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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너프 Aug 14. 2023

진정으로 이것이 선물이라고?

3년 만에 남편에게 이유를 물었다.

  3년 전 우리는 부서져 가는 아파트에 살았다. 깡시골이라 읍내로 나가려면 자동차가 필요했는데, 나는 차가 없어서 외출을 할 수 없었다. 집에서 붙박이처럼 남편만 기다렸다. 공기가 좋은 탓(?)에 벌레는 어찌나 많은지 이곳에서 사는 것은 나에게 고욕이었다. 그래도 남편과 함께 있는 모든 것이 좋았기 때문에, 사랑으로 어찌어찌 버텨낸 것이다.

  그래도 집이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겉은 부서져 가지만 내부는 나름 아늑했다. 세탁실 문 만 열지 않으면 그럭저럭 사람이 사는 집 같았다. 내가 꼭 만들고 싶었던 홈카페도 있었다. 남편이 출근하고 커피캡슐로 커피를 마시면 이곳이 바로 스타벅스였다.

  내가 외출을 할 수 없다 보니 퇴근하면서 내가 먹을 것을 자주 사 오곤 했다. 박스에 과자나 음료수, 라면 등을 가득 가지고 왔는데 그것이 곧 나에게 하는 애정이라고 느꼈다. 나는 남편이 사 오는 모든 것이 좋았다. 이것 하나 빼고.


  어느 날 초록색의 네모난 물건을 가져왔다.

  "이게 뭐야?"

  "장바구니."

  "장바구니?"

  "응. 선물이야."

  선물이라고 말했다. 장바구니를? 내가 살다가 장바구니를 선물로 받아보기는 처음이었다. 이 선물의 의미를 뭐라고 해석해야 할지 몰라서 계속 고민했다. 선물이라고 하니 고맙다고 하고 받긴 했는데, 이 초록색 부직포 같은 장바구니를 도대체 왜 '선물'로 사 왔을까. 의문으로 가득 찼다. 사실 장바구니를 선물로 주면 좋아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누군가는 좋아할 테니 안 좋은 선물이라고 일반화할 순 없을 것이다. 그냥 내가 좋아하지 않는 선물로 해야 할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결혼 후 나의 위치에 대해 굉장히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가정에 충실해야 하는 아내와 내 일을 지키고 싶은 나 사이에서 엄청나게 갈등했다. 그런 타이밍에 장바구니를 선물로 받으니 가정에 충실해야 하는 아내가 되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이미 그런 위치에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이 말을 직접 남편에게 한 적은 없다. 넌지시 나의 갈등을 이야기했지만 남편은 못 알아 들었나 보다. 아님 알아듣고 이런 선물을 한 걸까? 그랬기 때문에 나는 더더욱 이 선물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그 장바구니를 들고 다녀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장바구니에 갇혀야만 할 것 같았다.


  난 왜 이 장바구니를 선물로 줬는지 물어보지 못했다. 3년 전 감정선이 불안했다. 남편과 결혼했지만 결혼이라는 의식이 나와 남편을 연결해 주는 느낌을 가지지 못했다. 결혼했지만 언제나 남편이 나를 떠날 수 있다는 생각에 남편에게 나쁜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행복회로를 돌리고 돌려 그 장바구니를 어깨에 메고 장을 보러 다녔다. 그때마다 '내 남편은 장바구니도 선물로 주는 섬세한 남자야.'라고 괜히 우쭐해했다. (우쭐해한 건지, 우쭐해 보이려고 애쓴 건지 사실 알 수 없다.)


  오늘 함께 집안일을 하는데 남편에게 (지금 쓰고 있는 다른) 장바구니를 접어달라고 부탁했다. 불현듯 초록색 장바구니가 나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3년 전과 다르게 지금 나는 단단해졌다. 남편에게 질문 하나 한다고 그가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리고 그런 남자라면 내가 먼저 내팽개쳐도 될 것 같다.)

  "자기야. 그거 알아?"

  "뭐?"

  "예전에 자기가 나한테 장바구니 사줬잖아."

  "어. 그랬지."

  "나 그거 받았을 때, 되게 기분이 이상했어."

  "어?"

  남편이 당황했다. 그럴 줄 몰랐다는 반응이다. 왜냐고 되물었다.

  "음. 일반적인 선물은 아닌 것 같았어. 장바구니를 선물로 보통 주나?"

  남편은 멋쩍은 듯이 웃었다.

  "왜 선물로 장바구니를 샀어?"

  "아. 여긴 원래 그런 게 안 팔았거든."

  "그럼, 신상이라서 산 거야?"

  "어. 맞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귀여워서 할 말을 잃었다. 남편이 초록색 장바구니를 집어 들고 무슨 생각을 했을지 눈앞에 훤하게 그려지는 느낌이었다. 남편은 단순했다. 이걸 신상이라고 사 오다니. 내가 너무 복잡한 머리를 가진 걸까?


  '아름이가 좋아하겠지? 신상 초록색 장바구니라니! 이렇게 싸고 튼튼한데 이걸 싫어할 리 없어. 너무 신난다.'


  다행이다. 그 당시 남편은 나를 장바구니에 가두지 않았다. 내 생각이 나를 장바구니에 가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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