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레터] 18호 토피넛라떼 | 믹스커피

by 머신러너

[브런치레터 18호 2025. 12. 09]


돌고 돌아 스카(스터디 카페의 줄임말)로 왔습니다. 이는 마치 연어가 다시 제 집을 찾는 것과 같은 귀가 본능입니다. 두 번째 책의 원고와 퇴고가 끝났고, 마지막 '프롤로그'만 남았습니다. 프롤로그는 책의 가장 앞에서 손님을 마중하는 글이지만, 가장 마지막에 쓰는 글입니다.


가장 처음은 글이 아니라 상상입니다. 머릿속에서 몽글몽글 떠오르는 단어나 표현, 상상은 두둥실 떠돌아다니게 내버려 둡니다. 그래야 멀리멀리, 높이높이 구름처럼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강제할수록 그리고 구조화하려고 할수록, 멀리 가지 못하고 높이가지 못합니다. 충분히 떠돌아다녔다고 생각하면, 디지털 노팅에 있는 노트들과 짝을 찾아줍니다. 디지털 노팅 시스템에는 3천 개의 노트가 있습니다. 자동차로 치면, 만물트럭입니다. 프라이 팬도 나오고 모기약, 모기장, 고무다라도 크기 별로 있습니다. 유튜브 영상을 요약한 것, 책을 읽다가 얻은 작가의 구성 능력, 좋은 구절, 목차 구성이 있습니다. 아예 통째로 가져가고 싶은 페이지는 스마트폰 카메라 '손스캔'을 그대로 가져간 것도 있습니다. 강연장에서 들은 것들 본 것들도 있고, 내가 발표자로서 준비한 콘티들도 모두 있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공간도 '디지털 노팅 시스템'입니다. 그 말은, 브런치는 '쇼잉'하는 공간이지 '라이팅'하는 공간은 내게 아니란 의미입니다.


이곳에 있는 노트와 상상이 짝을 이루면, 책의 구성을 세워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엔 대충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만 세웁니다. 어차피 바뀔 테니까요. 이렇게 얼귀설귀 1장을 시작했습니다. 나머지는 반복입니다. 한 장 한 장 꾸역꾸역 반복으로 마지막까지 채웠습니다. 이 반복은 스카로 출근 도장을 찍으며 했습니다. 수능 일자와 비슷한 시기에 끝났고 수험생들이 모두 자리를 떠난 것처럼 나도 잠시 떠났습니다. 그리고, 주변 외곽 카페나 다른 장소에서 '각잡고' 프롤로그를 일필휘지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연어의 운명처럼 나는 다시 '스카'로 돌아왔습니다.


각을 잡았다는 게 첫 번째 실수입니다. 하던 대로 하지 않았더니 한 줄도 쓸 수가 없습니다. 다른 곳으로 간 게 두 번째 실수입니다. 결국 스카로 돌아왔습니다. 각을 풀고, 어깨에 힘 빼고 그냥 하던 대로 쭉 써 가야겠습니다. 그렇게 대단한 원고도 아닙니다. 적어도 나는 만족시켰으니 이 정도면 됐습니다. 마중글 쓰러 왔다고 또 다른 걸 쓰고 있네요.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합니다. 고급 카페 '스벅'에서 비싼 토피넛 라떼보다 내게는─원래 먹던─믹스 커피가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원래 하던 대로 해야겠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첫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