잖아! 이걸 보고도 그냥 간다고?' 홍보물 폰트만 봐도 세상 시끄러웠다. 접수대, 원장실, 상담 책상 위, 정수기 옆에 부착된 홍보물을 여러 각도에서 빤히 바라보니, 간호조무사 선생님들이 "원장님 괜찮아요. 예뻐요." 하며 나를 짠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때, 결제를 하던 환자 한 분이 내 시선을 따라 홍보물로 눈을 돌리시더니, 홀린 듯 말씀하셨다.


"경옥고 스틱 2박스요…"


그... 그라췌!!!!


매출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을 심도 있게 고민해 봐야겠다.

"네 한의원도 아닌데 좀 즐겨봐, 이제 한 달이다." 평소 내 성정을 아는 동기들의 말에 다행이다 싶다가도, 낭만은 잠시 접어두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열두 달 중 이제 한 달인걸. 게임을 시작했을 뿐인걸. 소싯적에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 공략집을 만들어 업로드했던 사람 짬이 있지. 공쥬 키우듯 나를 잘 키워야겠다.

매출의 압박과 환자를 위한 진료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한데 모여서 오늘도 고민한다.


한의사,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