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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신러너 Mar 31. 2024

남에게 맡기면 말라비틀어져 버린다

'A to Z' 오롯이 혼자 할 수 있어야 내 것이라 할 수 있다.


"정말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합니다!" -김정운[1]


글쓰기를 누군가와 같이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여럿이 미팅하며 타이핑 두드리는 식의 받아 적기는 내가 말하려는 글쓰기가 아닙니다. '왜'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내 생각을 그저 느낌 가는 대로 써 내려가는 방식의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누군가 껴들 틈은 조금도 없습니다. 내가 말하는 '쓴다는 것'은 독방에 작은 스탠드 등 하나뿐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고독한 작업입니다.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이 오로지 내가 끌고 나가야 합니다. 잠시 쉬면서 산책 다녀오거나, 아예 장소를 옮겨서 노트북 화면을 받았다가 열면 깜빡이는 커서는 정확히 그 자리에 머물고 있습니다. 한 번은 '커서가 조금 스마트해서 알아서 좀 써놨으면 좋겠네'라고 생각해 보았지만 커서는 순진한 것인지 정직한 것인지 역시나 내가 멈춘 딱 그 자리입니다.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원했네' 하고 내 할 일을 합니다.


나는 사업가 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업가는 모름지기 남의 시간과 노력을 레버리지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사업가가 아니더라도 어떤 부류의 사람은 남을 잘 시키는 것을 능력으로 믿기도 합니다. <레버리지>를 곡해한 사람은 자신의 시간을 투입할 곳에 어떻게든 상대에게 넘기는 것이 '일을 잘하고 있다'라고 믿는 것 같습니다. 이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2]

이런 식으로 작업하면 처음에는 편하고 내가 한 것보다 많이 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세월의 검증대 앞에 서게 되면 그런 식의 작업은 곧 말라비틀어져버린 나뭇잎과 같이 생기를 잃고 말 것입니다. 다시 마른 나뭇잎을 아무리 접 붙여보아도 푸른 나뭇잎이 될 수 없듯이, 화학적으로 비가역적이죠.

설령 이 같은 생각이 사업가 되기에는 '영 아니올시다' 라면 나는 사업가 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내 경우엔 철저히 외톨이가 되어 작업을 하는 것에 익숙했습니다. 융통성 없이 들리겠지만 내가 스스로 할 수 없다면 내 것이 아니란 믿음으로 작업에 임했습니다. 이것은 시뮬레이션 엔지니어인 내가 소프트웨어를 컴퓨터에 설치하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복잡다단한 작업을 코드로 구축하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스스로 해내는 것이 나무줄기에서 수분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처음엔 여러 '선생'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후에는 남의 도움 없이 'A to Z'까지 오롯이 혼자 할 수 있어야 내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A to Z'는 누가 시켜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순전히 내 안에서 강한 욕구가 있어야만 합니다. 내 안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 지루하고 고독한 작업을 헤처 나갈 수 있을까.

내적 충동이 없다면 'A direct Z'하는 방법에 몰두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A와 Z 사이를 나의 고립으로 채워야 합니다. 남의 손과 발을 이용해서 채우려고 하거나 과정 없이 빈 공간으로 대중없이 내버려 두면 곧 말라비틀어질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일단 본인 스스로 스타트하기로 했으면 스스로 매듭지어야 합니다. 2012년 가을야구에 실패한 한화의 마지막 경기 선발투수는 류현진 선수입니다. 메이저리그 도전을 앞두고 7년 연속 두 자리 승수와 통산 99승을 위해 류현진 선수는 전력투구했습니다. 연장 접전 10이닝 1실점 역투임에도 넥센과 12이닝 1:1 무승부로 경기가 끝났습니다.*


내가 이 번 ‘고립되어 글쓰기’ 챕터에서 말하려는 것은 이를테면 류현진 선수처럼 불펜 투수 없이 이래나 저래나 결판날 때까지 마운드를 지키는 것과 같은 ‘고립’입니다.

고립되어 글쓰기 첫 문을 이렇게 열어젖힙니다.



*5~9화: 근면한 글쓰기
*10~15화: 채집하는 글쓰기
*16화~: 고립되어 글쓰기

*마지막 한 경기를 남기가 시즌 9승, 통산 98승인 상황에서 등번호 99 류현진은 선발등판했습니다. 한화는 8개 구단 중 8위로 타선의 지원을 받긴 힘들어 보였습니다. 류현진 선수는 10이닝 마지막 129구 152km 강속구를 꽂습니다. 마지막까지 마운드를 지키는 역투에서 그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1] 김정운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2] 롭 무어 <레버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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