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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신러너 Mar 01. 2024

작가 창작자 연구자와 같은 류는 끝을 닫지 않습니다

끝을 열어둔 이상 채집하는 글쓰기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바텀업 사고체계는 피라미드의 꼭짓점이 얼마나 높을지 어디를 향할지 그 목적지나 목표를 정해두지 않습니다.

어느 임계치를 넘게 되면 ‘자연스럽게’ 쌓이거나 방향성을 가지고 나아가겠지 내버려 두는 것이 바텀업 사고체계입니다. 자연스럽게 두 번째 이야기로 넘어가면 임계치를 넘기는 양을 채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연재 11화>


지난 이야기의 마지막 단락을 상기해 보았습니다. 탑다운 사고체계는 ‘목표’를 못 박고 시작합니다. 핵심 아이디어를 바꿀 수 없기 때문에─마치 잘했건 못했건 한 번 못질하고 빼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것과 같이─브래인스퀴징하여 어찌저찌 매듭지어 버립니다. 끝이 있다는 말입니다.

탑다운 사고체계를 지탱하는 것은 목표와 계획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 두 콤비가 아주 잘하는 것이 있는데 이 것은 목표를 잡고 계획을 철저히 세우면 ‘시험’은 아주 잘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글쓰기 작가/창작자/연구자는 되기 어렵습니다. 목표란 것이 끝이 그런대로 보이는 것처럼 시험도 쏟아내고 나오면 끝입니다. 반면 작가/창작자/연구자와 같은 '류'는 끝이란 것이 있을까.


"진정한 통찰을 얻게 하는 학습은 축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새로운 아이디어의 불씨가 된다." [1]


채집하는 글쓰기 하기로 마음먹고 '니콜라스 루만'과 '숀케 아렌스'를 나의 글쓰기 스승으로 모시기로 한 이상 나는 계획의 달인이 되기보다는 창작자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내가 멈추기로 마음먹지 않은 이상 이 학습의 축적은 '끝이 열려'있는 것과 같습니다.


'끝이 없다‘는 것과는 무엇이 다를까 생각해 보면 끝이 없는 것은 너무 막연합니다. 무한의 공허함 같다고 할까요. 해결될 수 없는 것을 붙들고 있는 것 같은 허무함과 같은 느낌입니다. '끝이 열려 있다'는 것은 그 끝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으나 '저기쯤이겠지' 정도로 대충 선을 그을 수 있는 자율이 가능합니다.

그 끝을 닫을지 혹은 열어젖힐지 오로지 나의 의지입니다.


바텀업 사고체계는 목표가 정해두고 출발하지 않으니까 확실히 끝이 열린 사고방식입니다. 시작 지점에서 흐릿하게 목표 비스무레한 것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연구하고 창작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어쩌면 당연히 그 도착지가 바뀌게 되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됩니다. 경험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말 그대로 '경험적으로' 내가 처음에 세운 가설이라던지 목적지가 시간의 검증을 받게 되면 틀림없이 바뀌게 되는 경우를 마주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끝이 열린 사고방식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내가 자신의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이론상' 인정한다고 말은 했지만─겸손 떨듯이막─상 실전에서 타인과 논쟁하면 좀처럼 그렇게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나이가 많아지고 직급이 오르면서 더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내가 틀렸다고 인정하기보단 누구누구 씨가 ‘아직 잘 몰라서’ 그래요 라던지 ‘원래’ 이러이러하다는 식입니다.


수많은 논리와 증거를 들이밀어도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제하에, 개인이 시대를 이길 수 없음은 시대 그 자체가 항상 증명해 왔습니다.


"과거가 현재에 의해 부정되듯이 현재는 미래에 의해 번복될 것이다. 그래서 현재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생각들 가운데 상당수가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는 폐기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2]


단언컨대 나는 이 것이 시대 그 자체의 증명이라고 믿습니다. 과거는 현재에 의해 부정되고 현재는 다시 미래에 의해 번복된 다는 것을 항상 내 옆구리에 끼고 채집하는 글쓰기에 나섭니다. 한 가지 걱정은 어차피 틀릴 것이라면 채집할 필요가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을 한 번 더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서 발췌하면


"우리 생각이 틀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각자의 생각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완전히 포기한다면,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각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도  할 수 없게 된다." [2]


끝이란 것이 열린 작업을 하는 작가, 창작자 그리고 연구자라면 내가 끝을 닫겠다고 마음먹지 않는 이상 우리의 채집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책을 읽고, 이해해 보고, 곰곰이 생각도 하고, 사색하고 아이디어도 떠올리고, 아이디어들을 엮어보고, 유의어를 찾아보고, 용어들을 구분 짓고, 적절한 단어를 찾고, 구조를 뒤틀어보고, 정리하고, 다시 쓰고, 끝내는 과정 모두 포함됩니다.


*5~9화: 근면한 글쓰기
*10화~: 채집하는 글쓰기(진행중)



[1] 숀케 아렌스 <제텔카스텐>

[2]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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