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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신러너 Feb 23. 2024

메모 상자 메커니즘

바텀업과 탑다운 메커니즘에서 하나 고르라면 나는 의심하지 않고 바텀업이다



“집중력은 좋은 삶을 사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하면서도 한정적인 재료다. 그러니 진정 집중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에 열중해야 한다.” [1]


의지력에 기대어 백색 빈 화면의 공포를 이겨낼 수 없습니다. 의지력은 배터리와도 같아서 갑자기 꺼지지 않도록 수시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콘센트가 어디 있지’ 두리번거리며 배터리 잔량에 압박받는 것이 의지력과 비슷합니다. 이런 간헐적 에너지 상태로 채집통에 모은 들 임계치에 한참 모자란 파편에 불과할 겁니다.

지금은 이름도 생소한 시계 판매점이 동네에 있었습니다. 참 다양한 크기의 시계와 정신없이 움직이는 바늘이 매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동네 시계점 앞에 진열된 영구기관인 척 움직이는 진자를 어린 시절에 꽤 오랜시간 쳐다보고 있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땐 에너지 보존 법칙 띠위를 알 턱이 없었으니, 지나갈 때마다 어김없이 진자 운동을 보고 영구기관으로 여겼습니다. 배터리와 같은 의지력보다는 이 멈출 것 같지 않은 영구기관 진자와 같은 어떤 메커니즘이 필요합니다.


헨리 포드의 컨베이어 벨트는 하나의 메커니즘에 해당합니다. 처음엔 단순히 물건을 이동시키는 것이 그토록 혁신적인지 그때는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말로 느껴보아도 자동차가 가만있고 작업하는 사람이 움직이는 것과 자동차가 움직이고 사람이 가만히 작업하는 것에 차이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의 혁신적인 메커니즘은 세계인에게 "기동력"을 주었습니다. 다작의 신 니콜라스 루만은 우리에게 글쓰기를 위한 혁신적인 메커니즘을 알려주었습니다. 이것은 ‘제텔카스텐’, 메모 상자입니다. [2] 메모를 쓰고 모으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인가. 이것은 시시하고 흔해 빠진 것처럼 보입니다. 핸리포드의 컨베이어 벨트처럼.


컨베이어 벨트가 평가 절하된 것은 우리 모두가 '컨베이어 벨트' 그 자체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컨베이어 벨트로 창출할 수 있는 가치, 전체 작업 흐름 그리고 이로부터 파생되는 스케일러빌리티를 보지 못한 것입니다. 메모 상자 또한 단순한 상자 안에 켭켭이 쌓인 종이 뭉치로 보여집니다. 헨리 포드도 아마 지금의 자동차 스케일러빌리트를 상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니콜라스 루만과 루만을 연구한 숀케 아렌스도 아마 메모 상자의 최종적 끝을 알고 이 고된 작업을 하지 않았다고 장담합니다. 그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이 수고스러움에 가치가 있습니다.


지금 내가 쓴 메모 한 장이 훗날 다른 메모와 연결되어 새로운 콘텍스트, 자신의 어떤 언어를 탄생시킬지 알 수 없는 것은 무한한 가치가 있다는 것과 같습니다.


투자에 빗대어보면, 탑다운 투자와 바텀업 투자─투자가 아니더라도 두 사고체계─와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탑다운은 단어 순서대로, 위에서 아래로 생각의 흐름을 이어갑니다. 피라미드의 꼭대기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방법입니다. 꼭짓점을 딱 정하고 하나하나 가지치기하듯 아래로 내려가며 생각을 확장합니다. 우리는 모이면 그렇게 브레인스토밍을 합니다. 내가 개인적으로 멀리하고 싶은 것이기도 합니다.

대부분, 저의 경험으로는 ‘브레인스토밍 합시다’하면 거의 ‘브레인스퀘징’으로 끝납니다. 말 그대로 뇌를 쥐어짜 냅니다. 쥐어짜 낸 브레인스토밍 아이디어가 대단했던 적이 있었던가 생각하면 저는 ‘글쎄다’ 전혀 기억에 없습니다. 다시 탑다운 사고체계로 투자를 바라보면, 탑다운 투자는 거시 경제, 그러니까 금리나 통화량, 전체 마켓을 먼저 바라봅니다. 그러고는 국가를 보고 섹터를 보고 산업을 보고 이제서야 기업을 봅니다.


바텀업 투자는 이와는 정반대입니다. 피라미드의 가장 아래 넓은 기반을 먼저 다집니다. 그리고 벽돌 하나하나 옮기고 쌓아갑니다. 가장 밑단에 해당하는 벽돌들, 즉 하나하나 기업에 관심을 둡니다. 어차피 거시 경제란 것을 예측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거대 담론과 같은 큰 그림 이야기가 멋은 있어 보이는데 그다지 투자 결정에 도움을 주었는가 생각하면, 언제나 의문스러울 뿐. 매 번 ‘그런가 보다’ 정도로 넘겼던 것 같습니다.

총합이나 평균은 모든 것을 뭉뚱그려버리니까 이것이 대푯값이라기 보단 대부분 가비지값에 더 가깝다는 생각입니다.


"여러분이 거시경제에 14분을 쏟는다면 12분은 낭비한 셈입니다."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 피터 린치[3]


바텀업 사고체계는 피라미드의 꼭짓점이 얼마나 높을지 어디를 향할지 그 목적지나 목표를 정해두지 않습니다. 어느 임계치를 넘게 되면 ‘자연스럽게’ 쌓이거나 방향성을 가지고 나아가겠지 내버려 두는 것이 바텀업 사고체계입니다. 자연스럽게 두 번째 이야기로 넘어가면 메커니즘이 착착 작동하려면, '임계치를 넘기는 양'을 채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5~9화: 근면한 글쓰기
*10화~: 채집하는 글쓰기



[1] 크리스 베일리 <하이퍼포커스>

[2] 숀케 아렌스 <제텔카스텐>

[3] 피터 린치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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