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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홉 Apr 01. 2022

인연을 찾으려고 애쓰지 말 것

사람들을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애니메이션 영화 《소울》엔 독특한 관계성이 있다. 무명 재즈피아니스트이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음악교사가 된 주인공과 아직 지구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지구로 가고 싶지 않은 영혼 ‘22’가 사후세계에서 필연적으로 만나게 된다. 불편한 관계로 시작했지만, 함께 조력하면서 결국 우정의 관계로 발전한다.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기이한 우연과 만남을 감상하다 보면, 뭐랄까 인연이라는 것은 전혀 복잡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서로를 알지 못했고, 그런 운명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둘의 만남은 절절하거나 억지스럽지 않고 가볍고 재기 발랄하게 시작되었다.    


영화 속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현실 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새로운 사람을알아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동안 다양한 취향과 세계를 가진 사람들을 만났고, 친해지는 과정을 거쳐오면서 운명에 대해 생각했다. 악연과 선연,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인연은 어쩔 수 없는 필연인 것 같다고.   


우연히 같은 동네에 태어나 친해진 초등학교 친구 J, 이름만 알다가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 된 L. 신입생 OT를 마치고 학식을 먹다가 친해진 동기들, 우연처럼 다가온 ky, 오픈 채팅으로 연락하다가 여행까지 다녀온 H과 O까지. 그 외에 소중한 인연들을 떠올려보면, 만남은 언제나 쉬웠고 즐거웠다.   


남해에서 만난 현지인 k도 그랬다. 처음 봤을 때부터 저 사람과 친해질 거라는 예감. 유일한 재능이라면 이런 레이더가 있다고 해야 할까. 처음 만난 사람한테 인연의 촉을 느끼는 편이다. 물론 백발백중은 아니지만, 거의 정답에 가까운 직감을 느낀다. 이번에도 이상한 촉이 발동해서, 저 사람과 함께 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첫 만남은 아무것도 없었다. 손님과 가게 주인으로 한 번, 다 같이 보는 공식 자리에서 한 번. 말 한마디 안 했던 그때도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본격적으로 남해에 살게 되면서 K에게 짧은 DM을 보냈다. 당시 편집숍을 운영하던 K가 가게에 놀러 오라고 했고 덥석 물었다. 함께 차를 마시면서 우리가 꽤 비슷한 취향과 관심사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꼭 같이 트레킹 가요’라는 K의 말. 지금 생각하면 운명의 예고편처럼 느껴진다.  


지금은 아주 당연하게 일상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공유하고, 서로가 읽길 바라는 책을 빌려주고, 때론 진지한 고민을 나눈다. K의 바람처럼, 우리는 매주 트레킹을 함께 하게 되었다.  


몇 주 전, K와 배낭을 메고 숲길과 작은 해변을 걸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k에게 말했다. 나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고, 해외를 돌아다니면서 살고 싶다고. 명상과 요가를 배우러 인도살이를 떠나고, 몽골 여행과 산티아고를 걸을 거라고. K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대답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준비했다고. 그 순간 순례길을 함께 걷는 우리가 떠올랐고 나는 답했다. 사실 나도 그랬다고,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이미 순례길을 완주했을 거라고. K와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는 남해가 아니었더라도 어디선가 만났을 거라고. 트레킹을 다녀온 뒤 이런 내용을 담아 k에게 짧은 편지를 보냈다. 소중한 인연은 늘 자연스럽게, 운명처럼 찾아온다고. 너와 걸으면서 그 사실을 진심으로 믿게 되었다고.


현실은 사실 영화보다 더 철저한 시퀀스 법칙 속에서 존재하는 건 아닌지. 영화 《트루먼쇼》에 나오는 가짜 친구와 이웃을 연기하는 배우처럼, 인위적이고 억지스러운 인연은 결국엔 다 허상으로 끝을 맺게 되니까. 정말 진실되고 소중한 인연은 가볍게 혹은 평범하게 찾아오는 게 아닐까. 수많은 만남 속에 누군가는 친구가 되고, 누군가는 악연이 되고, 또 누군가는 잊혀가는 걸 보면서 나는 정말로 운명이라는 걸 믿게 되었다.  


이후 새로운 이들을 만날 때마다 나와 어떤 관계로 나아갈지 궁금했다. 아무것도 아닌 사이에서 관계성이 생긴다는 것이 얼마나 놀랍고 신기한지. 사소한 만남도 소중했으며, 인연이 이어졌다가 끊겼을 때도 전혀 아쉽지 않았다. 인연은 갈망이나 헌신으로 이어질 수 없으며, 노력의 영역은 더더욱 아닌 것 같다고 믿게 되었으니까. 그저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면서, 운명이 될지도 모를 누군가를 마주하게 되는 것뿐이라고. 새로운 인간관계에 두려움을 느끼거나, 운명을 찾지 못해서 불안해하지 말 것. 인연은 애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것이다. 나의 영역을 확장하고 세계를 가볍게 탐하면서 희한한 운명을 지켜볼 뿐이다. 올해 나에게 어떤 인연이 찾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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