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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홉 Dec 31. 2020

오늘의 도피처는 중국

나의 첫 해외 도피기



때는 2017년 11월 무렵, 그러니까 내가 대학생 2학년 끝 무렵에 도착해있을 시기에 교내 공고를 보고 우연히 넣은 중국 어학연수에 붙게 되었다. 영상 편집을 안 해도 되는 방학은 처음이었다. 물론 가기 전에 할 일을 다 끝냈지만. 미디어 전공자가 어떻게 중국을 가게 됐는가 하면, 그 이야기는 면접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기  명이 중국 어학연수가 떴다면서 같이 지원해보자고 꼬드겼다. 아무 생각 없던 나는 해외를 가보고 싶은 마음에 급하게 지원서를 썼다. 사실 이때까지 해외 경험이 없었던 탓에 '어학연수'보다 '중국' 보고 들뜬 마음으로 넣었다. 남들은 언어 공부라던가, 어떤 이유가 있어서 들어왔겠지만, 나는 여행 가는 기분으로 면접을 보러 갔다. 말도  되는 패기는 면접장에서 곧바로 탄로 났다.


 6명의 면접자와 4명의 면접관. 생각보다 엄숙한 분위기에서 면접이 시작되었다. 가장  질문은 ' 텐진 대학교에 지원했나요'였다. 중국 어학연수를 지원할   가지 선택이 있었다. 하나는 텐진에 위치한 대학교, 하나는 비교적 변두리에 있는 허페이 대학교. 쉽게 말하면 텐진은 수도권, 그러니깐 허페이보다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곳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 초보인  같은데  텐진에 넣었니'였다. 바로  지원자는 '그냥'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어떻게 대답했을까. 평소에 무조건 정보를 많이 얻고 선택을 하는  좋아한다. 그래서 중국 지원서를 내기 전에도 허페이 대학, 텐진대학 정보, 근처 맛집, 근처 놀거리를 모두  알아봤었다. 심지어 중국 어학카페에 가입해서 정보를 캐내기도 했다.


허페이보단 텐진이 놀거리가  많았고, 빡빡한 시간표 대신 대학교 같은 프리함을 가진 학교로 떠나고 싶었다. (공부는 관심 없고요) 이런 잡지식을 미리 알고 있었던 나는 면접장에서도 그대로 줄줄이 말했다. 제가  찾아봤는데요,   노는 곳으로.. 아니 문화생활을 즐기는 학교로 가고 싶어서요. 그렇게 다른 지원자에 비해 나름 논리적(?)으로 대답에 성공했다.


다음 질문은 '간단한 중국어 질문 듣고 중국어로 대답하기'였다. 면접관은 숨도 쉬지 않고 다음 말을 이었다. '현글 씨는 초보자니깐 패스' 왜냐면, 그전에 자기소개에서도, 중국어를 잘하냐는 질문에 모두 'no!!'라고 아주 당당히 외쳤기 때문이다. '--.. ... 제가 중국어는   합니다. 그렇지만. 블라블라' 중국어를 잘하는 사람이 있다고? 싶었는데 나만 빼고 5명은 모두 유창한 중국어로 자기소개를 했고, 회화를 했다. 대충격.  떨어지겠네... 망했네.. 싶었다.중국어라도 준비해올걸......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면접을 오로지 패기와 열정으로 마쳤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나중에 같이 들어갔던 친구가, 너는 중국어는 못하지만 대답을 잘했고, 배우겠다는 의지가 넘쳐 보였다고 말해줬다. 역시 실력보단 자신감이구나. 사실은 교내 '단기'어학연수였기 때문에... 실력보단 적응 잘할 사람으로 뽑은 것 같긴 했지만. 여기서 더 어이없는 건, 앞서 말한 나한테 같이 넣자고 했던 동기 두 명한테 붙었냐고 물어봤더니 둘 다 넣지 않았다고. 까먹었단다. 그렇게 얼떨결에 혼자, 아니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중국으로 떠나게 되었다.


합비대학교 수업은 고등학교처럼 시간표가 정해져 있었다. 9시부터 학교에 나가야 한다. 수업이 끝나면 자유 시간을 즐길  있었다. 중국에 와서 사람들과 친해지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들과 아무 생각 없이 지내기도 했고, 조용히 다이어리를 쓰면서 생각에 잠길 수도 있었다. 그래도 계속 영상 아이디어는 계속 떠올려야 했고, 중국에서 보내는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서 콘텐츠 고민에서 벗어날  없었다.


낯선 땅에서 아주 평범하게 생활했다. 의외로 적응이 빨라서 스스로 놀랐다. 왠지 무섭게 혹은 어떤 로망처럼 느껴졌던 곳은 그저 우리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평범한 곳이었다. 같이 중국에  친구들의 전공은 정말 다양했다. 그들은  전공을 보며 어떤 프레임을 떠올렸다. 미디어 전공이면 방송국 가는 거야? 영상 유튜브 채널 한다고? 그럼 피디가 꿈이야?   그게 꿈이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없었다.  순간 영상을 완전히 접어야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타올랐다. 그때는  하고 싶은지 정확히 찾을  없었다.


중국에서 한두 달을 보내는 동안, 그래도 뭔가 힌트라도 얻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그러나 떠나기 전과 똑같이 어떤 성과도 얻을  없었다.그러나  그것만은 다가 아니었다.  넓은 세계로 나아갈  있다는 희망, 중국어 하나 모르고 중국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  안에서 벌어지는 대담한 용기가 나를  걸음 나아갈  있도록 도와줬다. 진짜 답은  안에 있었다.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다는 ,  사소한 이야기가  것이라는 .


그것만으로도 포기할 용기는 충분했다. 중국 어학연수를 마치고 한국에 귀국했다. 그리고 다음 학기에 생전 들어보지 않았던 타과 수업을 듣기로 결심한다. 그동안에 아주 진한 사색을 했다. 영상 말고, 진짜 내가 좋아하는 건 뭘까. 방학 내내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과거로부터, 내면으로부터, 혹은 학과 수업에서 느꼈던 흥미로부터. 작은 포인트를 물어 물어 작은 가능성을 발견했다.


3학년의  개강날. 끄적거림을 좋아했기에 정식으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학교와 멀리 떨어진 미술학원에 정식 등록했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워보려고 했던 시도였다.


 번째, 그동안 흥미 있었던 수업을 들어보는 . 평소 심리나 미술, 상담 쪽에 관심이 많았는데 배울 기회가 없었다. 학교 홈페이지를 뒤져보니 심리학과에 '심리치료'라는 수업이 있었다. 1학년 수업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없나 싶어 찾아보니 이번에 새롭게 개설된 융합전공 프로그램이 있었다. 정식 학과는 아니고, 새롭게 만든 전공 같은 거였는데, 뭔지는 모르지만 일단 거기에 '미술치료' 있어서 수강신청을 했다.


 번째, 미술치료 대학원 알아보기.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고  수도 있지만, 미술치료 수업이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심리치료'수업에 음악, 무용, 미술치료가 있었는데 단연코 미술치료가 제일 좋았다. 융합부에 '미술치료'수업도 함께 들으면서 세부적인 공부를   있었다. 특히, 소규모로 진행되어서  좋았다. 물론 미디어 전공은  혼자였다. 미술치료 수업을 들으면서 그동안 몰랐던 학구열이 불타올랐다.


도서관에서 미술치료 서적을   빌려 심심풀이로 읽었다. 수업 과제는 미술치료 분석 보고서를 내는 거였는데,  해내고 싶어서 논문이나 보고서도 많이 빌려서 읽어봤다. 교수님께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사실 그러면 안되지만 장난 삼아 지인들에게 미술치료도 해줬다. 사실 치료까진 아니고, 테스트 정도였지만. HTP,  빗속의 사람 그림 기법  이론과 실습을 공부했다. 미술치료 시간에 그림을 그려서 발표하면서 울기도 했다. 다른 사람도 울었다.


 나는 이곳에서 그동안 찾지 못했던  자신을 찾을  있었다. 내가 무엇을   즐거운지, 어떤 기억이 괴로운지, 어떻게 해소할  있는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방황하다가  힘으로 찾은 열정. 깊게 매료되어서 대학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이것저것 찾아보고, 편입도 고민했다.


이렇게까지 했으면, 편입이나 대학원에 갔었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고, 우선은   고민해봐야  문제였다.  꿈은 나중으로 미뤄둔 ,  가까운 목표를 찾아 또다시 나아가게 된다.







/ 중국으로 도피,

처음 먹었던 마라탕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중국 허페이 / 마라탕 좋아하세요?





/ 나를 찾았던 미술치료 수업


가면 만들기 / 석고상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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