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홉 Jan 02. 2021

우연을 발견하는 법

거창한 의도는 없었지만


비싼 물감까지 구매하고 다녔던 미술 학원은 정말 별로였다. 성인이었던 나를 입시 반에 집어넣어 가르치니 어쩐지 미안한 마음도 들었고. 눈치도 보였다.  그것보다 억지로 배우는 일이 생각보다 적성에  맞았다.사실 아주 어릴 , 부모님을 졸라 미술학원에 다녔다가 3 만에 그만둔 전적이 있다.


 이유는 (만화 캐릭터처럼) 눈을 크게 그리고 싶은데, 선생님은 자꾸 작게 그리라고 해서. 얘가 성인이 됐다고 어디 갈까? 이번에도    나가고 학원을 그만뒀다. 뭔가 좋아하는 일을 억지로 하게 되면 흥미가 사라지는   종특인  같다. 그나마 좋아하던 취미마저 잃기 전에, 나는 미술용품만 슬쩍 가져온  학원을 나왔다. 패기 있게 도전했던 미술학원은 흥미를 금방 잃어서 포기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래도 도전(?)해봤다는 거에 의미를 뒀다. 이젠 정말 학원을 가는 일은 없을 거다.


미술학원보다 열심히 했던  대외활동이었다. 영상작업을  , 촬영보단 편집이 좋았고, 편집보단 기획이 좋았다. 영상 콘텐츠 기획도 물론 재밌긴 했지만, 기획만  수는 없지 않은가. 팀도 꾸려야 하고, 촬영도 해야 하고, 편집도 해야 했기에 영상에 애정이 없으면 버틸  없었다. 영상이 점점 시들어갔다는 이야기는 전편에서 지겹도록 했으니 잠시 생략.


그래서 3학년에는 영상을 만드는 수업보다 콘텐츠 기획이나 디자인 수업을  많이 찾아들었다. 3학년 전공 수업 중에  '콘텐츠 기획' 있었다. 어떤 분야든 상관없이 기획서를 만들고 발표를 하는 수업이었다. 친구  명에게 봉사 프로그램을 기획하자고 했다.이건 매우  사심이지만 평소에 어르신, 봉사에 관심이 정말 많았다. 1학년 때도 봉사 프로그램을 기획한 경험도 있으니 재밌을  같았다.


 학기 내내 봉사 프로그램 회의를 했다. 매일매일 만나서 엄청 디테일하게 활동을 기획했다. 그렇게까지  해도 되긴 했지만, 포스터도 만들고, 배너도 만들었다. 회의도 정말 많이 했다. 아침에 만나서 카페 마감까지  정도로.  짓을    달은 했으니 애들이 지칠 만도 했다. 그때까지는 기획의 요령이나 회의의 적정선을 몰라서, 많이 하면 좋을  알았다.


사실 기획을 하고, 회의하는  자체가 너무 즐거워서 힘든  몰랐던  같다. 같이 회의를 했던 친구  명은 점점 지쳐갔다.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게 당연한 거였다.


열심히 준비한 기획서는 수업 발표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말 그대로 '기획서' 수업이었기 때문에 그걸로 끝이었다.애들은 홀가분하다며 만족했지만, 나는 어쩐지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이 가득 찼다. 너무 좋은 기획이라 실행까지 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회의나 발표를 할 때도 그저 '과제'로만 생각했던 동기들에게 직접 프로젝트를 해보자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실행하기까지 금전적인 문제도 있었고.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봉사 프로젝트 지원 사업이나 공모 사업을 뒤지기 시작했다. (앞서 말했지만, 활동이나 공모 지원을 구경하는  오래된 취미다) 우연처럼 기업의 모재단의  '봉사 프로젝트 공모사업'  하니 있는  아닌가. 친구들 눈치를 살살 피며 '여기서   지원해준대. 내가 지원서랑 회계  맡을게. 같이 할래?'라고 던졌다. 애들도 기획서가 아쉬웠던 걸까?  말을 덥석 물었다.


드디어 사심의 기획을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기획은  되어있으니, 제안 피피티를 만들어서 주변 주간보호센터, 요양원 등에 연락을 보냈다. 그중  곳에서 연락이 왔다. 어떤 곳은 직접 제안서를 들고 찾아가서 미팅까지 했었다. 아쉽게도 그곳에서 결국   없었다. 센터를 찾는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아무래도  프로젝트 자체가 참여형이다 보니깐 어르신을 모으는  어려웠다. 포기해야 하나 싶었을 , 다행히 팀원의 지인이 일하는 주간 보호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의  프로젝트 이름은 <나의 파도>였다.  프로그램은 치매 노인을 위한 문화 활동이었다.간략하게 설명하면, 사진 촬영과  사진을 컬러링 그림으로 만들어서 어르신들과 함께 색칠하는 활동이다.어르신들은 사진을 싫어한다. 영정사진을  찍냐며 거부감을 보이신다. 그래서 나는 사진이  사후를 위한 것만은 아니라고 전하고 싶었다. 지금 현재를 추억하기 위해 담는 거라고.


그래서 사진을 촬영할  그냥 찍는  아니라 다양한 소품을 준비했다. 어르신들이 직접 고르시고 우리가 직접 찍어드렸다.  어르신의 사진을 그림으로 만들었고, 본인의 모습이 담긴 그림을 어르신이 색칠하셨다. 마지막 활동  컨셉 사진과 컬러링을 액자에 담아 전해드렸다.





주름진 손으로 액자를 몇 번이고 쓰다듬으시는 어르신들. 의자에 앉아 그 모습을 되새기셨다. 우리가 알고 있던 노인의 모습은 사라지고, 총명한 눈빛만 떠오르는 걸 지켜봤다. 이상하게도 그 액자에 노인들의 지나온 삶과 감정이 담긴듯한 느낌이 들었다. 활동이 끝나고, 나는 가슴이 조금 떨렸다. 맨 종이에서 끄적거렸던 기획이 무대 위로 올라갔을 때, 묘한 긴장과 설렘을 느꼈다. 아. 기획을 해야겠다. 그렇게 나는 문화기획자의 첫발을 디디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의 도피처는 중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