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집하는 글쓰기, 결국엔 쓰기입니다.
그 누구도 글을 쓰지 않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1][2]
채집하는 글쓰기를 채집통과 바텀업 사고체계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 끝을 닫지 않는 유연한 사고는 채집통의 임계치를 넘는데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입자 같은 단순함, 원자핵과 같은 단순함은 단연 내가 말하는 채집하는 글쓰기의 핵심을 관통하는 메인 아이디어임에 틀림없습니다. 채집하는 글쓰기를 하려고 부단히 여러 이야기를 이어갔음에도 결국엔 '쓰기'입니다.
머릿속에 빙빙 맴도는 것을 내가 '생각했다'라고 한다면 그건 거의 대부분 '생각의 파편'을 '생각의 실체'로 착각했던 것 같습니다. 나의 경우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아-맞다'란 말을 자주 입버릇 처럼 합니다. 생각의 파편은 마치 내 장롱 속 구석 어딘가 처박혀 있는 양말 한 짝입니다. 구석탱이 어딘가에서 던져놓은 기억을 다시 끄집어낼 때 아-맞다 란 말이 나도 모르게 나오는 것을 자주 발견하곤 합니다. 쓰지 않고 기억해 두는 것은─그 당시에는 잊을 수 없을 것 같은─이 것이 사소하거나 중요하거나 혹은 쉽던 어렵던지 전혀 구별 없이 파편의 한 조각일 뿐입니다. 이래서는 차곡차곡 쌓을 수 없습니다. 과거에 했던 아-맞다 이후 또다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맞다 뿐이지 더 나아진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그 누구도 글을 쓰지 않고는 생각할 수 없다"의 명백한 증거입니다. 채집통을 이용하고 바텀업으로 바라보고 또한 유연한 사고를 해야 무엇이라도 쌓을 수 있습니다. 조각난 퍼즐을 맞추는 단순함이나 본질을 꿰뚫는 본질적 단순함을 발휘하면 생각다운 생각을 할 기회는 주어지는 것 같습니다. 써야지 쌓이고 쌓여야 생각이란 것을 흉내라도 내볼 수 있지 않을까.
컴퓨터가 사람의 머리에 해당하는 CPU만 가지고 작동할 수 없듯이 번뜩이는 파편은 임시 메모는 램 메모리에 쓰면 됩니다. '아-이거네'와 같은 순간 찌릿한 깨달음은 영구 메모로 분류하여 하드 디스크에 차곡차곡 쌓아두면 됩니다.
우리는 종이에 기록한 만큼만 해낼 수 있습니다. -샘 올트먼 [3]
나의 메모상자만큼만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은 실로 나에게 희소식입니다. 단시간 안에 빠르게 풀어야 하는 학교의 '경쟁시험'에는 아무래도 고성능 CPU와 같은 하드웨어가 빛을 보겠지만 나에게 이런 하이엔드 천연 CPU가 있는가 하면 '전혀'. 이런 부류의 친구들을 보면 가끔 벽을 느낍니다. 나는 아무래도 인텔 셀레론에 가까운 천연 CPU입니다.
CPU는 후져도 하드 디스크 용량을 키우는 것은 내가 도전해 볼 만한 영역인 것 같습니다. 이 분기점은 내가 연구란 것을 흉내 내면서부터입니다. 경쟁시험으로 스코어를 획득해야 하는 게임의 룰 안에서는 어영부영 꼴찌는 면하면서 따라붙었습니다. 시험 범위 틀에서 벗어나 내가 무엇을 공부할지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해 나갈지 스스로 정하는 연구라는 게임의 룰 안에서는 나름대로 구별된 성과를 보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것이 경쟁시험을 준비할 때와는 다른 감정 기쁨 그리고 다른 부류의 생각을 하게 하는 것에 매료된 것 같습니다.
경쟁시험이 하나하나 시험마다 뚝뚝 잘린 가래떡이라면 연구는 하나하나가 연결할 수 있는 레고 블록과 같습니다. 경쟁시험은 백 명 중 몇 등 상대적 성적표를 얻고, 연구는 오로지 나와의 투쟁으로서 절대적 상아탑을 쌓는 일입니다. 연구는 셀레론이면 충분합니다. 우리가 관심을 둘 것은 하드 디스크를 늘리는 것입니다. 여기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 채집하는 글쓰기의 전략이라면 전략입니다.
써야 합니다. 입에 약도 써야 몸에도 좋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한 작업이지만 단순하다고 해서 쉬운 것은 아닙니다. 말로 혹은 머릿속 공상 상상 허상 무엇이든 글로 써보면 '말이 안 되네' 아니면 무언가 '턱턱 막히네'라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 뇌는 결론으로 곧장 건너뛰는 기계와 같다." 데니얼 카너먼[4]의 말대로 우리 뇌가 말하거나 생각은 마치 말이 되는 것처럼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것이 쓸 수 있어야 할 수 있다는 것에 관한 나의 실체적 체험입니다. 내 느낌으론 내가 쓴 만큼만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은 나를 움직이는 '연료'가 됩니다. 우리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의 파편들로는 전혀 우리를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이 놈의 몸뚱이를 움직이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하락 한 것 같진 않습니다.
글로 쓰지 않은 채 체계적으로 생각해 내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어쩌면 '라이팅 = 씽킹'
쓰기가 곧 생각이고 생각이 곧 쓰기 아닐까. 인자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인터뷰으로도 이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파인만은 내가 매우 좋아하는 과학자이며 언제나 그를 조금이라도 흉내 내보고 싶은 마음을 항상 간직하고 있습니다. [2][5]
파인만이 생각하는 쓰기에 대한 사고체계는 정말이지 통찰 그대로입니다.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이란 순전히 내적 과정이며, 펜의 유일한 기능은 완성된 생각을 종이에 적는 것이라 믿는다.
어느 날, 리처드 파인만의 연구실에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한 역사학자가 방문했다. 연구실에서 파인만의 공책을 발견한 그는 '파인만의 생각이 기록된 멋진 기록물'을 이렇게 볼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고 했다.
파인만은
"아뇨 아닙니다! 그 공책은 제가 생각한 과정을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 자체가 바로 제 생각의 과정입니다. 실제로 저는 종이 위에서 작업을 했습니다."
"글쎄요."
역사학자가 말했다.
"작업은 교수님 머릿속에서 이루어졌고, 그 기록이 여기 남아 있는 거잖아요."
파인만이 대답했다.
"아뇨, 그렇지 않아요. 그건 기록이 아닙니다. 그것 자체가 일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물리학자)는 종이에 적으면서 일해야 하는데, 이게 바로 그 종이입니다."
조던 피더슨의 강의 중 '글쓰기는 생각하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라고 합니다.* [6]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는 최선의 방법은 여러분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글쓰기와 생각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학에서 아무도 학생들에게 왜 글을 써야 하는지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과제를 해야 하니까'라는 이유만이 있죠. 하지만 진짜 이유는 생각하는 법을 배우기 위함입니다."
"글쓰기 말하기 생각하기를 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정말 강력한 존재가 됩니다. 아무것도 여러분의 길을 막을 수 없죠. 이것이 바로 글쓰기를 배우는 이유입니다. 글쓰기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입니다."
"그러니, 명확하게 표현하는 법을 배우세요.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위험한 능력입니다. 이것을 알면 여러분이 못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본 발췌글은 빙산 브런치 작가님께서 제공해 주셨습니다.
*5~9화: 근면한 글쓰기
*10~15화: 채집하는 글쓰기
*16화~:
[5] 리처드 파인만 <Genius: The Life and Science of Richard Feynman (Paperback) -p.409 - 『파인먼 평전』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