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홉 Jan 24. 2021

첫사랑은 잡초 맛

오래된 이별 이야기  


첫사랑의 냄새는 짙은 눈안개에 덮여있는 잡초  같다. 이제는 지워져 버린  냄새를 더듬으며 글을 써본다. 사실은 그를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저릿하고 아파온다. 사랑이란 단어조차  닿지 않았던 어린 시절, 복잡하고 희귀한 감정을 갖게   .


그는 복잡한 놀이보다 단순한 햇볕과 낮잠을 좋아했다. 가끔씩 내가 먹고 있던 메로나를 달라며 조르기도 했고, 간신히 넘겨준  조각을 입으로 오물거리며 좋아했다.  모습이 너무 소중해서, 갑자기 어디론가 떠날까  두려워지곤 했다.


컴퓨터를 하다가  번이고 뒤를 돌아 네가 있는지 확인하곤 했을 정도였다. 그때마다 너는 땡그란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고, 나는  금세 달려가 너의 온기를 감싸 안았다. 수차례 우리는 달콤한 낮잠에 빠졌고,  그렇듯 모든 순간을 함께 했었다.


그리고 지금 가장 사랑했던 그를 향한 고백을 마친다. 정말로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내가 말한 모든 문장을 네가 이해할  있다면, 나는 너에게 미안했다고 말하고 싶다. 어려서  몰랐다고, 무지해서 미안했다고, 성숙하지 못했다고.  빨리 어른이 되어 우리가 만났다면, 네가 며칠  나와   있었을까 지금도 후회한다고.


지금 너를 만났다면 아마 분명  잘할  있을 거다. 사진   남겨두지 못했던  시절, 지금은  백장이고 사진과 영상을 찍었을 텐데.





-

피피는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나와 함께 살던 토끼이다. 철조망에 그냥 내다 팔던 어린 토끼. 녹슨 철장엔 많은 토끼가 부대끼며 앉아 있었다. 우연히 걸어가다 너와 눈이 마주쳤고, 졸졸 따라오며 아이컨택으로 간절하게 바라던 그 아이를 무시할 수 없어 함께 살게 되었다. 우연처럼 내 삶에 끼어들었고, 그 짧은 3년 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행복을 얻었다. 나에게 준 온전한 헌신과 애정은 지금까지 잊지 못한 채 그리워하고 있다.


그 아이는 어느 날 우리 가족을 피했다. 토끼지만 흔히 말하는 강아지 같은 성격으로, 이름을 부르면 졸졸 쫒아왔고, 서운한 게 있으면 얼굴은 숨기고 엉덩이는 나온 채로 삐짐을 표현했다. 뚜껑 없는 케이지는 화장실이었고,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몇 번이고 들락거리며 똑똑하게 볼일을 봤다. 큰 베란다는 너의 방이었고, 우리 집 거실은 놀이터였다. 매일 같이 잤고, 매일 나를 정성껏 핥아줬던 혀의 촉감을 떠올려 본다.


그래, 그런 너는 어느 날부터 몸을 숨기며 우리를 피해 다녔다. 우리  화장실에서 혼자 누워있는 일이 잦아졌다. 귀찮은가 보다-더운가 -라는 무지로 넘겨버린 그때. 정말 이상하게  처진 너를 데리고 급히 동물병원으로 향하던  밤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저항할 힘도 없는 건지, 낯선 기계에 몸이 묶인  발버둥조차 치지 않은 너를 보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기적 같은 결과 따윈 없고, 폐렴이라는 어이없는 병명이 벌처럼 내려졌다. 위로라며 전하던 '토끼는 원래  걸려요, 원인은   없고요'라는 의사의 .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작은 코를 보며  그렇게 펑펑 울었다.


오늘 밤이 고비라는 말을 듣고 단단히 마음을 먹은  너를 안았다. 아빠 차를 타고 가는 동안 가족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버틸  있어, 버티면 . 그런 희망을 안은  집으로 달렸다. 주차를 하고 있는 도중에 너는  눈을 빤히 쳐다보며 그렇게 사라졌다. 담요 안에서 뒤틀린  경기하던 너를 손으로  안으며 나는 아무것도   없었다.


 손을 놓아버리면 영영 나를 떠날  같았다. 그렇게 떠나는 너를 보며 소리치며 울기만 했다. 새벽 밤에 소란한 울음만 가득했다. 가족들 모두 오열했을 뿐이다.  처진 몸은 너무 작고 차가웠다. 보자기에 감싸진 싸늘한 몸을 감싸 안은채 우리는 조용히 그날을 묻었다.   동안은 네가 우리 가족이라는 것도 금기시되었다. 아무도 너의 이름을 꺼낼  없었으니깐.


7년이 흐르고 나서야 너와 함께  시간이 사실 즐거웠다고 위로할  있었다.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엄마에게 '피피 때문에 행복했지?'하고 물었을 , 눈물이 나온다며 그만하라는 말을 듣고 나는 조금 놀랐다.


10년, 드디어 우리는 다른 아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도 없다. 토끼는 어때?-하고 웃는 나에게 가족들은 안돼-라며 여전히 단호하게 말하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보이지 않는 무거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