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고생이 하고 싶은 네 명, 함께 백패킹 트레킹을 떠나다!
2021년 6월 22일 ~ 6월 23일
1박 2일 남해바래길 트레킹 코스
15번 구두산 목장길
14번 이순신호국길
12번 바다노을길
전 날 밤, 미리 실내에서 텐트를 쳐봤다. 물론 이 모든 것은 팀원 한 명의 것이라 그가 맡아서 설치했다. 아래 주황색 매트는 다른 사람이 우리 팀이 안쓰럽다면서 빌려준 것이다. 백패커인 우리 팀은 마냥 즐겁기만 했다. 주변에선 어떻게 노숙을 할 거냐고 걱정 어린 눈빛을 보냈지만, 아무렴 뭐 어때?
이것저것 짐을 꾸렸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물과 간식들! 그리고 장비가 없었던 세 명은 이불 등 공용 짐을 나눠 가졌다. 전문 장비가 없으면 대충 가지 뭐- 라는 허접한 마인드(?)와 어리숙함을 안고.
쿨토시, 우비, 모자, 얼음 등도 빼먹지 않았다.
도보 여행에서 가장 유용했던 건 역시 쿨토시였다!
다음 날 아침, 배낭 아래에 나머지 짐을 여몄다. 원래는 전문 백패킹 가방이 아니라서 그런 용도가 아니지만, 가방걸이랑 짐 끈을 연결해서 고정할 수 있었다. 백패커용 가방도 대여하고 싶었지만 남해엔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아쉬웠지만 그런대로 분위기가 나서 좋았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하면 되니깐(??)
우리는 삼동면 꽃내에서 시작했다. 여기서 꽤 기다려서 마을버스를 타고 남해터미널에 도착했다.
남해 버스는 좀 어려울 수 있는데, '남해군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여객선 -> 농어촌 버스 시간표로 확인하면 된다. 환승이 안 되어서 카드는 한 번만 찍고 타면 된다.
남해 버스 시간표
https://www.namhae.go.kr/tour/00012/00934/00377.web
도착지는 설천면 행정복지센터 정류장.
가는 도중에 여긴가 싶어 기사님께 여쭤보니
지났다고 하길래 부랴부랴 내렸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설천면의 첫인상은 조용하고, 인적이 드물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삼동면도 시골이라고 생각했는데, 설천면으로 넘어오니 그곳이 번화가였구나 싶었다. 그만큼 마을이 정말 조용하다. 사람도 정~~~~ 말 없다. 무서울 정도로.
오자마자 인근 식당에 들어갔다. 백반 가격이 8천 원이었는데 반찬 하나하나 다 맛있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본격적인 도보 여행 시작.
초등학교 라인을 따라 걸으면 본격적인 남해바래길 코스가 나왔다. 곳곳에 안내 표지판과 표식이 있어서 찾기는 어렵지 않다. 다만 카카오맵이나 지도에 나오지 않아서 '남해바래길' 어플을 이용해야 한다. 도보 여행을 하면서 카카오맵과 남해바래길 앱을 가장 많이 썼다. 지도가 없으면 찾기가 어렵다.
이제부터 진짜 도보여행 시작.
우리가 참고 했던 어플.
시작부터 언덕이 있었다. 가방을 메고 걷는 게 쉽지는 않지만 꼭 완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나는 남들보다 저질 체력이지만 어릴 때부터 국토대장정이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은 목표가 있었다. 왜 그런지는 전혀 모르겠다. 그냥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생 때도 그랬다. (뭔가.. 개고생이 좋다...)
남해에서 그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초입에서 한 어르신을 만났다. 우리를 보자마자 쉬었다 가라면서 물 한 잔 주겠다고 하셨다. 너무 감사했지만, 아직 걸은 지 5분도 채 되지 않았다고 거절했다. 시작부터 바래길을 걸을 힘을 얻었다.
끝에 다다랐을 때 염소 무리를 만났다. 우리를 응시하는 두 눈이 너무 매서워서 순간 긴장했다. 제발 봐달라는 심정으로 모서리 끝으로 걸어갔다. 멀리서 뒤를 돌아봤을 때도 여전히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언덕이 끝나고 긴 도로가 나왔다. 도로 끝을 향해 계속 계속 걸었다. 이제는 걷는 일만 남았다. 무거운 짐을 줄이기 위해 방울토마토를 꺼내 먹었다. 아주 좋은 선택!
도로 옆 하수구 통로에 두더지가 빠져 있었다. 두더지를 처음 봐서 너무 귀엽고 신기했다. 이 아이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을까? 우리는 두더지에게 힘내라며 응원의 파이팅을 남기고 계속해서 걸어갔다.
길을 걷다 보면 정말 예쁜 시골 풍경을 많이 보게 된다. 재밌는 건, 같은 풀인데도 색상이 다르고 미묘하게 풍경이 다르다는 것이다. 남들이 보면 같은 풍경처럼 느끼지만, 다녀온 우리에게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계속 길을 걷다 보면 용강 마을 표지판이 나온다. 통행금지 표지판이 붙은 곳으로 걸어가면 된다.
우리는 양떼목장을 들려서 계속 걸어갈 생각이었다. 통행금지판 때문에 목장에 연락을 했는데, 그건 자동차만 그런 거라면서 와도 된다고 하셨다. (걷는 사람은 처음이었는지 되게 당황하셨다 ㅋㅋ)
그 길을 따라 걸었다. 언덕이 계속 나왔다. 거의 고비에 다가왔을 때 언덕 위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주변에 축산이 많았는데 그곳에 갇힌 소들의 눈이 서글퍼보였다. 그 아이도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우리처럼 도보여행을 떠났을까. 지나칠 수 없어서 슬펐다..
계속 걷는다. 무성한 풀잎이 연결되어 하나의 포토존을 만들었다. 그 찰 날의 순간에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친구가 이 사진을 마음에 들어 해서 매우 뿌듯했다.
자연의 색은 이토록 다채로울까.
하나의 초록빛에도 저마다의 팔레트를 지니고 있으니 질리지 않는다.
남해 양떼목장보다 귀여운 기차가 더 눈에 보였다.
평화로운 풍경에 마음이 붕 뜨는 것만 같았다.
어른이지만 타고 싶네 ^^.
먹이를 들고 안으로 들어가면 여러 동물을 볼 수 있다. 입장료는 성인 5천 원이었다. 목장 규모가 생각보다 컸다. 무엇보다 관리하시는 분들이 좋아 보였다.
우리들의 도보여행은 무작정 걷다가
우연히 만난 것들에 마음이 이끌려 쉬어간다는 것.
목장엔 귀여운 동물들이 많았다. 중학교 때부터 꿈이 몽골 여행을 하는 거였는데, 목장에 오니 몽골에 더 가고 싶어 졌다. 동물들과 자연이 있는 곳을 가장 좋아하기 때문에. 조금 아쉬운 건 작은 동물들은 철장에 갇혀 있었다는 점이었다. 동물원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안쓰럽게 봤는데, 사장님이 그래도 케어를 잘해주시는 것 같아 보였다.
양들은 먹이를 내놓으라며 달려들었다. 당황한 손과 발이 사진에도 보인다. 먹이만 보이면 저기서부터 여기까지 막 달려오기도 했다. 솔직히 좀 무서웠다...
양들의 눈을 자세히 보면 기다란 창문 모양이다. 네모난 눈으로 세상을 파노라마처럼 본다고 한다.
인간도 양의 눈을 가진다면 세상을 더욱 넓게 바라볼 수 있을까.
세면장에서 손을 씻고 있는데 갑자기 양몰이를 해준다며 오라고 하셨다. 보통은 시간대별로 양몰이를 볼 수 있는데, 서비스 겸 보여주신다고 했다. 그게 뭔지 의구심을 가득 안고 목장길을 따라나섰다.
양치기를 위해 영국에서 유학을 하셨다고 했다. 특이한 암호로 소통하는 데 너무 신기했다. 500인가 100마리 중에 한 마리 정도만 양몰이를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영리해야 한다는 뜻이었는데, 그것도 새로운 사실이었다.
척척 알아듣는 것도, 엄청 신나 보이는 강아지도 재밌게 느껴졌다. 양들이 겁에 질려서 엉덩이에 힘주는 게 보였다. 사장님 말로는 양들도 강아지의 서열을 느껴서, 자기보다 약하다고 느끼면 들이박는다고 했다. 정말 무서운 사실.
양몰이 학교에 좋은 인상을 가졌던 이유는 바로 사람들이었다. 들어오자마자 입구에서부터 반겨주시던 할머니와 할아버지. 할머니는 우리의 많은 짐을 보시고선 생수 두병을 무료로 내어주셨다. 선한 웃음을 비치면서 수줍게 자식 이야기를 하시던 얼굴도 기억에 남았다. 남해에서의 기억은 모두 사람들로 추억될 것 같다.
잠깐 들리려고 했었는 데 생각보다 볼 게 많아서 그곳에 꽤 오래 있었다. 양몰이 학교를 뒤로 한채 다시 도보 여행을 떠났다. 목장을 내려와서 다시 언덕길로 올라가야 하는데, 생각보다 힘들었다. 그지 체력은 묵묵히 걷기.
묵묵히 걷다가 마치 요정이 살 것 같은 숲길을 만났다. 따뜻한 햇볕이 나무 틈새로 번지고 있었다.
숲길을 계속 걷자 멀리서 남해대교가 보였다. 이제 진짜 얼마 안 남았다.
마땅히 텐트를 칠 장소를 찾지 못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때 친구가 근처 사장님께 잘 곳을 여쭤봤고, 흔쾌히 자리를 잡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대신 정말 조용히, 깨끗이 쓰고 가기로 했다. 그렇게 숙식을 잘 해결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밥을 먹으러 갔다. 대교 밑에서 경치를 바라보면서 잘 수 있다니! 생각만 해도 너무 들뜨고 좋았다.
근처 횟집에서 물회와 낙지볶음을 먹었다. 사장님들이 너무 호탕하고 유쾌하셨다. 오늘 하루 종일 걸어서 그런지 밥맛은 최고였다. 힘든 만큼 뿌듯함도 컸다. 같이 간 친구들과 여행을 회고하면서 술을 마셨다. 이렇게 마음 맞는 여행 메이트를 만나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오는 내내 한 번도 싸우지 않았고, 사실 크게 힘들지도 않았다. 길도 잘 찾아왔고, 무계획 여행이었지만 매우 만족한 코스였다.
횟집 앞에는 대교 야경을 볼 수 있다. 바로 옆 편의점 야외 데크에서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곳의 풍경이 마치 여수 같았다. 고양이들이 어슬렁 거리고, 사람들이 유쾌하게 웃으며 놀고 있었다.
우리도 그곳에서 매실주와 안주를 노나 먹으면서 마지막 야경을 즐겼다.
2차는 우리의 호텔 뷰(?)에서. 대교를 보면서 먹는 아이스크림 맛은 최고였다. 우리가 느긋하게 올라오는 동안 미리 텐트를 쳤던 근에게 고마웠다. 대교에서 언덕까지 꽤 가파랐는데, 불행히도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5번은 넘게 오르락내리락했다.
함께 야외 침낭에 앉아서 영화 이야기를 나눴다. 좋아하는 영화를 떠들다 보면 그 사람에 대해 알게 된다. 긴 밤을 함께 마치고 새벽이 지나가기 전에 잠에 들었다.
오늘의 도보여행 코스
21/06/23 1일차 *2만 4천보 걸음
남해바래길 15번 구두산목장길
거리: 6.6km
소요시간: 약 3시간
걷는 경로: 삼동면 꽃내 출발 -> 마을버스 이동 -> 남해터미널 -> 설천면행정복지센터 앞-> 점심 백반-> 남해양떼목장 -> 남해대교 -> 저녁 청정횟집 -> 1박
*기존 경로: 노량 선착장 <-> 노량 공원 <-> 구두산임도 <-> 양떼목장 <-> 설천면행정복지센터
오늘의 에필로그
언덕을 오를 때는 주변 경치가 보이지 않았다. 묵묵히 다음 발을 지지대 삼아 걸어갈 뿐이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내리막길에서는 8자선을 그리며 쭉쭉 내려왔다. 사소한 풍경도 잘 보였다. 친구들이 잘 올라오고 있나 살펴보기도 했다. 숲에서, 길에서, 언덕에서 삶을 배웠다. 걸을 때마다 뜨겁게 단단해지는 허벅지도 좋았다. 이래서 다들 도보 여행을 하는 걸까? 모두 오늘 고생 많았어!
그리고 다음날, 도보 여행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