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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일 Feb 28. 2017

바람의 경치

여는글


시를 가르쳤던 선생님은 창문을 열어놓는 걸 좋아했어요.

강의실로는 언제나 바람이 불어왔어요.

복사를 해오는 법이 없는 선생님은 학생을 불러내어 설명할 시를 칠판에 쓰게 했어요.

우리가 판서되고 있는 시를 노트에 옮기는 동안 선생님은 바람을 맞으며 담배를 피웠어요.

지금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땐 그랬어요.

라이터를 켜는 소리에 고개를 들면 선생님은 담배 연기를 내뿜고는 

“왜 이상한가요?”

라고 말했어요.

우리는 그냥 웃었는데, 그 말이 재밌었던 건지, 말투가 그랬던 건지, 담배를 피우는 모습 때문이었는지 알 수가 없어요.

한참 말이 없다가 선생님은 문뜩

“저 바람은 어느 우주를 헤매고 이제 여기에 온 걸까요?”

질문도 아니고 혼잣말도 아닌 말을 던지고 또 다시 침묵 속에 빠져들었죠.    

안드로메다 성운  (출처: pixabay)

바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건 아마 그날부터였던 것 같아요. 

바람은 그냥 부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저 바람도 어떤 사연을 갖고 있으리란 생각, 어떤 사연 속을 떠돌았을 거란 생각,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되었어요.

물론 우주에는 바람도 없고, 바람은 지구의 대기현상에 불과하다는 걸 알지만, 그런 바람이 지나온 여정을 생각하면 마음이 술렁였어요.

바깥의 모습을 나타내는 말 중엔 경치, 풍광, 풍경, 풍물, 경물, 산수…… 

따위의 말들이 있어요. 

이 말들은 다 비슷한데 특히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말은 경치나 풍경인 것 같아요.


출처: pixabay

사전에서 ‘풍경’을 찾으면 그냥 밋밋하게 ‘[같은 말] 경치’라고 되어 있어요.

그런데 풍경은 한자어를 풀면 그냥 경치가 아니라 ‘바람의 경치’예요.

바람이 지나가지 않은 경치는 있을 수 없어요.

바람은 대기이므로 대기 없는 경치는 있을 수 없어요.

그렇게 보면 경치란 말보단 풍경이라는 말이 더 정확한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풍경이라는 말을 더 좋아하는 건 아녜요

진짜 이유는 풍경 속엔 바람이 있기 때문예요.

경치는 바람 없이 존재할 수 있지만, 풍경은 바람 없인 존재할 수 없어요.

물론 바람 없는 경치는 없어요.

하지만 경치는 바람이 있다는 걸 느끼는 누군가 없이도 스스로 존재할 수 있어요.

풍경은 바람 없인 존재할 수 없고, 또 그런 바람이 있다는 걸 느끼는 누군가 없이도 존재할 수 없어요. 

바람이 없다면 바람을 느낄 수 없겠지만, 바람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이 없다면 그 역시 바람을 느낄 수 없는 법이니까요.

경치 속을 다시 흐르는 바람이 있고, 또 그것을 느끼는 인간이 있는 풍경이라는 말이 그래서 좋아요.    

어딘가를 헤매고 다녔을 바람과, 바람이 헤맨 어딘가에서 제가 조우했을 때, 그 인상을 쓰려고 해요.

그래서 그런 글들을 "바람의 경치"라고 부르려고 해요.   

 


표지의 사진은 좀머 씨 이야기에서 가지고 왔다. 흐릿하게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팔을 펼치기만 하면 바람을 타고 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장면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오래 전, 수년, 수십 년 전의 아주 오랜 옛날, 아직 나무타기를 좋아하던 시절에 내 키는 겨우 1미터를 빠듯이 넘겼고, 내 신발은 28호였으며, 나는 훨훨 날아다닐 수 있을 만큼 몸이 가벼웠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나는 그 무렵 정말로 날 수 있었다. 적어도 거의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아니 좀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당시 내가 진짜로 그럴 각오를 하고 제대로 실행에만 옮겼더라면 실제로 날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있었던 것처럼 생각되었다. (...중략...) 그때 내가 바람을 뒤로 맞으며 학교 앞 동산의 초원을 가로질러 뛰어내려 왔을 때, 발을 조금만 힘차게 구르고, 팔을 양쪽으로 쭉 뻗기만 했더라도 내 몸은 바람을 타고 훨훨 날 수 있었을 것이다. 전혀 힘도 들이지 않고 2,3미터 높이로, 10 또는 12미터나 되도록 멀리 뛸 수 있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그렇게까지 멀리도 아니었고, 그렇게까지 높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이 무슨 큰 문제란 말인가! 어쨌든 나는 그때 날 수 있었고, 내가 만약 외투의 단추를 풀고 그것의 양끝을 양손으로 잡아 주기만 했더라면, 바람을 타고 둥둥 떠다닐 수 있어서 학교 앞 동산에서 언덕 아래에 있던 숲 위로 거침없이 훨훨 날아다니다가, 숲을 지나 우리 집이 있던 호숫가로 날아가서, 우리 집 정원 위에서 멋지게 한바퀴 선회하면, 날아다니기에는 이미 몸이 너무 무거운 우리 아버지, 어머니, 누나, 형들이 깜짝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모습을 볼 수도 있었을 테고, 다시 호수의 반대편 제방까지 날아가 점심 식사시간에 늦지 않게 집에 도착하기 위해서 마침내 우아한 몸짓으로 착륙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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