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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홉 Jan 05. 2021

저는 파란색을 좋아합니다.

나를 발견하는 방법


나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있는 이들에게.



튀는 구석 하나 없이 지극히 평범한 고등학생. 거기에 더 설명하자면, 마이너한 취향은 딱히 없고, 친구를 좋아하고 성적은 평범하고, 누군가가 취향이 뭐냐고 물어보면  '글쎄…. 난 다 좋아'라고 대답한 얘. 문득 성인이 되어보니 취향이라는 건 참 중요한 거였다. 타인의 취향을 동경한 채 긁어모았던 것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니었지만, 그것보단 이게 좋다-라는 두 개의 선택지에서 더 나은 '것'을 찾기란 어려웠다.어떤 것에 취향을 갖고 있다는 건 그만큼의 경험이 필요했음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관광지를 도는 여행보다, 한 곳에 텐트를 치고 흘러가는 구름을 지켜보는, 백패킹이 더 즐겁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귀여운 캐릭터보다 깔끔한 문구를 선호하는 사람.종류별로 술을 마셔보고 막걸리보단 와인, 소주보단 맥주, 그중에서도 블랑같은 향이 짙은 것보단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테라, 가끔 과일 향이 나는 데스페라도스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 베이직한 옷을 좋아하며, 온통 무채색으로 채워진 옷장을 보며 흐뭇하게 웃는 그런 사람.


내면의 세계에서 찾아낸 그 사람만의 '취향'. 그건 조연으로 흘러가 버릴 것 같았던 한 사람을 붙잡는 대단한 단어라고 생각했다.부모님 따라갔던 마트에서 두 개의 과자를 장바구니에 냉큼 넣어놨던 아이. '하나만 가져와' 소리에 인생 최대의 고민을 맛보던 그 순간 아이는 어떤 과자를 골랐을까? 이미 먹어보고 좋아했던 과자일 수도, 새로 나온 신상 과자일 수도 있지만 뭘 선택했건 아이의 취향은 더욱 확고해져 갈 것이다.


취향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경험에 대한 질문과도 같다. ‘넌 어떤 게 더 좋아?'라는 말은 '둘 다 해봤는데 뭐가 더 좋았어?'라는 뜻이 담겨있다.평범했던 학생이었던 나는 취향을 찾기 위해 많은 경험을 헤맸다.그러다 보니 잊고 있던 오랜 취미와 남들 눈엔 별거 아닌 소소한 취향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초등학생 시절, 그땐 펜팔이나 다꾸같은 것이 유행이었다. 친구들과 만든 소규모 카페에서 소설을 썼고, 그림을 그렸고, 포토샵으로 배너를 만들어 올렸다. 모르는 사람들과 펜팔을 시작했고, 스티커나 마테 같은 것들을 교환하면서 다꾸를 좋아하게 되었다. 온라인에서 만난 친구와 실제로 놀기도 했고, 몇 년 동안 이어진 펜팔 편지는 지금도 서랍장에 쌓여있다.


어릴 적 장래 희망은 내내 비슷했다. 화가, 패션디자이너 같은 것들. 그림을 좋아했지만, 그저 취미에만 머무르는 수준이었다. 그런 일은 업으로 삼으면 힘들다는 이야기를 어른에게 듣기도 했지만, 사실은 스스로 열정이나 의지가 딱히 없었다.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깐. 성인이 된 지금, 어릴 적 했던 작은 딴짓들이 의외로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여전히 나는 다이어리를 쓰고 있고, 문구용품을 좋아하며, 소설을 취미로 쓴다. 무의식에 영향을 받았던 탓인지, 전공도 대체로 비슷해서 어도비 프로그램을 수시로 들락거리게 되었다.


그때 어릴 적했던 장난 같은 취미들이 도움이 되었다. 펜팔을 하진 않지만 지금도 편지를 주고받는 걸 좋아하고,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는 걸 좋아한다. 이렇게 사소한 일을 나열하는 이유는, 지나쳐온 딴짓과 취미들이 지금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는 힌트가 되기 때문이다. 낡은 취향은 여전히 내 방에 머물러 있다. 성인이 된 후 새롭게 발견한 취향은 아마 노래가 아닐까 싶다. 딱히 좋아하던 가수나 장르도 없었던 내가, 이제는 '어떤 노래 좋아해?' 하면 단번에 답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좋아하는 장르를 발견하게 되면 그다음은 훨씬 더 쉬워진다. 비슷한 스타일, 비슷한 가수를 찾아 듣고, 인디 가수를 찾아내고 희열을 느낄 수도 있다. 완벽한 내 취향을 건드리는 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떨리고, 누군가에게 추천했을 때 '좋다'는 평가를 받으면 덩달아 뿌듯해진다.


'취향'은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안내하는 표식이 되어 준다. 고이 모셔왔던 취미, 좋아하는 것의 모양새는 나를 온전히 표방할 순 없지만, 그 근처까지 안내하는 길잡이가 되어 준다. 원하는 일을 찾기 위해 혹은 나를 찾기 위해 몇 번이고 과거로 돌아가곤 했다. 아주 오래된 아이디를 찾아 검색해보기도 하고, 졸업 앨범을 뒤적거리며 장래 희망을 찾아보고,학창 시절에 가장 좋아했던 과목, 열심히 했던 흔적을 따라가 보기도 했었다. 인생은 가끔 방황하다가 제자리를 찾는다. 그 진짜 답은 어린 시절의 내가 쥐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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