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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홉 Apr 24. 2022

[동심찾기] 자연의 숨, 앵강다숲 트레킹

물 없이 걷는 건 최악의 선택이었고



6월 30일

오늘의 바래길, 10번 앵강다숲길



남해군 남면 홍덕 마을


오늘은 남해바래길중에 10 앵강다숲길을 걷기로 했다. 숙소에서 조금 멀었던 남면. 홍덕 마을은 작지만 아기자기했다. 근처 카페에서 휴식을 취한  앵강다숲으로 걸었다.





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귀여운 남해 풍경이 보였다. 매번 도보여행을  때면 비슷한 풍경을   있다. 특히 남해는 거의다 비슷한 모습을 갖고 있었다. , 높은 , 뭉게구름, 간간히 따라오는 해안가. 그게 남해의 전부였다. 어떻게 보면 지겹다고 느낄 수도 있으나 오히려 그게 남해의 매력이었다.


도보여행을 처음 했을  그것들이 모두 새로운 자극처럼 다가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남해가 일상이 되어버린  아쉽기도 하지만, 바래길을 걸으면서 다시 재발견할  있었다.



문, 류, 요한, 나



오늘의 도보여행 멤버는 4명.

근이 빠지고 요한이 합류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마냥 신날 것만 같았다.





남해 곳곳에서 볼 수 있었던 '바르게 살자'


비석에 새겨진 글자를 보고, 무한도전 <배달의 무도> 편에 나왔던 우토로 마을 강경남 할머니가 생각났다. 우토로 마을은 1941 2 세계대전  교토군 비행장 건설을 위해 일본 정부에 의해 동원된 노동자들이 머물렀던 제일 조선인 마을. 그곳에 마지막으로 남은 1 한국인 할머니.


유재석과 하하와 헤어지면서 할머니가 간절하고 단호하게 하신 말씀이 있었다.


'절대로 남의  훔쳐먹고 그러면  된다'


할머니의 말씀이 또렷하게 들리는 듯했다. 바르게 살자. 반듯하게 살자. 남 등쳐먹는 짓을 하면서 살진 말자. 요즘 같은 세상에서 순진무구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91세 그가 전하는  이야기가 오히려 진실에 가깝게 들리는 건 왜일까.







남해에서 장화는 항상 이렇게 걸려있다.

대충 살자.. 물구나무서기 하는 장화신처럼.






안쪽으로 보이는 풀길이 너무 예뻐서 또 딴 길로 새고 말았다. 우리는 매번 이렇게 정해진 목적지를 걷다가 중간에 멈춰서 노는 시간이 많았다. 예정대로라면 3시간이 걸리는 바래길도 카메라를 들고 딴짓을 하다 보면 4시간이 훌쩍 넘어가기도 했었다. 도보 여행을 위한 마음가짐은 딴짓하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한여름의 두곡마을



자연에는 같은 초록이 없다.

연둣빛 잎과   진한 나무가 함께 어우러져 있다.

귀여운 해바라기를 따라 논 옆을 계속 걸었다.





걷다 보면 이렇게 컴퓨터 배경화면 같은 풍경을 만나기도 한다.  날은 정말 걷기 힘들 정도로 더웠다. 그래도 시원한 바람 덕분에 힘을 내서 걸을  있었다.



두곡해수욕장


도로를 따라 걷다 보니 해안가를 만났다. 앉아서 놀고 있는데 차를 타고 지나가던 친구에게 걸려서 사진을 찍혔다. 옹기종기 해안가에 잠시 쉬어가는 시간.





해안에만 오면 문은 돌멩이를 구경했다. 나는 문한테 짱구는  말려에 나오는 맹구냐고 놀렸다. 그가 보여준 돌멩이들을 찍다 보니 나도 돌멩이가 좋아졌다.


제주도에 여행을 갔을  조개껍데기  조각을 데려와서 집에 장식하곤 했었다.  사람들은 자연의 수집품을 모을까. 자연을 집으로 데려갈  없어서 그런 걸까. 제주도에서 가져온 조각난 껍데기는 지금 남해 방에 머물러 있다.





돌탑



사람들의 간절함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돌에 어떤 신비한 기운이라도 깃든 탓인지, 그들은 자연 앞에서 빌고  빌었다. 나와  친구들도 작은 돌탑을 만들었다. 그때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하지만 매번 기회가 생길 때마다 빌었던 나의 소원은 비슷했다. 나답게 살게  달라고.






바닷가 마을의 풍경을 천천히 지나서 걸어갔다. '우정'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능소화 담장



장마가 오면 능소화가 핀다고 하는데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노을을 닮은 꽃은 신비롭다. 아주 어릴 때부터 왠지 주황색은 싫었지만, 남해에 머물면서 자연에서 피는 주황을 좋아하게 되었다.





빛바랜 바래길 글씨를 따라 걷기.

바래라는 말은 옛날에 어머니들이 쓰던 단어라고 한다. 남해의 어머니들은 갯벌 일을 하면서 살림을 꾸렸고, 물때를 골라 갯벌로 가던 좁은 골목길을 '바래길'이라고 불렀다고. 유래처럼, 남해바래길은 좁고 구불구불한 길이 많았다.






다시 바래길. 도로 옆에 겨우 붙은 인도를 따라 걸었다. 자꾸 앞서가는 요한이를 뒤따라 갔다. 우리 서두르지 말자고, 아직 못 봤던 자연이 이렇게나 많다고 외치고 싶었다. 이런 마음은 모른 채, 우리가 늦어질 때면 저 끝에 서서 요한은 자꾸만 허리에 손을 짚었다. 그 모습을 못 본 채 하고 셋은, 혹은 문과 나는 자꾸만 뒤처졌다. 요한은 허리에 팔을 짚고 우리를 노려보는 것 같았다.






햇볕도 느끼고 바람도 느끼자.

자연이 우리에게 멈추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산책을 좋아하지만, 원래 살던 곳에서 이렇게 많이 걸어본 적은 없었다. 빽빽한 도로와 어딜 가든 울리는 자동차 경적소리가 싫어서. 고가도로에 핀 작은 꽃들과 애써 찾아낸 자연을 보기 위해 산책을 했었다. 남해에서 걷기를 계속하는 이유는, 걷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기 위해서인 것 같다.







그래서 자꾸만 뒤처지고 싶었다. 느리고 천천히 걷고 싶었다. 두 눈으로 이곳을 보고, 뷰파인더로 자연을 기록하고 싶었다. 잎 하나하나가 살아 숨 쉬는 것 같으니까. 정말로 자연의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용소마을 보호수



남해에는 보호수가 있다. 보호수 지도를 따라 도보 여행을 하는 것도 좋을 듯싶다. 도보 여행을 하다 보면 보호수를 의외로 쉽게 마주칠  있었다. 보호수 아래에  있기만 해도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시원해졌다. 여름날 바래길을 걸었던 우리에겐  같은 휴식처였다.






키위인 줄 알았는 데 다래.



*다래*

다래나무과 다래 속에 속하는 낙엽이 지는 덩굴식물로서 해발 100 ~ 1,600m 깊은 산의  속에 난다.

암수딴그루이다.






걷다 보니 미국마을까지 왔다.

뭔가 당황스러웠던 미국마을.

남해인들한테 속사정을 들었다.





미국마을 초입 건너편에 예쁜 풍경이 있다.

요한의 말에 이끌려서 사진을 찍으러 향했다.

마치 '바닷가 마을'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상영될 것 같은 곳이었다.



영화 제목은 뭘로 하는 게 좋을까?



우리를 위한 영화를 만든다면  사진을 포스터로 만들고 싶을 만큼, 풍경이 멋졌다. 잠자리들이 머리 위를 빙글빙글 날아다니고, 뒤에는 논과 바다가 멋스럽게 어우러져 있었다.






미국마을 근처에 용문사가 있다고 해서 정말 즉흥적으로 길을 정했다. 이때부터 조금 마음이 불안해졌다. 용문사는 가보고 싶었는데, 먹을 물이 떨어졌다.

사실 전부터 극심한 갈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가고 싶으니까) 용문사로 향했다.







강아지풀을 들고 웃고 있는

류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용문사 초입부터 풀숲처럼 예쁜 길이 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음을...






언덕을 오르다 보면 더 좋은 풍경이 나온다.






용문사 가는 길은 언덕이  가팔랐다. 게다가 언덕이 여러 개였다. 처음 언덕을 넘어 중간까지 왔을  5분만 쉬자고 말했다. 조금 쉬다가 요한이 얼른 가자고 재촉했다.


(나: 목이 너무 마른데…) (요한: 위에 물 있어..)라는 대화를 마치고 다시 언덕을 올랐다.


가파른 언덕은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예전의 본 스폰지밥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동그란 산소가 가득한 집에 사는 다람쥐인 다람이가 스폰지밥을 초대하는 에피소드였다. 스폰지밥은 안에 물이 없는 줄도 모르고 들어갔다가 입술이 다 메말랐다. 울부짖으며 ‘다람아 물!!!’하며 소리치는 모습이 나와 오버랩이 되었다면 과장일까. 딱 그만큼의 갈증을 느꼈지만, 나에게는 소리칠 다람이가 없었다. 질질 무거운 몸을 끌며 겨우 용문사 문턱에 닿자마자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 털썩 눕고 말았다.






드디어 도착한 용문사 문턱.





애들의 말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쿵쿵 거리는 심장소리가 너무 커서 잘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길게 누워서 높아 보이는 나무의 파동을 느꼈다. 컸던 심장소리가 서서히 작아졌을 때, 살아있어서 다행이라는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 일을 다닐 때 가끔은 내가 왜 생존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의문이 밀려올 때가 있었다. 감각은 무뎌지고, 들려오는 소음에 귀는 막혀있었다. 주말이 되면 생동을 찾아 미친 듯이 공원으로 향했다. 바로 지금, 이곳에서 나는 그때 찾아 헤매던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것들을 같이 간 친구들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오로지 갈증에 미쳐있었던, 혹은 언덕을 이겨냈던 저질 체력의 나만 알 수 있는 감정일지 모른다. 누구보다 뜨거웠던 오르기를 끝내자, 햇빛 틈으로 비추는 풀잎과 돌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때의 풍경은 사진을 찍고 나서야 알게 된 것들이었다. 당시에는 용문사 바닥에서 마주한 자연의 숨과 심장의 파동이 너무 강렬해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드디어 완주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위로 올라오자마자 물을 네 번은 넘게 쉬지 않고 마셨다. 말라붙었던 입술이 살짝 벌어지는 걸 느꼈다. 안쪽에는 우리 같은 사람을 위한 쉼터도 있었다. 마룻바닥에 뻗어서 감사함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를 위한 쉼터라니, 너무 감사한 베풂 아닌가 싶었다. 우리는 잠시 이곳에 벌러덩 누워있었다.






용문사는 방문객이 있어서 그런지 화장실도  되어 있었다. 계단을 오르면 수국도 펴있고, 기와의 멋도 느낄  있다. 무엇보다 위에서 바라보는 용문사의 느낌이 단아하고 멋스러웠다.




이번에는 올라오지 않았던 길로 걸어갔다. 문, 류, 나는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을 좋아했다. 새로운 길을 찾는 게 도보 여행의 또 다른 재미였다. 내려갈 때는 무릎에 무리를 주지 않기 위해 8자를 그리며 걸었다.

아래 마을이 정말 예뻤다. 남해에서 찾은 마을 중에 손에 꼽는 듯 보였다.





우리에게 다가온 고양이 한 마리. 치즈와 검은색이 섞인 무늬를 가진 개냥이였다.

몸을 부비부비 하면서 애교를 부렸다.






눈치를 슬쩍슬쩍 봤지만,

사람을 좋아하던 강아지.

꼬리가 짙어서 너구리 같았다.

할머니의 강아지.




용소 봉전마을


 표면에 음영을 그린 것처럼 그림자가 드리웠다.  모습이 너무 멋져서 같은 장면을 여러 컷으로 찍었다. 오늘 가장 마음에 드는 풍경이었다. 사진에  담기지 않은  아쉬울 정도다.



앵강다숲


남해 돌창고에서 진행한  

<해피해피 Happy Happy> 전시 프로젝트.

최정화 작가와 키토부가 함께 했다고 들었다.



해가 진 앵강다숲




앵강다숲에서 조금 쉬다 보니 금방 해가 저물었다. 생각했던 느낌은 남해편백나무숲이었는데, 현실은 집 앞 공원 느낌이 강했다. 바로 앞에는 해안가가 있었다. 내 앞에 서있는 류에게 춤을 춰보라고 했다. 자유로운 몸짓을 내 카메라에 담았다




<전복물회>



택시를 타고 곧바로 밥을 먹으러 갔다. 초음에 있는 <전복물회> 양이 엄청 푸짐하고 맛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정말 그랬다. 거하게 저녁을 먹었다. 열심히 걷는 날에는  많이 먹게 되니까..




<전복물회> 사장님 트럭



밥을  먹고 집에 가려고 하는데 버스는 당연히 없었고 (남해는 막차가 빠르다) 택시를 타려고, 사장님께 콜을 여쭤봤다. 마음씨 좋은 사장님 부부께서 숙소까지 너무 멀다면서 직접 태워다 주신다고 했다.


우리가 마지막 손님이어서 퇴근 준비를  테니 잠시 기다려달라고 하셨다. 남해에 있으면 이런 호의를 자주 받게 되는  같다. 처음에는 당신들의 집이 근처인 것처럼 말씀하셨지만, 알고 보니 식당 근처에 거주하고 계셨다. 우리가 미안해할까  거짓말을 하신 거였다. 너무 죄송하고 감사했다.




사장님께서 가는 길에 드라이브를 시켜주셨다. 독일마을에 아직 안 가봤다고 하니까, 지금 가보자며 신나게 언덕을 오르셨다. 밤의 독일마을은 또 새로운 느낌이었다. 남해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각자에 대해서 떠들다 보니 금방 숙소에 도착했다. 마냥 힘들 것만 같았던 바래길에서 나는 오늘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되었고, 우연히 들어간 곳에서 감사한 호의를 받았다. 오늘을 잊지 못하겠지.









오늘의 도보여행 코스

21/06/30

남해바래길 10번 앵강다숲길 (남파랑길 42코스)

소요시간: 약 3~4시간

걷는 경로: 삼동면 꽃내 출발 -> 마을버스 이동 -> 남면 홍덕마을 -> 백년유자 카페 -> 화계-> 미국마을 ->두곡, 월포해변 -> 용문사 -> 앵강다숲 -> 택시 이동 -> 전복물회 -> 숙소


남해바래길 코스 정보

*10번 앵강다숲길 (남파랑길 42코스)
거리: 15.6km
소요시간: 약 7시간
난이도: 별 3/5
걷는 경로:  바래길탐방안내센터(앵강다숲) <->화계 <->미국마을 <-> 두곡, 월포해변 <-> 홍현해라우지마을 <-> 다랭이마을

출처: 남해바래길 어플








오늘의 에필로그



사진을 취미로 하게   얼마 되지 않았다. 대학교에서 영상을 전공하면서 카메라를 접했고, 어떤 기술도  습득하지 못한  무작정 셔터를 눌렀다. 영상을 하면서, 쓸모 있는 소스만 모아 편집하는 행위가 지겨웠다. 이후 다른 분야로 일을 하면서 카메라와 멀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전문의 강박이 사라지자 다시 카메라를 갖고 싶어 졌다. 저렴한 가격으로 옛날 미러리스를 중고로 샀고, 사진을 찍었다. 그게 불과 1 전의 일이었다.


출사를 다닐 때면 자연과 동물에게  시선이 갔고, 그게  사진의 전부였다. 특히 계절감을 그리는 색과 빛을 좋아하게 되었다. 엄마를 찍게 되면서 사람이 나오는 사진이 좋아졌고, 남해에 오면서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특히 애정이 갔다. 그들을 찍게 되면서  다른 감정을 느꼈다.


그건 처음 카메라를 잡았던 20살의 감촉과는 분명 달랐다. 배움, 경험, 낯섦 같은 기계적인 떨림이 아니라, 정말로  것을 담아보고 싶다는 열망. 그래서 도보 여행을 하는 내내 카메라를 들었다. 앞으로 남해에서 사람과 자연을 담은 나른한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 1 뒤에는 애정 어린 사진을 모아 누군가에게 건넬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 글을 다시 퇴고하는 지금, 나는 정말로 남해에서 만난 사람들과 풍경을 담아 사진집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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