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 Play Love 중 Work-나무 상자 집
“Eat Pray Love”
엘라지베스 길버트 그녀는 이탈리아에서 먹고 즐기는(Eat) 삶에서 기쁨을 만끽합니다. 쾌락까지도. 잇(Eat)이 나의 삶 바깥으로부터 느끼는 즐거움의 메타포라면 그녀에게 인도에서 프레이(Pray)는 그녀 안으로부터 영적인 수행으로 내면의 평화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여정은 발리에서 이루어지는 사랑(Love)입니다. [1]
잇 프레이 러브의 절묘한 균형이 길버트 그녀만에 삶의 방식이라면, 나에게 있어 '잇 프레이 러브'는 무엇일까.
라임을 흐트러트리지 않으면서 내가 찾은 '잇 프레이 러브'는 '웍 플레이 러브(Work Play Love) 입니다.
고립은 본성에 맞지 않아서 의도적으로 자신을 가두지 않고서는 본능적으로 고립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겐 포기할 수 없는 소속감이란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엄마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하여 절대적인 안정과 안녕을 보장받는다. 진화적 관점에서 볼 때, 무리에 속하고자 하는 이러한 갈망은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고 보호받도록 도와줌으로써 우리 종의 생존과 번영에 기여했다. 제한된 자원을 놓고 경쟁할 때, 개인이 아니라 집단을 이룸으로써 우리는 보다 쉽게 수적 우위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생존 차원에서 우리의 몸은 '어딘가에 속하는 것'을 갈망하도록 뇌과학적으로 진화해 왔다."[2]
태어나서 엄마와의 연결은 대학교 입학 전까지였습니다. 이후에 네겐 '엄마'와 같은 절대적 안정과 안녕이 해체된 것입니다. 세상 물정 모르던 내가 무작정 고향 청주를 떠나 서울로 홀로서기 했습니다. 월세 27만 원 고시원에서 나의 독립은 의도치 않게 시작되었습니다. 지방러 신세가 '엄청난 역경 속에서 무엇을 배웠다'고 말하기엔 초라하지만 그래도 '겪어본 지방러 대학생만이 이해하고 공감할 부분만은 확실히 있다'고는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이면서 필수적인 의식주입니다. 공동 세탁기 순서를 기다리는 법을 배우고 건조는 방바닥에 해야 합니다. 식사는 뭐 말할 것도 없이 부실하기 짝이 없고 사는 곳이야 고시원 네 평 남짓. 방 구조도 비정상적으로 길이는 길고 너비는 좁은 탓에 양팔을 벌리면 닿을랑 말랑합니다. 방음은 되지 않아서 옆방 통화의 상대방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그래도 창문은 커서 좋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참 감사한 일입니다. 대학생 때 필히 배워야 했던 독립할 준비를 의도치 않게 시작되었으니 말이죠.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의존하는 삶은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이것은 '남에게 맡기면 말라비틀어진다'는 맥락과 일치합니다. [3] 'A to Z'는 비효율적이고 느려터진 작업일지라도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유롭게 내 방식대로 이끌어갈 수 있는 방식입니다.
지방러의 의식주도 대학생에게 독립으로 가는 A와 Z 사이 어딘가 '일부분'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A와 Z 사이 '대부분'은 내 일을 찾는 여정이고 탐험이어야 합니다. 24시간 중 8시간은 자고 나머지 깨어있는 절반은 내 일을 해야 하니까요. 그러니 대학생 동안 독립을 준비하며 내가 했어야 할 것은 평생 이 일을 해도 '정말 괜찮은가'에 대해 묻고 탐구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뒤로 미뤄지기는 해도 결코 건너뛸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래나 저래나 내 일을 찾는 것이 이것에 해당됩니다. 엄마품을 떠나기 전까지 어떤 일을 할까 와 같은 중요한 물음은 잊고 살았습니다. 무라카미 선생의 말에서 그 이유를 찾았습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들을 배울 수 없다는 사실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적성이나 입시 전략과 같은 빅 피처는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찔했던 진학상담은 이러합니다. 학생의 세계관이어 봤자 수업이 전부이니 국영수사과 세계에서 찾은 곳은 물리세계입니다. 물리에서는 물체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나에게는 마치 미래를 예측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또 빽빽한 글보다는 아주 간단한 수식으로 명료하게 표현하는 것이 맘에 들었습니다. 순진하게도 수많은 학과에서 ‘물리‘ 단어가 있는 것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래서 담임선생님께 “물리학과에 가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대답은 워딩 그대로 “입에 풀칠은 해야지. 공대나 가라” 이렇게 5분 진학상담은 끝났습니다. 5분 만에 나의 20년 커리어가 정해질 줄은 몰랐습니다. 이렇게 정해진 나의 진로치고는 공학 공부가 '그럭저럭' 할만했다는 것은 참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들보다 훨씬 잘하면 좋겠지만 그래도 남들만큼은 잘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 배웠던 것에 깊은 의미는 몰랐지만─그렇다고 지금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도 아니지만─기본적으로 내가 즐거움을 느끼며 공부했다는 것임에는 분명합니다.
'엄마'와 같은 절대적 보호 관찰이 끝난 나의 독립도 이제 20년 가까이 흘렀습니다. 내 방식의 독립은 나무를 모아다가 못질해서 만든 상자 모양 집에 고립되는 것입니다. 고립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는 없지만 이것은 나에게 독립을 위한 응축의 과정이었음에는 분명합니다. 나에게 고립은 내 방식대로 살아가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이를테면 공간적 고립으로는 그곳이 고시원이 됐건 지하철 안이든 나만의 나무 상자 집을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 운명적 공대생으로서 작가지망생을 꿈꾸는 나는 일주일 두 개의 연재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연재는 200자 원고지 10장 분량으로 2,000자를 씁니다. 깊은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한 번 써볼까‘하면 검정색 한성 노트북으로 꾹꾹 눌러가며 씁니다.
연재가 밀려서 급할 때는 지하철에서 씁니다. 지하철 안에선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로 장비를 교체하고 운 좋게 자리에 앉게 되면 아이패드와 키보드를 연결해서 옆사람 방해 갈까 어깨를 최대한 좁혀서 꾸역꾸역 씁니다. 일어선 경우엔 아이폰으로 두 엄지 손가락으로 씁니다. 어디가 되었건 나는 나무 상자 집을 뚝딱뚝딱 임시방편으로라도 만들려고 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교회 예배시간에도 보이지 않는 나무 상자 집을 짓곤 합니다. 아이폰 꺼내기엔 눈치 보이니까 교회 안내문 ‘주보’ 뒷장에 미리 준비한 ZEBRA 사라사 4색 볼펜으로 글쓰기를 합니다. 하나님도 이런 저를 이해해 주시기를.
어떤 공간이 됐든 '나무 상자 집'을 짓고 고립할 수 있는 것이 내 방식이라면 방식입니다. 쓸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허락된다면 어디든지 나무 상자 집이 됩니다.
"누구든지 웬만한 정도의 상식과 경험만 있다면,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 방식 자체가 최선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 [4]