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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신러너 Mar 15. 2024

원자핵과 같은 단순함

'입자 같은 단순함' 그리고 '원자핵 같은 단순함'으로 작동하는 메모상자

채집하는 글쓰기는 메모상자 메커니즘으로 작동합니다. 메모상자 메커니즘의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단순함'을 매우 구체적으로 세분화하여 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입자 같은 단순함' 그리고 '원자핵 같은 단순함'이 그것입니다. 덩어리를 쪼개고 쪼개서 파편에 돋보기를 들이밀어 관찰하는 것은 '입자 같은 단순함'입니다. 100 피스 퍼즐을 푸는 엔지니어링​이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단순함의 유형으로 '원자핵 같은 단순함'이 있습니다. 비슷해 보이면서도 완전히 다른 점이 있습니다. 입자 같은 단순함은 문제를 조각조각 해체하여 하나씩 살펴보고 분해한 다음 다시 원래대로 조립해 보는 것이라면 원자핵 같은 단순함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과감하게 오려내고 도려내서 마지막에 홀로 남아 빛나는 본질이라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2017년 버크셔 해서웨어 주주총회에서 받은 질문에 대한 ‘찰리 멍거’의 대답을 재구성했습니다.

Q. 타당한 원칙은 그 밖에도 매우 많은 것 같습니다. 상호 작용 때문에 시스템이 너무 복잡해지지 않을까요?
A. 시스템이 복잡하더라도 당신은 그 현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이에 대해 아주 멋진 말을 했습니다. "모든 것을 더 단순화할 수 없을 정도로 최대한 단순화하라*" 그러나 세상은 다소 복잡합니다. 원칙이 20개이고 이들이 상호작용한다면 이를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현실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찰스 다윈처럼 호기심을 유지하면서 차근차근 접근하면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놀라울 정도로 잘 해낼 수 있습니다. -찰리 멍거 [1][2]


유럽 과학 그리고 동양 과학을 뚝 잘라 생각하면 원자핵 같은 단순함에 어울리는 쪽은 유럽입니다. 유럽의 과학이 깊이 파고들어 그 본질을 꿰뚫기 위한 레이저 포인터라면 동양의 과학은 아주 넓게 모든 것을 비추려는 호텔의 은은한 조명입니다.

레이저 포인터와 같은 유럽의 과학은 아인슈타인의 말대로 ‘더 이상 단순화할 수 없을 정도’로 본질에 접근합니다. 유럽 과학 이야기를 하나 소개합니다. 유럽 과학의 아버지 격인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물체 자유 낙하 법칙'이 그것입니다. 갈릴레오 시대 16세기 전까지만 해도 기원전 3세기의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운동에 대한 설명은 가히 지배적이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스러운 운동을 알고 싶어 했고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속도가 무게에 비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늘에서 볼링공과 깃털을 떨어트리면 볼링공이 먼저 떨어지는 것이 자연스러우니까.

2,000년이 지나 갈릴레오의 사고 실험은 달랐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대로라면 볼링공과 깃털을 끈으로 묶으면 중간 정도로 떨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갈릴레오는 "진공 상태에서 모든 물체는 크기나 무게와 상관없이 떨어지는 속도가 모두 같다."라는 결론을 유도하기 위해 여러 실험을 합니다.


수은 속에 여러 가지 물체를 떨어트린다. 그랬더니 아래로 가라앉지 않는 것이 많았다. | 다음으로 물속에 떨어트리면 대부분이 쉽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무거운 것이 빨리 떨어진다. | 공기 속에서 하면 어떻게 될까. 이제 높은 곳에서 여러 물체를 떨어뜨려 본다. 역시나 공기 속에서는 무거운 것은 빨리 떨어지지만 속도의 차이는 훨씬 적어진다! 저항이 작을수록 속도 차이가 적어진다. | 이제 극단적인 상황을 설정하기위해 아무런 방해물이 없는 진공 상태 속에서ㅡ그리고 갈릴레오 머리 속에서ㅡ 볼링공과 깃털을 떨어뜨려 본다고 하자. 그러면 속도에 전혀 차이가 없을 것이다라는 추론을 얻는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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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볼링공과 깃털 진공상태 자유낙하 실험

[4] 볼링공과 깃털 진공상태 자유낙사 실험 - BBC 영상***

참으로 단순하면서 명쾌한 논리적 사고입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원자핵 같은 단순함'에 이 보다 좋은 사례는 없을 것 같습니다. 머릿속에서 작동하는 이 사고 실험은 신비롭습니다. '수은-물속-공기-극단적 진공상태'로 가는 전개는 도려내고 도려내어 궁국의 본질만 남습니다. 이 논리적 흐름은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이런 원자핵과 같은 단순한 메모상자를 추구하며 글쓰기를 하려고 합니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이런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단계 단계 깊이 들어가는 시도를 합니다. 본질이 아닌 것을 제거할 때 궁극의 정교함을 맛볼 것입니다.


"단순함이란 궁극의 정교함이다(simplicity is the ultimate sophistication)" -스티브 잡스 [5]


*5~9화: 근면한 글쓰기
*10화~ : 채집하는 글쓰기




[1] 김재현 이건 엮고지음 <찰리 멍거 바이블>

[2] 프리 다이슨 <The Ultimate Quotable Einstein>

[3] 히로나카 헤이스케 <학문의 즐거움>

[4] 볼링공과 깃털 진공상태 자유낙사 실험 - BBC 영상 

[5] 월터 아이작슨 <스티브 잡스>


*아인슈타인의 인용구는 <The Ultimate Quotable Einstein> [2] 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히로나카 헤이스케 <학문의 즐거움>  [3]의 설명을 재구성했습니다.

***갈릴레오 사고실험을 실제 진공상태에서 재연한 BBC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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