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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홉 Mar 29. 2022

나체와 즐거움

몸의 해방



옷을  벗고 이불을 덮으면  원시인이   같아.

묘한 해방감이 들더라고.

 

언젠가 누군가가 한 말이 뇌리에 깊이 박혔다.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나체로 이불을 덮거나 잠을 자본 적이 없었으니까. 샤워를 한 후 곧바로 잠옷을 꺼내 몸에 두르는 게 숨 쉬는 것처럼 당연했다.

 

그 말을 듣고 이상함을 느꼈다. 가장 편안하다고 느껴야 하는 곳에서조차 완벽한 자유를 누릴 수 없었던 거였으니까. 아빠와 오빠가 있는 집에서 나에게 ‘나체’는 언제나 금기시되는 것이었다. 오빠가 팬티 차림으로 집안을 돌아다니거나, 아빠의 상체를 보는 것은 늘 일상적인 풍경이었지만.

 

(화목한 집안이었으나) 나는 딸과 여동생의 신분으로 맨몸을 보이지 않기 위해 애썼다. 아직 물기가 다 마르지 않은 상태로 옷을 입는 행위는 무척 찝찝하고 성가셨지만, 몸을 가리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어느 날 문득, 아마 더위가 푹푹 찌던 한 여름 오후. 집이 텅 비었던 날 샤워를 마치고 나체로 거실을 돌아다녔다. 평소라면 젖은 몸을 닦고 바로 옷을 입었겠지만,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포근한 이불을 맨몸에 감쌌다. 푹신한 촉감이 살갗에 닿는 기분이 제법 좋았다. 몸이 둥둥 떠올라서 천장에 닿을 것처럼 가벼웠다. 온 세상을 누비는 상상과 함께 이상한 해방감이 발끝까지 전해졌다.

 

황홀한 여유를 즐기다가, 가족들이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다시 옷을 챙겨 입었다. ‘자유는 이제 끝!’이라며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맨몸을 애써 무시했다.

 

그때부터 가끔 의식적으로 나체의 순간을 즐긴다. 묘한 긴장감이 사라지고 희열을 느낀다. 눈을 감고 가만히 몸을 의식하다 보면 시답지 않은 상념이 머릿속에서 흘러간다.


언제부터 여자에게만 맨몸을 보이는 행위가 불결하게 되었는지, 왜 여자의 수영복은 비키니인지(나도 바지만 입고 싶다), 남자의 윗몸은 왜 보여도 되는 건지. 뭐 이런 생각들.

 

나체의 희열은 강렬하다.

평생 느껴보지 못한 몸의 자유.

아무도 없을  짧게 누릴  있는 금기의 그것.

집에 다시 아빠와 오빠가 들어온다.

나는 집에서 다시 집으로 외출 준비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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