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예민한 사람이 된 이유1 - 아빠의 장례식
중학교 2학년이었던 2000년 11월 19일.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내가 유난히 생생하게 남아있는 기억은 온통 아빠와 관련된 것들이다.
그리고 그날도 유달리 나에게 액자처럼 선명하게 남아있는 기억.
그날, 아빠가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오랜시간 동안 중환자실을 지키던 아빠는 그날도 어느때와 같이 똑같은 모습이었는데 갑자기 어떤 의사가 아빠가 사망했다고 했다.
나는 너무 의아했다.
아빠는 중환자실에 누워있던 평소랑 똑같았고, 맥박도 그 표시들도 여느때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통보를 받고 몇몇 의료진들이 우리를 안쓰럽게 보기 시작했고,
엄마와 나는 중환자실 옆에 작게 딸려있는 가족대기실에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늘 옆에 계시던 분들과 작게크게 잔잔한 대화를 나누었었는데 그날따라 분위기가 너무 조용했다.
가족대기실의 다른 분들은 마치 미래의 자신 모습이라도 보는듯양 숙연한 표정으로 엄마와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 분위기가 너무 싫었다.
다들 우리 눈치를 보고 있음이 느껴졌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공간 자체가 느껴지는 무거움이 온 몸으로 느껴졌다.
나는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장례식장에서 난 이상하게 슬프지 않았다.
엄마는 분주했고, 챙길게 너무 많아보였는데 중학교 2학년인 나는 무엇을 해야할 지 몰랐다.
엄마인가 할머니인가 어른 중 한 분이 집에가서 아빠 증명사진을 가져오라고 했다.
장례식 영정사진으로 쓸 사진이 필요하다고 했다.
부랴부랴 집에가서 엄마가 말한 서랍을 뒤져보니 아빠 증명사진이 두가지가 나왔다.
반팔을 입고있는 사진과 외투를 입고있는 사진
나는 둘 중에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몰랐다. 아무도 나에게 무슨 사진을 가져오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그저 난 짧은 생각에 반팔을 입고있는 아빠사진이 더 나아보였고 그걸 그대로 장례식장으로 들고갔었는데
어른들이 장례식 사진으로 쓰기엔 아빠가 입은 옷이 너무 추워보인다고 뭐라고 하셨다. 11월이었다.
장례식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형편이 좋지 않았던 우리집은 장례식장이 3칸이 함께 있는 곳이었고 조문객들은 그곳에서 인사만 하고 식사는 다른 곳에가서 했었던 것 같다.
나는 그 분위기도 이상했다.
같은 공간에 다른 장례식이 3건이나 함께 이루어지고 있었다.
우리만의 슬픔을 표현하기엔 옆 칸의 다른 분들이 신경이 쓰였다.
장례식 3일 내내 어른들은 자꾸 나에게 왜 울지 않냐고 물었다.
부모를 잃은 자식은 장례식장에서 펑펑 울어야만 한다라는 법이라도 있었을까
무표정하게, 그냥 무던하게 돌아다니는 나를보고 몇몇 어른들이 수근거리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장례식이 끝나고 아빠를 묻을 장지에 갔다.
땅이 깊게 파여져 있었고 그 속에 아빠의 관이 들어갔다.
장례를 진행하는 분들 중 한분이 말했다. 가족들이 나와서 아빠 무덤에 흙을 덮으라고
그때까지 난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저 그냥 삽을 들고 흙 조금을 퍼서 던지는 행위라 생각했다.
그런데 삽에 있는 흙을 던지면서 갑자기 폭풍과 같은 눈물이났다.
그 순간이 아마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걸 여실히 느꼈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더이상 우리 집에 아빠는 없었다. 중환자실의 아빠도 없었다.
그리고 아빠가 이제 영영 없음이 온 몸으로 느껴졌다.
그 순간 정말 꺼이꺼이 울었던 것 같다.
3일간 울지 못했던 걸 마치 토해내기라도 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